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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성장이 죄가 되는 한국, 이제는 규제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

기업성장 유인 꺾는 계단식 규제, 세계의 상식과 충돌

[칼럼] 성장이 죄가 되는 한국, 이제는 규제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 - 산업종합저널 동향
‘한국형 성장 페널티’라는 표현은 그 자체로 이 나라 기업 환경의 아이러니를 응축하고 있다. 기업이 크고 경쟁력을 키워 글로벌 시장에서 의미 있는 주체가 되려는 순간, 법과 제도가 되레 그들의 발목을 잡는다. 마치 더 빨리 달리는 선수의 발에 모래주머니를 달아주는 듯한 구조다. 세계 주요국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기업규모를 기준으로 한 누진적 규제가 한국에서만 고집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구조는 명백한 시대착오적 장벽이다.

대한상공회의소와 부산대 김영주 교수팀이 분석한 주요국의 기업규제 방식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미국과 영국은 기업의 ‘규모’가 아닌, 법적 지위나 시장에서의 ‘행위’를 기준으로 삼는다. 대기업이라는 범주 자체를 법령으로 구분하지 않으며, 상장 여부에 따라 필요한 회계나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선에서 규제가 이뤄진다. 독일과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자산이나 매출 규모에 따른 대기업 분류는 있되, 이는 어디까지나 회계공시나 조직관리 효율을 위한 분류일 뿐, 그 자체로 추가 규제를 부과하진 않는다. 규제가 작동하는 기준은 시장에서의 독점 행위, 정보 비대칭, 지배구조의 불투명함 같은 ‘구체적 행위’에 있다. 따라서 기업이 커졌다는 이유만으로 더 많은 규제를 받지는 않는다. 오히려 커진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유도’하는 시스템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상법, 자본시장법, 공정거래법 등 거의 모든 경제 관련 법률이 자산총액과 종업원 수, 매출 규모 등을 기준으로 기업을 나누고, 일정 규모를 넘을 때마다 새로운 규제를 부과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단 12개 법률에만도 343개의 ‘계단식 규제’가 있다. 이는 단순히 규제가 많다는 문제가 아니다. 기업이 클수록 규제 강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며, 법령 간 중복 규제도 빈번해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성장의 결과가 처벌로 되돌아오는 구조는, 글로벌 무대에서 ‘작은 거인’이 되려는 한국 기업의 동력을 뿌리째 흔든다. 결국 성장보다 ‘기존 상태 유지’가 합리적 선택이 되어버리는 역설이 발생한다.

[칼럼] 성장이 죄가 되는 한국, 이제는 규제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 - 산업종합저널 동향

이제 한국의 ‘성장 억제’ 규제는 본래의 명분마저 희미해졌다. IMF 이후 경제력 집중을 막고 중소기업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것이겠지만, 지금은 대외의존도가 높고 글로벌 경쟁에 노출된 ‘개방경제’ 체제다. GDP 대비 수출 비중이 44%를 넘고, 시가총액 100대 기업의 절반 이상이 해외에서 매출을 올리는 시대에, 대기업을 국내시장 안의 ‘불공정의 주범’으로 몰고 규제를 더하는 발상은 현실을 외면한 것이다. 시장은 세계로 열려 있는데, 규제는 국지적 자의성에 갇혀 있다.

더 늦기 전에 규제체계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기업의 덩치를 기준으로 한 누진적 규제 대신, 법적 지위와 행위 기반의 규제로 전환해야 한다. 이 말은 곧, 기업이 얼마나 크냐가 아니라 얼마나 투명하고 책임 있게 행동하느냐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한국 기업의 숨통을 틔우고, 혁신과 고용의 선순환을 만들어내는 출발점이다. 성장한 기업에게 돌아가야 할 보상은 ‘더 많은 족쇄’가 아니라 ‘더 큰 기회’여야 한다. 지금과 같은 규제 구조는 한국에서만 가능한 비정상이며, 더는 예외로 남겨둘 수 없다. 경제의 논리도, 시대의 흐름도 이미 그 방향을 외면하지 않는다.
<칼럼니스트_창작노마드>
산업종합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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