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유가 급등에 대응해 정부가 내놓은 ‘고유가 피해지원금’의 취지는 분명하다. 여유 있는 상위 30%를 제외하고, 상대적으로 더 힘든 소득 하위 70% 국민에게 두텁게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숫자만 놓고 보면 반대하기 쉽지 않은 설계다. 국민 열 집 중 일곱 집이 대상이고, 농어촌과 인구감소 지역에는 더 얹어 주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현장에서 돌아오는 말은 “이번에도 또 나만 빠졌다”에 가깝다. 취지는 연대였지만, 체감은 여전히 “누가 안에 있고 누가 밖에 있는지”를 가르는 선별의 정치에 가깝다는 것이다.
‘하위 70%’와 삶의 현실이 어긋날 때
고유가 피해지원금의 공식 기준은 ‘소득 하위 70%’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이 정책은 훨씬 단순한 문장으로 와 닿는다. “건강보험료 많이 내면, 상위 30%라서 탈락.” 최근 몇 년 사이 자영업자와 프리랜서의 소득은 널뛰듯 변동하지만, 행정 시스템 속 건보료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장사가 안 돼도, 작년에 잠깐 실적이 좋았어도, 올해 이미 폐업을 했어도, 서류상으로는 여전히 ‘소득 상위’로 찍히기 쉽다.
이들의 삶은 다르다. 실제 수입은 줄어 기름값이 부담스러운데, 행정 데이터 한 줄이 지원 여부를 갈라 놓는다. 서류상 기준 때문에 “나는 항상 선별에서 밀려나는 사람”이라는 감각이 쌓이는 이유다. 반대로 정부가 말하는 ‘하위 70%’의 경계선, 이를테면 수도권 4인 가구 기준 월소득 900만~1000만 원 언저리라는 숫자는 또 다른 종류의 불신을 낳는다. 집값과 전세, 대출 상환, 교육비와 통근비를 감당하느라 빠듯한 가구까지 일괄적으로 ‘상위 30%’로 분류되는 순간, “우리가 과연 여유 있는 계층인가”라는 반론은 자연스럽다.
이 간극은 숫자와 피부감각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정부는 통계상 소득 분포와 재정 여력을 기준으로 정책을 설계한다. 반면 시민은 통장 잔고와 카드 명세서, 매달 늘어나는 고정비와 체감 물가를 기준으로 스스로의 처지를 판단한다. ‘하위 70%’라는 말이 현실의 삶과 어긋날수록, 선별 기준을 둘러싼 신뢰는 조금씩 닳아 떨어진다.
가장 아래와 바로 위, 서로 다른 박탈감
고유가 피해지원금은 이름 그대로 유류비 부담을 덜겠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사회 최하층에 가까운 사람들 가운데는 이 정책과 기묘하게 엇갈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생계급여를 받거나 차상위 계층에 속하는 상당수는 애초에 자가용을 유지할 형편 자체가 안 된다. 이들에게 고유가는 “기름값 몇 백 원 차이”가 아니라, 난방비와 공공요금, 장바구니 물가 전반의 문제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차를 굴릴 여유도 없는데, 왜 또 ‘기름 넣을 사람’ 중심으로 논의가 돌아가느냐”는 허탈감이 흘러나온다. 정책이 유류비 지원의 프레임에 갇힐수록, 기름을 쓸 여유조차 없는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정책 바깥에 서 있는 기분을 호소하게 된다.
한편, 사회의 중간과 그 바로 위에 있는 계층은 또 다른 방식으로 소외감을 말한다. 자차 출퇴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직장인, 외곽에 살며 장거리 통근을 감수하는 맞벌이 가구, 아이 통학과 부모 병원 진료를 위해 차를 나눠 쓰는 가족들이 그렇다. 이들은 실제로 고유가의 직격탄을 맞고 있지만, 소득과 건보료 기준에서 몇 칸 위에 있다는 이유로 ‘상위 30%’라는 라벨을 달고 지원 대상에서 빠진다. “차라리 차가 없으면 모르겠는데, 기름값 때문에 생활을 줄이는 우리가 상위 30%라니”라는 푸념은 누가 과장해서 만든 문장이 아니다.
정책의 한가운데서 가장 기름값에 민감한 일부 직장인은 탈락하고, 기름을 쓸 형편조차 안 되는 최하층은 애초에 논의에서 비껴나 있다. 고유가 피해지원금이 겨냥한다고 믿었던 대상과 실제로 돈이 닿는 사람들 사이에, 묘한 빈 공간이 생기는 지점이다.
‘에너지 정의’와 ‘지역 형평성’의 긴장
소득 기준만으로는 고유가의 충격을 다 포착할 수 없다고 본 정부는 지역별 차등이라는 장치를 더했다. 수도권·대도시보다 비수도권에는 더 많이, 그중에서도 인구가 줄어드는 농어촌 지역에는 최대 2배 이상 얹어 주는 구조다. 대중교통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취약하고, 난방과 이동을 위해 에너지를 더 많이 쓸 수밖에 없는 농어촌의 현실을 감안하겠다는 의도다. ‘에너지 정의’라는 이름으로 설명되는 이유다.
그러나 기준선을 넘나드는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의 감정은 이 단순한 서사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 서울·수도권 거주자들은 “기름값이 오른 건 전국인데 왜 우리만 상대적으로 덜 받느냐”고 묻는다. 이미 높은 집값과 월세, 교통비를 감당하느라 허덕이는 상황에서, 고유가 피해지원금마저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난다는 사실은 상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같은 광역 생활권 안에서도 바로 옆 시·군과 지원액이 다를 때, “생활권은 같은데 왜 우리 동네만 적게 받느냐”는 불만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지역별 차등 지원은 한편으로 농어촌의 구조적 불리함을 보정하려는 시도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도권 주민에게 또 다른 형평성 논란의 소재가 된다. 정부는 에너지 지출 비중과 교통 인프라 격차라는 ‘정의’의 언어로 이를 설명하지만, 시민들은 자신의 지역과 생활권 단위에서 억울함을 호소한다. 충분한 설명과 데이터 없이 선이 그어질수록, 이 조정 장치는 ‘에너지 정의’가 아니라 ‘지역 갈라치기’에 가깝게 인식될 위험이 커진다.
이름은 ‘고유가’, 실상은 복합 정책
이쯤에서 질문을 바꿔 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이번 지원금을 정말 “기름값 지원”으로만 설계했을까. 아니면 고유가라는 계기를 활용해 여러 정책 목표를 한 번에 묶어 내려 했던 것은 아닐까.
실제 구조를 들여다보면, 고유가 피해지원금은 몇 가지 목적이 겹쳐 있는 복합 정책에 가깝다. 우선, 기름값을 직접 내리는 대신 현금성 지원을 택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유류세를 더 깎는 방식은 겉으로 보기엔 단순해 보이지만, 기름을 많이 쓰는 사람일수록 더 큰 혜택을 보는 역진성을 피하기 어렵다. 소득 상위층과 다차량 보유 가구가 오히려 더 많이 돌려받는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굳이 상위 30%를 제외하고, 소득과 지역 기준을 촘촘히 손 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름값” 그 자체보다 “고유가가 불러온 생활비·물가 부담”을 겨냥한 설계다.
지원금은 위축된 소비를 떠받치고 물가 충격을 완충하는 ‘경제 안정 장치’의 성격을 띤다. 유가 상승은 물류비와 운송비, 난방비를 통해 생활 전반을 압박한다. 정부가 지역사랑상품권이나 카드 포인트 등으로 지급 수단을 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고유가로 움츠러든 가계의 소비를 다시 지역 상권과 골목 경제 안으로 순환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상위 30%를 원천 배제하고, 농어촌·인구감소 지역에 더 얹어 주는 구조는 소득과 지역 간 재분배 정책의 필터를 함께 품고 있다. 고유가라는 위기를 명분으로, 평소 정치적으로 민감한 보편지원 vs 선별지원, 수도권 vs 비수도권의 균형 문제까지 한 번에 손보려 한 셈이다.
문제는 이 복합성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표면적으로는 “고유가 피해를 본 서민을 돕는 지원금”이라 말하면서, 실제로는 소득·지역·계층 재분배 정책으로 기능하는 순간, 시민들은 “기름값 지원이라더니 정작 기준만 나누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품게 된다. 정책의 이름과 실제 효과가 멀어질수록, 정책 자체에 대한 신뢰도 함께 거리를 둔다.
“또 나만 빠졌다”를 줄이려면
고유가 피해지원금은 한 번으로 끝나는 일회성 이벤트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 논란이 남기는 흔적은 그보다 오래 갈 가능성이 크다. 재정 여력이 빠듯한 한국에서 선별 지원은 앞으로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때마다 “하위 몇 퍼센트”라는 숫자와 “현실의 삶”이 어긋나는 경험이 쌓이면, 어떤 정책이 나와도 “어차피 또 나는 해당 안 되겠지”라는 냉소부터 앞설 것이다.
이를 피하려면 무엇보다 기준의 설계와 설명 방식부터 손봐야 한다. 건강보험료 한 줄로 삶을 재단하는 관행에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덧대는 일, 최근 실직·폐업·소득 급감자를 위한 별도 경로를 두고 이의신청 절차의 문턱을 낮추는 일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과제가 아니다. 모두에게 똑같이 주거나 아예 0과 1로 나누는 대신, 일정 수준의 보편성을 깔고 그 위에 선별을 얹는 방식 역시 고려할 수 있다. “나는 왜 항상 0원이냐”는 감정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구조가 필요하다.
지역별 차등 역시 마찬가지다. 자가용 의존도, 대중교통 인프라, 가계 에너지 지출 비중 같은 구체적 데이터와 원칙을 보다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같은 생활권·광역권 안이라면 최소한 같은 구간에서 움직인다는 기본 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무엇을 줄이기 위해, 누구를 우선하기 위해 선을 그었는지, 그 선이 나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정책에 대한 설득이 시작된다.
결국 관건은 솔직함과 정교함이다. 정말 기름값 충격 완화가 중심이라면, 유류 소비와 더 직접적으로 연동되는 장기 대책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소득 재분배와 서민 지원이 주된 목표라면, 고유가라는 이름 뒤에 숨기지 말고 그 자체로 정면 승부를 걸어야 한다. 지금처럼 여러 목적을 한 바구니에 넣고 “고유가 피해지원”이라는 이름 하나로 포장할수록, 시민들은 점점 더 정책의 진짜 얼굴을 의심하게 된다.
위기 상황에서 정책은 단순한 돈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안에 있고, 누가 밖에 있는지, 그 경계를 누가 어떻게 정하고 설명하는지의 문제다. “하위 70% 준다더니, 또 나만 빠졌다”는 말이 더 이상 농담처럼 오가지 않으려면, 선을 긋는 기술보다 선을 긋는 이유를 설명하고, 그 선 밖에 선 사람을 줄이는 일에 더 많은 정치적 상상력과 행정적 수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