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10곳 중 7곳 이상이 ‘2차 상법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기업의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 것으로 나타났다.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등 기업 지배구조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개정안이 연이어 논의되면서, 기업 현장에서는 법률 리스크와 경영권 불안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회장 최태원)는 최근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사 300개를 대상으로 ‘상법 개정에 따른 기업 영향 및 개선방안’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76.7%가 “2차 상법 개정이 기업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답했다고 밝혔다.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 및 경제8단체 부회장들이 상법개정 관련 의견을 나누고 있다.
2차 상법 개정안은 ▲집중투표제 의무화(정관으로 배제 불가), ▲감사위원 분리선출 대상 확대(1명 → 2명 이상)를 골자로 하며, 지난 11일 공청회가 열리며 입법 논의가 본격화됐다.
대한상의는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의 성장보다, 중견기업에서 다시 중소기업으로 회귀하는 사례가 더 많은 상황에서, 이번 개정안은 ‘중견→대기업’ 성장 경로마저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23년 말 기준, 중소→중견 전환은 301개사였으나, 중견→중소 회귀는 574개사로 회귀 기업이 273개 더 많았다.
경영권 위협 가능성도 74%…“시뮬레이션상 실제 위험 노출” 응답도
응답 기업의 74.0%는 2차 개정안이 경영권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이 중 38.6%는 “가능성은 존재하나 우려는 크지 않다”고 했고, 28.7%는 “주주 구성상 실제 위협 가능성이 높다”고 응답했다. “시뮬레이션 결과, 실질적 경영권 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고 판단한 기업도 6.7%에 달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에 대한 구체적 우려로는 ▲외부 세력 추천 인사의 감사위원회 장악 및 이사회 견제 심화(39.8%), ▲후보 확보 및 검증 부담 증가(37.9%), ▲감사위원 이사 겸직으로 의사결정 지연(16.5%), ▲경쟁사 추천 감사위원 통한 정보 유출 가능성(5.8%) 순으로 나타났다.
“2차 논의 전에 1차 개정 보완 먼저”…배임죄 개선 시급
기업들은 2차 개정 논의에 앞서, 1차 상법 개정에 대한 보완책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가장 시급한 대응 과제로는 ‘정부의 법해석 가이드 마련’(38.7%), ‘배임죄 개선 및 경영판단 원칙 명문화’(27.0%), ‘하위법령 정비’(18.3%) 순으로 응답이 많았다.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왼쪽 다섯번째) 및 경제8단체 부회장들이 상법개정 관련 의견을 나누고 있다.
대한상의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주주로 확대되면서, 향후 주주에 의한 고소·고발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며 “기존 경영판단 원칙이 유효한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는 만큼, 법적 해석 기준 마련과 함께 배임죄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배임죄와 관련해 가장 큰 문제로는 44.3%가 ‘구성요건의 모호성’을 지적했다. 실질 손해가 없더라도 위험 가능성만으로 처벌이 가능한 구조에서, M&A와 같은 모험적 의사결정조차 배임죄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외에도 ▲가중처벌 과도(20.7%) ▲고소·고발 절차의 용이성(18.3%) ▲시대착오적 기준(12.0%) ▲기업 간 정보 수집 악용(4.7%) 등이 지적됐다.
현재 국내 배임죄는 일반·업무상 배임(형법), 특별배임(상법), 특경법상 배임 등 3원 체제로 구성돼 있으며, 이 가운데 특경법 배임죄는 해외 주요국에는 없는 독특한 가중처벌 규정이다. 적용 기준인 5억 원·50억 원은 제도 도입 당시인 1984년 이후 한 번도 조정되지 않아, 시대 변화에 걸맞은 기준 개편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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