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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검증된 경력, 리스크 회피…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은 어디로”

“스펙보다 맥락, 기술보다 태도… A.C.E로만 읽히지 않는 채용시장”

[기자수첩] “검증된 경력, 리스크 회피…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은 어디로” - 산업종합저널 동향
하반기 채용의 문은 더 단단해졌고, 그 문을 여는 열쇠로 ‘A.C.E’라는 이름이 붙었다. 인공지능(AI), 소통 능력(Communication-fit), 직무 전문성(Experience). 대한상공회의소가 500여 개 기업을 상대로 진행한 조사 결과, 이 세 항목은 이제 기업이 인재를 가늠할 때의 공통분모가 되었다. 다만 그 문장 너머에 자리한 고용시장 전체의 풍경은 단순한 스펙 나열로 설명되기 어렵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AI 역량’이라는 표현이다. 여기엔 단순한 코딩 능력이나 특정 자격증 이상의 의미가 들어 있다. 기업이 말하는 AI 역량은 ‘데이터를 어떻게 다루고’, ‘기술을 어떤 방식으로 문제 해결에 활용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기존 시스템을 어떻게 전환시킬 수 있는가’에 가깝다. 결국 AI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의 문제이며, 맥락을 읽고 새로운 질서를 설계하는 능력에 가깝다. 이른바 ‘AI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아닌 ‘AI를 통해 기회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다만 기업이 원하는 사람상은 고도화되고 있지만, 채용의 현실은 오히려 수축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인재상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듯 보이지만, 이면에는 ‘리스크 없는 채용’을 선호하는 흐름이 강하게 작동한다. 신입보다 경력직이 선호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이미 검증된 경험, 이미 확인된 업무 적합성. 즉,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기보다는 실패 가능성을 줄이는 전략이 우선시되는 셈이다. 인재를 기르는 대신 골라 쓰는 방식이 점점 일반화되는 흐름이다.
[기자수첩] “검증된 경력, 리스크 회피…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은 어디로” - 산업종합저널 동향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소통 능력이다. 그간 조직 적응력이나 협업 태도 정도로 다뤄졌던 이 항목은 이제 단순한 ‘사람 됨됨이’ 평가를 넘어섰다. MZ세대와의 커뮤니케이션, 비대면 환경에서의 팀워크, 디지털 협업 도구에 대한 이해력까지 포함한다. ‘말이 통하는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맥락을 읽고 반응하는가’라는 질문에 가깝다. 실무 역량만으로는 부족하고, 조직 내 갈등을 예방하고 리드할 수 있는 사람인지가 중요해진다는 의미다. 결국 ‘일을 잘하는 사람’보다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채용의 관건이 된다는 말이다.

여기에 노동 관련 제도 변화까지 겹치며 기업의 채용 전략은 더욱 조심스러워지고 있다. 주 4.5일제, 정년 연장, 포괄임금제 폐지 등은 단지 제도의 변화가 아니다. 기업이 인재를 바라보는 방식, 직무의 정의, 근무 시간과 성과의 관계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꾸고 있는 흐름이다. 이전에는 채용이 곧 성장의 발판이었다면, 지금은 채용이 불확실성의 진입로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뚜렷하다.

하반기 채용시장에 관한 이번 조사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기술은 도구이고, 그 도구를 맥락 속에서 다룰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도구를 다룰 줄 아는 능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술을 넘어선 사유, 관계를 맺는 태도, 불확실한 미래를 감내하는 자세까지 요구받고 있다. 결국 기업이 찾는 건 ‘스펙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 그 스펙 너머에서 어떻게 움직일지를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다. A.C.E라는 표제어만으로 이 채용시장을 설명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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