주의! 글의 특성상 스포가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땅속에는 마치 생물의 혈관처럼 여러 파이프라인(Pipeline)이 존재한다. 그중 원유가 흐르는 파이프라인을 송유관(送油管)이라 하고, 여기에 구멍을 뚫어 석유를 몰래 빼내 팔아치우는 범죄자들을 ‘도유(盜油)꾼’이라 부른다.
돈이나 보석 등이 아닌 원유 자체를 훔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지만, 도유 범죄는 무려 수천억이 오고가는 영역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과거부터 꾸준히 발생하고 있는 범죄다. 지난해 1월에도 송유관에 구멍을 뚫고 호스를 연결해 8만 리터의 석유를 빼돌린 도유꾼들이 체포됐고, 지난 2~ 4월 1천10리터의 석유를 훔친 도유꾼들도 잡혀 재판을 받았다.
아직은 다소 생소한 ‘도유꾼’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파이프라인’(유하 감독, 2021)은 범죄자들이 모여 팀을 이루고, 이들이 도둑질을 하는 과정을 그린 케이퍼무비(Caper movie) 장르로, 스토리보다는 석유를 훔친다는 ‘도유’라는 설정이 꽤 신선하다.
수백~수천억 원의 기름을 빼돌리기 위해 판을 짠 재벌 2세 건우(이수혁)의 제안 또는 협박으로, 천공기술자 핀돌이(서인국), 프로 용접공 접새(음문석), 설계자 나과장(유승목), 인간 굴착기 큰삽(태항호)이 구멍을 뚫을 송유관이 묻혀있는 건물 안에 모여 작전을 시작한다.
처음엔 자신만 생각하던 도유꾼들은 악랄한 재벌 2세를 공공의 적으로 삼고, 각종 위기에 맞서며 비로소 정을 나눈 한 팀이 된다. 본인의 목적만을 생각하는 건우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때려준 이들은 자신들을 알아채고 쫓던 경찰 만식(배유람)에게 잡혀 교도소에서 죗값을 치르고 나오고, 여전히 팀으로 남아 각자의 전공(?)을 살려 또 다른 파이프라인인 하수도를 뚫어주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모습으로 막을 내린다.
킬링타임용 영화로 가볍게 볼 수 있는 ‘파이프라인’이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파이프, 드릴, 용접 등 다양한 제조업 관련 부품과 장비, 거친 작업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또한, 송유관뿐만 아니라 상수도, 하수도 등 산업(비즈니스)과 일상을 연결하는 다양한 파이프라인이 땅속에 매립돼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인지하면서, 파이프라인을 설계하고, 파이프를 제조해 설치하는 과정까지 얼마나 많은 산업 카테고리가 연결됐는지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러나 파이프라인은 땅속에 매립하기 때문에, 파이프라인이 없다면 건물에서 생활하는 우리는 물이나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없고, 하수를 비롯한 각종 오물을 처리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건물이나 제품처럼 모두에게 드러나지 못하기 때문에 금세 잊히기 십상이다.
산업 분야에도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파이프라인과 같은 분야가 존재한다. 그 분야가 바로 제조업, 그중에서도 소재·부품·장비(이하 소부장)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소부장은 파이프라인과 같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용도에 적합한 소재와 정밀한 부품, 그리고 이를 만들어줄 장비가 없다면 제품을 완성할 수 없다. 따라서 소부장 산업은 제조업을 비롯한 모든 산업의 기본 인프라와 마찬가지다.
점차 자국우선주의가 강화하는 상황에서 다른 국가들에 경쟁력을 뺏기지 않으려면, 모든 산업의 기반이 되는 소부장을 더욱 우리 산업의 중심으로 끌어올려 기초부터 탄탄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우리만의 소부장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자신의 작업을 위해 직접 드릴 비트를 세공하던 핀돌이처럼, 관계자들의 노력과 확실한 지원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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