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 국가산업단지의 한 부품 제조 공장. 신규 수주에 맞춰 로봇 공정을 재설정해야 하지만, 복잡한 코딩을 수행할 전문 인력을 구하지 못해 라인이 멈춰 서 있다. 과거라면 외부 엔지니어를 섭외해 일주일 넘게 밤을 새워야 했던 작업 환경이 인공지능(AI)의 판단만으로 한 시간 만에 재개된다.

이주경 박사가 제조업 자율화를 이끌 자율제조 다중 에이전트 AI 기술을 점검하고 있다.
한국전기연구원(KERI) 인공지능연구센터 이주경 박사팀은 국립창원대학교와 공동으로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고 로봇이 스스로 판단해 행동하는 자율제조 다중 에이전트(Multi-Agent) AI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정부 글로컬대학30 사업 성과인 자율제조 AI 기술은 인력난을 겪는 지역 제조 기업의 공정 효율을 높일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기존 공장 자동화 로봇은 전문가가 사전에 입력한 규칙 기반(Rule-based) 코딩에 따라 움직이는 수동적 기계에 머물렀다. 작업 환경이 변하거나 부품 형상이 바뀌면 엔지니어가 수천 줄의 코드를 다시 작성해야 했으며, 중소기업에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 부담으로 작용했다.
언어·시각·제어 에이전트의 유기적 협업 구조
연구팀은 거대언어모델(LLM)을 기반으로 명령을 이해하고 최적의 작업 계획을 수립하는 에이전틱 AI(Agentic AI)를 구현했다. 핵심은 다중 에이전트를 활용한 지능적 분업이다. 작업반장 역할을 하는 언어 에이전트가 명령을 내리면 시각(비전) 담당과 로봇 제어 에이전트가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역할을 분담하는 방식이다.

이주경 박사(왼쪽아래) 연구팀이 자율제조 다중 에이전트 AI 기술을 개발했다.
개발 과정에서 현실 인식(Grounding) 기술의 한계도 보완했다. 기존 로봇은 "저기 빨간 부품"이라는 지시를 받아도 '저기'에 해당하는 좌표나 '빨간 부품'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해 오작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율제조 AI 기술은 언어 에이전트가 작업 의도를 파악하면 비전 에이전트가 카메라로 사물의 3차원 좌표를 분석하고, 로봇 에이전트가 정밀하게 동작하는 유기적 시스템을 갖췄다. 가상 세계의 지능을 실제 현장의 움직임으로 연결하는 행동하는 AI(Actionable AI)를 완성한 셈이다.
공정 재설정 168시간에서 1시간으로 단축
경제적 파급 효과는 수치로 증명된다. 복잡한 코딩 과정이 말 한마디로 대체되면서 전문가가 일주일(168시간) 가량 매달려야 했던 공정 재설정 작업 시간이 1시간 이내로 줄어든다. 처음 접하는 물체나 환경에도 즉각 적응할 수 있어 다품종 소량 생산이 필수적인 중소기업의 소프트웨어 개조 비용을 절감한다.
연구 성과는 구글(Google), 엔비디아(NVIDIA), 테슬라(Tesla)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경쟁하는 시각-언어-행동(VLA, Vision-Language-Action) 분야에서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해외 기술은 거대 모델 중심이라 구동이 무겁고 특정 하드웨어에 종속되는 경향이 있으나, KERI 기술은 제조 현장에 맞춰 경량화·모듈화하여 즉시 투입 가능한 현장 적용성을 확보했다.

연구진이 ‘자율제조 다중 에이전트 AI’ 기술을 점검하고 있다.
이주경 한국전기연구원 인공지능연구센터 박사는 "지역 중소·중견 기업이 고비용과 인력 부족으로 AI 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며 "기존 제조 라인을 큰 비용 없이 지능화할 수 있는 솔루션을 통해 지역 제조업 경쟁력을 높이겠다"라고 밝혔다.
KERI와 국립창원대학교는 연구에 참여한 인력을 지역 산업 현장에 즉시 투입 가능한 AI 전문가로 육성할 계획이다. 기술 이전을 가속화해 인구 감소와 제조 경쟁력 하락이라는 구조적 난제를 해결하는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