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는 15일 AI 반도체 경쟁의 다음 승부처가 고대역폭메모리(HBM) 단일 기술이 아니라 전력과 인프라 투자, 인재, 지정학적 위험까지 아우르는 산업 전반의 대응력에 있다고 진단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메모리 반도체 기업에 머물지 않고 AI 서비스와 모델, 인프라, 반도체, 전력 공급망, 자본을 아우르는 ‘AI 풀스택’ 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교수는 이날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경제는 민주당’ 제57강에서 ‘미국과 중국의 추격 속에서 AI 반도체 패권 사수 전략: HBM의 미래와 더불어’를 주제로 강연했다.

김정호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가 1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AI 반도체 산업의 병목 요인과 한국 메모리 기업의 대응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김 교수는 AI 산업의 주요 병목으로 메모리의 속도와 용량, 전력 공급, 인프라 투자 비용 조달, 인력 부족, AI 확산에 따른 인간 소외 문제 등 다섯 가지를 꼽았다. AI 반도체의 성능만 높이는 것으로는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고, 이를 실제로 가동할 전력망과 대규모 투자 자본, 전문 인력까지 함께 갖춰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 같은 변화에 대응하려면 기업의 역할 자체를 넓혀야 한다고 봤다. AI 서비스와 AI 모델, AI 인프라, AI 반도체, 전력 공급망, 자본을 하나의 체계로 묶는 ‘AI 풀스택’ 역량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메모리 회사가 단순 부품 공급업체를 넘어 AI 산업 생태계 전반을 아우르는 기업으로 변해야 한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메모리 반도체에서 확보한 기회를 지키는 동시에 축적된 자본을 기술과 인재에 다시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 문화도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바꾸고, 기술과 인재를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을 경영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추격도 주요 리스크로 제시했다. 김 교수는 중국 메모리 업체의 D램과 낸드 시장 확대가 이어지고, 이후 자체 HBM 생산 역량까지 확보하는 시나리오를 내놨다. 김 교수는 자신의 중국 관련 시나리오에서 약 3년 안에 중국이 초기 단계의 HBM3 생산에 나설 가능성을 전망했다.
중국 메모리 기업의 생산량과 기술력이 확대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쟁력에도 정치·경제·기술·인재 측면에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봤다. 한국 반도체 인력이 중국 기업으로 이동하는 문제도 변수로 꼽았다. 김 교수는 중국 시나리오의 다음 단계로 미국이 중국에 대한 기술·소재·장비 통제를 완화하고 양국이 협력 국면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제시했다.

김정호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가 HBM의 미래와 AI 반도체 경쟁 환경 속 한국 기업의 대응 방향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미국 역시 한국 메모리 산업의 또 다른 변수로 언급됐다. 김 교수는 미국이 자국 내 반도체 생산기반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현지 투자와 생산 확대를 요구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미국 메모리 기업에 대한 지원 확대와 한국산 메모리의 통상 환경 변화 가능성도 미국 관련 리스크 시나리오에 포함했다.
김 교수가 제시한 시나리오처럼 중국의 메모리 경쟁력이 확대되고 미국의 공급망 재편 압력이 동시에 커질 경우, 한국 메모리 기업은 제품 경쟁력뿐 아니라 생산 거점과 투자 규모, 통상 비용까지 함께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기업 운영 방식에도 AI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교수는 AI 에이전트와 AI 커머스를 생산과 설계, 운영, 인사, 재무, 기획 등 기업 전반에 적용해 생산성을 높이고, AI 교육과 인재 육성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한국 메모리 기업이 현재의 HBM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장기 우위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봤다. 전력과 자본, 인재를 확보하고 지정학적 변수를 함께 관리하는 기업으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AI 반도체 패권 경쟁의 승부처가 개별 반도체 성능을 넘어 기업과 산업 생태계 전체의 대응력으로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