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통상 갈등과 관세 보복전이 격화되는 가운데, 한국은 조선·방산, 에너지, AI·반도체 등 전략 산업 중심의 협력을 통해 한미 산업 동반자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미협회는 15일 서울 상의회관에서 ‘한미 산업협력 컨퍼런스’를 열고, 산업별 협력 전략을 논의했다.

이날 행사에는 최중경 한미협회장(국제투자협력대사),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 박성택 산업부 제1차관, 제임스 킴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 등 양국 주요 인사와 전문가, 기업 관계자 120여 명이 참석했다.


조선·방산“MRO 협력 확대… 美 존스법 개정이 선결과제”
조선·방산 분야에서는 미국 함정의 정비(MRO)부터 건조까지 한국과의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제안이 이어졌다. 로버트 피터스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미국 조선소는 노후 함정의 수요 증가로 여력이 부족하다”며 “한국과의 MRO 협력을 통해 평시엔 조선소 부담을 줄이고, 전시엔 본토 복귀 없이 수리가 가능해 전략적 가치가 크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함정 건조 분야로 협력을 넓히려면, 미국 내 항만 간 화물은 자국 선박만 운송해야 한다는 ‘존스법’과 해외건조를 금지한 번스-톨레프슨법 등의 개정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HD현대중공업 정우만 상무도 “미 해군은 향후 30년간 364척의 신형 함정 도입을 목표로 하지만 현재 조선 능력으론 부족하다”며 “한국 조선사의 MRO 지원과 공동 건조가 미 해군 전투준비태세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에너지“미국산 LNG 수입 확대, 원전은 기술·시공 분업 최적 조합”
에너지 협력과 관련해선 LNG 수입 확대와 원전 기술 분업이 효과적인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마크 메네즈 미국에너지협회장은 “한국은 LNG를 전량 수입하는 국가로, 對美 무역 불균형을 완화하고 에너지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미국산 LNG 확대가 유리하다”고 밝혔다.


서울과기대 유승훈 교수는 “미국은 공급 과잉 상태인 LNG를 수출할 대상국을 찾고 있고, 한국은 협상을 통해 수입 단가를 낮출 여지가 있다”며 가격 협상력 측면에서도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원전 분야에선 기술력과 시공능력을 분업하는 양국 협력 모델이 제시됐다. 메네즈 회장은 “미국의 원천기술과 한국의 시공·운영 역량이 결합되면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강력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두산에너빌리티 장지호 팀장도 “미국 내 AI 인프라 확대와 함께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며 “양국의 원전 협력은 북미는 물론 중동과 아시아 시장 공략에도 유효하다”고 덧붙였다.

AI·반도체“AI 파운데이션 협력, 반도체 공급망 파트너로 한국 주목”
AI·반도체 분야에선 미국 주도의 AI 파운데이션 모델에 한국이 참여하고, 데이터센터·GPU 투자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BCG 김창욱 파트너는 “AI 대모델을 공유하고, 한국 기업이 GPU 리소스를 빌려 쓸 수 있는 GPUaaS 방식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피터슨연구소 마틴 초르젬파 연구원은 “한국이 미국산 AI 반도체에 대한 수입 제한이 없는 19개국 중 하나라는 점에서, 중국·인도 대비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다”며 “AI 인프라 확대와 서비스 경쟁력 강화에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마이크로소프트 마이크 예 아시아 총괄은 “AI 정책을 보면 미국은 ‘혁신 중심’, 유럽은 ‘규제 우선’, 중국은 ‘자립 강화’에 초점을 둔다”며 “이런 가운데 한국은 AI 반도체(HBM 등)의 안정적 공급국으로서 미국에 꼭 필요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규제보단 협력, 무역장벽 해소로 실질적 파트너십 강화해야”
최중경 한미협회장은 개회사에서 “한국의 생산 역량과 미국의 기술력이 결합하면 양국 모두에 이익이 되는 구조가 가능하다”며 “향후 미국은 한국을 안보 동맹을 넘어 전략적 산업 파트너로 인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일준 대한상의 부회장도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통상환경에서 한미 산업 협력은 회피가 아닌 공동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제조·공급망 연계는 무역적자 해소와 미국 내 산업 활성화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해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임스 킴 AMCHAM 회장은 “LNG, 조선, 반도체 등 전략 산업 중심의 협력 확대는 APEC 정상회의 성공의 핵심이 될 것”이라며 “비관세장벽 해소, 규제개혁을 통해 실질적 협력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