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Culture] 세종대왕 그리고 장영실, 조선의 과학기술을 빛내다 - ‘천문’

조선의 시간과 천문의 정립, 태평성대의 기반을 다지다

* 주의! 글의 특성상 스포가 있습니다!

‘세종은 자격루·간의대·흠경각·앙부일구 등을 제작했다.…많은 기술자들이 있었으나 임금의 뜻을 맞추는 이가 없었는데, 오직 장영실이 세종의 지혜를 받들어 기묘한 솜씨를 다해 부합되지 않음이 없었으므로 세종이 매우 소중히 여겼다’
-조선 학자 서거정 ‘필원잡기(筆苑雜記)’ 중-


[산업+Culture] 세종대왕 그리고 장영실, 조선의 과학기술을 빛내다 - ‘천문’ - 산업종합저널 동향
조선 최고의 팔방미인(八方美人)으로 꼽히는 세종대왕이 자신의 뜻을 알아주던 장영실을 매우 아꼈다는 것은 사료(史料)와 남아있는 유물을 통해 증명되는 사실이다.

아버지가 귀화인으로 노비 출신이 아니지만, 기생인 어머니의 신분에 따라 관노(官奴)가 된, 태생이 천민이었던 장영실은 태종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궁중 기술자로 종사했고, 세종의 총애 속에 면천(免賤) 후 많은 업적을 이루며 종3품의 대호군까지 올랐으나, 세종을 태울 가마가 부서지는 사건으로 곤장 80대를 맞고 종적을 감추는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다.

영화 ‘천문’(허진호 감독, 2019)은 조선의 성군(聖君)으로 평가받는 세종대왕과 조선 최고의 과학자로 꼽히는 장영실, 두 실제 인물의 역사적 사실 기반에 상상력을 더한 ‘팩션(Faction)’이다.

여러 팩션 작품들이 그렇듯, ‘천문’에서도 보다 극적인 요소를 위해 세종이 즉위 후 장영실과 처음 만나는 장면이라던가, 북극성(2등성이므로 가장 밝지 않다)이 제일 밝은 별이라는 내용이라던가, 명나라의 압박으로 세종이 왕실천문대인 간의대를 불태우는 장면 등 여러 부분에서 크고 작은 각색이 이뤄져 사실과 다르거나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이런 각색을 제쳐두고, 세종과 장영실이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조선의 자체적인 기술 개발을 위해 노력했는지에 초점을 맞춰본다면, 영화 ‘천문’을 통해 당시 전 세계적으로도 놀라운 과학기술력을 가졌던 조선의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

“이제 우리의 백성들은 낮이고 밤이고 이 자격루의 종소리에 맞춰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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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장영실(최민식)이 만든 자동 물시계를 본 세종(한석규)은 매우 만족스러운 웃음을 터뜨리며, 스스로 종을 울린다는 뜻의 ‘자격루(自擊漏)’라는 이름을 내린다.

조선의 시간은 낮에는 해시계로 확인할 수 있었지만, 밤에는 시간을 확인하기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밤에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물시계를 지켜보다 일정한 시간이 되면 종을 쳐서 알려야 했기 때문.

그러나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는 일정한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시간을 알렸으니, 그야말로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당시 만들어진 자동 시계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고 하니, 세종과 장영실을 비롯한 조선 과학자들의 쾌거라고 할 수 있겠다.

“명나라 절기가 우리와 맞지 않아 씨를 뿌리는 데 아주 애를 먹고 있다고 하더이다. 해서 우리 땅에 맞는 우리 절기를 과인이 한 번 정확히 측정해보려고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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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체 운행의 계산으로 산출되는 날짜와 천체의 출몰시간 등을 정하는 방법을 뜻하는 ‘역법(曆法)’은 천체의 주기적 운행을 시간 단위로 구분하는 계산법으로, 조선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종은 조선 땅과 맞지 않는 역법 때문에 백성들이 곤란함을 겪는다는 것을 알고, 조선만의 천문을 확인하고자 했다.

장영실은 세종의 마음을 받들어 천문관측 기기인 간의, 혼천의, 일성정시의 등을 제작했다. 이 관측기기를 바탕으로 조선은 조선의 백성들이 활용할 수 있는 적합한 역법을 편찬할 수 있었고, 백성들의 삶도 전보다 윤택해질 수 있었다. 과학기술의 자립(自立)과 혁신은 민생을 안정시킬 수 있는 가장 빠른 수단이라는 방증인 셈이다.

“이제야 우리도, 우리 땅에 맞는, 조선의 시간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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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과 장영실이 하늘과 시간을 정리할 수 있는 기계를 개발한 것은, 지금 우리 산업계에서 추진하고 있는 ‘국산화’를 완벽하게 이뤄낸 것은 물론, 자체 기술력을 발전시켜 더 작고 정교한 제조 기술을 확보해 표준을 만든 것과 같다.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그대로 사용하기만 하며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력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한 세종과 장영실의 정신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

밖으로는 사대(事大)를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도, 기술의 개발을 통한 자주(自主)적 국가를 만들어갔던 세종과 그의 마음을 헤아린 장영실.

우리 정부와 연구기관, 기업들도 꾸준한 개발과 기술·산업의 융합과 혁신을 통해 강자들이 득실거리는 글로벌 시장에서 우뚝 설 수 있는 분야가 늘어날 수 있길 바란다.

p.s : 세종의 시대는 과학 기술적 의의 외에도, 세종의 파격적인 인재 등용, 과학·음악·문화·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탐구 정신과 개혁에 대한 의지 등 다양한 시각에서 이야기할 내용이 무궁무진하다. 또 다른 세종의 이야기로 만나볼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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