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태양전지로 꼽히는 페로브스카이트는 빛을 전기로 바꾸는 효율이 뛰어나지만, 수분과 열에 노출되면 구조와 성능이 빠르게 저하되는 약점을 안고 있다. 실제 환경에서 비나 높은 습도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소자의 성능이 급격히 떨어지기 쉽다. 산업계는 수분과 산소 침투를 막기 위해 유리나 플라스틱 소재의 두꺼운 밀봉 보호층인 봉지재를 씌워 왔다. 하지만 무거운 덮개는 제조 비용을 높이고, 태양전지의 최대 강점인 가벼움과 유연성을 훼손하는 딜레마를 낳았다.
이정용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연구팀은 고려대학교 공동연구진과 함께 무거운 덮개를 씌우는 대신, 태양전지 내부의 전자구조를 재설계해 봉지재 없이도 효율과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개발했다고 20일 밝혔다. 외부 차단에 의존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소재 자체의 에너지 흐름을 제어하는 방식으로 구조적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다.
막힌 정공 흐름 뚫어낸 계단식 설계
연구팀은 유기 고분자를 결합한 기존 하이브리드 태양전지의 성능 저하 원인을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 3차원 다중물리 모사와 초고속 분광 분석을 거친 결과, 전자가 빠져나간 자리인 정공이 유기층에 비정상적으로 쌓이면서 전류와 전압의 흐름이 왜곡되는 현상을 확인했다. 전하가 원활하게 이동하지 못하고 특정 계면에 갇히면서 효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구조적 결함이었다.
연구팀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깊은 에너지 준위를 지닌 피엠원(PM1) 유기 고분자를 새롭게 도입했다. 피엠원(PM1)은 정공이 한곳에 쌓이지 않고 계단을 오르내리듯 단계적으로 이동하도록 에너지 흐름을 정렬하는 역할을 한다. 이정용 교수는 “정공이 쌓이는 지점을 없애고 에너지 준위를 계단처럼 설계해 전류-전압 특성의 왜곡을 제거했다”고 설명했다. 전류 왜곡 현상을 제거한 결과, 태양전지의 최고 효율은 27.18%까지 상승했으며, 세계 최고 수준인 26.71%의 공인 효율을 달성했다.
수치로 입증한 3,000시간의 생존력
내부 구조 재설계는 효율 상승을 넘어 강력한 수분 차단막 역할까지 수행했다. 피엠원(PM1) 기반 층은 외부 수분 침투를 막아내며 가혹한 환경에서도 태양전지의 형태를 유지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85℃의 온도와 85%의 상대습도 조건에서 봉지재 없이 3,000시간을 구동한 후에도 초기 효율의 95% 이상을 유지하는 데이터를 확보했다.
화학 반응 속도를 예측하는 아레니우스 모델을 적용해 상온(25℃) 기준으로 환산하면, 초기 효율의 80%에 도달하는 시간은 3만5,590시간에 달한다. 무거운 보호막 없이도 약 4년 동안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장기 내구성을 수치로 제시한 셈이다. 물에 직접 담그고 씻어내는 시험에서도 일반 페로브스카이트 박막이 즉시 분해된 것과 달리, 연구팀이 개발한 박막은 장시간 형태를 보존했다.
경량화 돌파가 여는 시장 판도 변화
보호막을 걷어낸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경량화가 필수적인 미래 에너지 시장에서 새로운 선택지를 만드는 기술로 평가받는다. 무거운 유리를 덧댈 필요가 없어지면서, 건물 외벽이나 창문에 직접 부착하는 건물 일체형 태양광(BIPV) 시장의 진입 장벽이 크게 낮아졌다. 1g의 무게조차 비용으로 직결되는 우주항공용 전원이나, 형태를 자유롭게 구부려야 하는 이동형 기기 전원 분야에서도 상용화 속도를 높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이정용 교수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가 안고 있던 효율과 안정성 간의 상충 관계를 새로운 전자구조 설계로 완화했다”며 “차세대 태양전지 상용화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 결과는 에너지 분야 국제학술지 네이처 에너지(Nature Energy)에 지난 18일 온라인 게재됐다. 태양전지 생존의 기준이 두꺼운 외부 장벽 구축에서 정교한 내부 구조 제어로 옮겨가는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