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디스플레이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불리면서도 양산의 기술적 난제에 가로막혀 있던 ‘페로브스카이트(Perovskite)’가 상용화의 임계점을 넘었다. 국내 연구진이 기존 고온 공정의 통념을 깬 ‘극저온 합성법’을 통해 품질 저하 없는 대량 생산 길을 열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그동안 해외에 의존해 온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의 ‘기술 주권’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산업적 의미가 크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13일 브리핑을 통해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이태우 교수 연구팀이 페로브스카이트 나노결정의 발광 효율을 100%로 유지하면서 대량 생산이 가능한 ‘저온 주입(Cold-injection)’ 합성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밝혔다. 해당 연구 성과는 재료 공학 분야의 기술적 진보를 인정받아 19일(현지시간) 세계 최고 권위지 ‘네이처(Nature)’에 게재됐다.

조종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초연구진흥과장(브리핑 영상)
‘고온’ 버리고 ‘0℃’ 역발상… ‘유사 유화’ 메커니즘으로 결정 균일도 잡았다
페로브스카이트 나노결정은 기존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나 Quantum Dot(양자점) 대비 압도적인 색 순도와 저렴한 가격 경쟁력을 갖췄음에도, ‘확장성(Scalability)’ 문제에 봉착해 있었다. 기존 주류 기술인 ‘핫 인젝션(Hot-injection)’ 방식은 150℃ 이상의 고온에서 합성이 이뤄지는데, 소량 합성에는 유리하지만 대량 생산 시 반응 속도 제어가 어려워 결정 크기가 불균일해지고 발광 효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한계가 있었다.
이태우 교수팀은 ‘온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깼다. 연구팀은 0℃ 부근의 저온 냉각된 리간드(Ligand) 용액에 전구체를 주입하는 방식을 고안했다. 핵심은 ‘유사 유화(Pseudo-emulsion)’ 상태의 발견이다.
저온 환경에서 전구체가 주입되면 즉시 결정화되지 않고, 마치 물과 기름이 섞인 듯한 ‘유사 유화’ 상태를 형성한다. 이 중간 단계가 결정화 속도를 물리적으로 지연시켜 결함(Defect) 생성을 억제하고, 균일한 입자 성장을 유도한다. 그 결과, 실험실 수준의 비커 단위를 넘어 산업용 수준인 20L급 대형 반응기에서도 실험실과 동일한 100% 발광 효율(PLQY)을 구현해냈다.

Cold-injection method (저온주입법)의 모식도와 Cold-injection method(저온주입법)을 활용한 페로브스카이트 나노결정의 대량 합성 및 어플리케이션
공정 비용 ‘뚝’, 친환경성 ‘쑥’… 양산 경제성 확보
산업적 측면에서의 경제성도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기존 고온 합성법은 고열을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 비용과 산소·수분 차단을 위한 특수 진공 설비가 필수적이었다. 또한 폭발 화재 위험성도 상존했다.
반면, '저온 주입법’은 상온 대기 중에서 합성이 가능해 복잡한 진공 설비가 불필요하다. 특히 공정에 사용되는 유해 용매의 양을 기존 대비 20분의 1 수준으로 줄여 환경 규제(ESG) 대응은 물론 원가 절감 효과까지 거뒀다. 이태우 교수는 “공정이 간단하고 안전해 페로브스카이트 소재의 제조 단가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즉시 상용화 가능한 수준의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Rec. 2020 충족하는 유일한 대안… “1년 내 TV용 필름 상용화”
디스플레이 업계가 이 기술에 주목하는 이유는 ‘화질’ 때문이다. 현재 차세대 방송 영상 표준인 ‘Rec. 2020’은 기존 DCI-P3 표준 대비 색 영역이 40%나 넓다. 현재 상용화된 OLED나 QD 소재는 발광 반치폭(FWHM)의 한계로 이 기준을 완벽히 충족하지 못한다. 반면 페로브스카이트는 좁은 반치폭(~20nm)을 가져 Rec. 2020을 만족하는 현존하는 유일한 소재다.
연구팀은 교원 창업 기업인 ‘에스엔 디스플레이(SN Display)’를 통해 기술 이전을 마쳤으며, 이미 태블릿 PC용 색변환 필름 시연에 성공했다. 이 교수는 “기존 양자점 필름을 대체하는 TV용 페로브스카이트 필름은 1년 이내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며 “3~5년 내에는 초미세 패턴 구현이 필요한 AR·VR용 자발광 소자 시장에도 진입할 것”이라고 로드맵을 제시했다.

이태우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교수(브리핑 영상)
소재 로열티 굴레 끊는다… 2014년 원천 특허의 힘
이번 성과는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의 고질적인 약점인 ‘소재 국산화’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은 디스플레이 패널 제조 강국이지만, OLED와 QD 등 핵심 소재의 원천 특허는 대부분 해외 기업이 보유해 막대한 로열티를 지불해왔다.
이태우 교수팀은 페로브스카이트 연구 태동기인 2014년부터 핵심 원천 특허 9건을 선제적으로 확보했다. 소재 합성부터 소자 제작까지 독자적인 IP 포트폴리오를 구축함으로써, 향후 시장 개화 시 기술 종속 없이 글로벌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한편, 이태우 교수팀은 지난 1월 15일 ‘네이처’와 ‘사이언스’ 동시 게재에 이어, 이달 19일 또다시 ‘네이처’ 본지에 논문을 등재하며 올해 들어서만 세계 3대 저널에 3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압도적인 연구 역량을 입증했다. 과기정통부는 “신진 연구자부터 리더 연구자까지 이어지는 장기적인 기초연구 지원이 맺은 결실”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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