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컴컴한 금속 공장에 쇳물이 흐른다. 안전장치도 없는 유압 해머에 손을 넣어 강철을 다듬는다. 작업반장은 생산량을 높이려 안달이다. 욕설은 기본, 폭력도 마다하지 않는다. 기름때를 씻지도 못하고 밥을 먹는다.
잔업과 철야는 예삿일이다. 철야 작업을 마치면 새벽 1시, 집에도 가지 못하고 회사에서 잠을 청한다. 일이 많아도 회사는 사정이 어렵다는 핑계로 월급 인상에 인색하다. 작업자들의 월급은 20만 원 남짓이다. 몸을 쓰는 노동자들은 시간만 나면 몸을 위로하기 바쁘다. 족구로 몸을 데우고, 담배로 몸을 태우고, 술로 몸을 녹인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낮은 임금으로 불만의 기운이 여기저기서 고조된다. 비밀리에 민주노조를 결성하려 하지만, 이를 감지한 회사는 어용노조를 세우며 방해한다.
경계에 선 노동자의 고뇌 <파업전야>
<파업전야>(1990)는 1988년 호황을 누리던 ‘동성금속’을 배경으로 착취를 당하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기까지의 험난한 과정을 보여준다. 평면적인 이야기로 보일 수 있지만, 사측과 노조 측의 경계에서 고뇌하는 ‘한수’를 주인공으로 세워 이를 벗어난다.
금속공장 노동자인 한수는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려 열심히 일한다. 동생을 대학에 보내고, 사랑하는 사람과 살 집을 마련하려면 잔업도 마다할 수 없다. 말 잘 들으면 승진시켜주겠다는 간부의 말에 더 성실히 일했다.
어느새 한수는 노조 활동을 막기 위해 회사가 결성한 ‘구사대’의 편에 서 있다. 사람답게 살기 위한 동료들의 투쟁과 일자리를 지켜야만 하는 한수의 절박함이 부딪힌다.
노조를 결성하려다 강제 퇴직당한 사람들은 회사에 몰래 숨어들어 건물을 점거한다. 하지만 사측은 깡패를 고용해 이들을 무자비하게 제압한다. 한수는 피투성이가 된 전 동료들의 모습을 목격하고 마침내 각성한다. 동료를 구하려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뛰쳐나간다.
자신이 근로자임을 잊은 사람들에게
영화는 소란스러웠던 80년대 후반의 산업현장을 그대로 보여준다.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려는 사측의 전술, 이로 인한 동료들의 갈등과 배신이 적나라하다. 특히 ‘빨갱이’라는 단어는 섬뜩하다. 노조를 결성하려는 분위기가 감돌자 회사는 직원들을 모아 ‘노조는 곧 공산주의자’라고 세뇌한다.
영화가 개봉된 33년 전의 상황과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노조’와 관련한 뉴스 기사 댓글에는 어김없이 ‘빨갱이, 공산주의자, 이직할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라며 비난 댓글이 달린다. 근로 환경 개선을 요구한다는 이유만으로 비난을 받는 것이다.
극중에서 노조 결성을 주도했던 원기는 고뇌하는 한수에게 이렇게 말한다.
“한수야, 우리가 가난한 건, 네가 학교에 못 간 건 우리 것을 빼앗겼기 때문이야. (중략) 돈은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바로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이지”
자신들의 가난이 착취당하기 때문임을,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자각한 노동자들. 영화가 추구하는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은 다소 투박한 표어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변화를 꿈꿨던 그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가치 있다.
<파업전야>는 한국영상자료원이 2014년 선정한 한국영화 100선에 올랐다. 근로자의 날을 앞두고 영화를 통해 과거의 노동 현장을 들여다 보는 것이 어떨까. 영화를 보고 ‘와, 이런 시대도 있었어?’라는 반응이 나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영화가 보내는 각성의 메시지는 33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유효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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