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스포가 될 수 있습니다!
과거 경제 개발, 산업의 발전만을 생각하며 환경을 지켜주지 못했던 인류는 결국 자연이 당했던 고통을 그대로 돌려받을 위기에 처했다. 지질시대 단위로 ‘인류세(人類世)’라고도 불리는 현대의 지층에는 방사능 원소의 사용 흔적과 각종 플라스틱 쓰레기가 쌓여간다.
바다와 땅이 쓰레기로 뒤덮이고, 인류 또한 환경 호르몬 등에 의한 새로운 질병이 발생하는 등 위기는 직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지구 온난화의 가속화는 빙하를 빠르게 녹이며 해수면을 높였고, 이로 인해 일부 섬 지역에 사는 인간들의 거처는 곧 고요한 바다 속으로 가라앉을 예정이다.
많은 일들이 이미 벌어지고 나서야, 인류는 환경을 보호해야 인류도 살아갈 수 있다는 당연한 진리를 깨달았다. 이미 늦었지만, 다행히도 개선의 여지는 아직 남아있다. 이에 환경을 생각하는 제품, 환경을 생각하는 생산과정을 구축하며 환경 재생과 보호를 위한 노력이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최근 환경보호를 위한 다양한 운동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의 환경 운동의 역사는 생각보다도 더 오래됐다. 특히 ‘두산전자 페놀 방류 사건’은 전 국민에게 환경 문제를 각인시킨 성공적 환경 운동의 사례로 꼽힌다.
이 사건은 지난 10월 개봉한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종필 감독, 2020)의 중요한 줄기를 구성하는 모티브로 사용됐다.
90년대 성별·학벌에 따라 차별이 일상이었던 시대상을 그린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상고 출신 삼진그룹 계약직원 이자영(고아성), 정유나(이솜), 심보람(박혜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자영은 삼진그룹의 삼진전자 공장으로 출장을 갔다가 기업의 불법적 행동으로 인해 공장 주변 주민들이 입은 피해를 발견한다. 그 피해 상황을 외면할 수 없었던 이자영은, 정유나와 심보람을 비롯한 다른 계약직 여직원들과 함께 작은 힘을 모아 기업의 불법적 행태뿐만 아니라 그 뒤에 숨은 거대한 음모까지 막아낸다.
극중 삼진그룹 계열사인 삼진전자에서 자행한 불법적인 일이 바로 ‘페놀 방류’다. 페놀은 실제로 다양한 유기화합물을 만들 때 필요한 물질이지만, 소화기와 호흡, 또는 피부 접촉 등을 통해 인체에 흡수될 경우 중추신경계, 심장, 혈관, 폐 등에 심각한 손상을 일으킬 수 있는 독성을 가진다. 이런 독성 물질을 삼진전자 공장은 정화 처리를 하지 않은 채 수차례 방류, 이로 인해 수질오염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는 물론, 주변 주민들의 건강도 크게 악화된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인 이자영이 폐페놀이 나오는 광경을 직접 목격하고 사건을 파헤친다. 실제 사건은 페놀 방류를 확인한 자세한 상황만 다를 뿐, 영화에서 그려진 것보다 더욱 큰 규모로 낙동강을 수원으로 삼는 영남권 국민들에게 피해를 입혔다.
‘두산전자 페놀 방류 사건’은 1991년 3월 14일, 밤 10시부터 15일 새벽 6시 사이에 발생한 페놀 유출 사고로 인해 그 본색이 드러났다. 당시 경북 구미국가산업단지 내에 위치했던 두산전자의 페놀원액 저장 탱크에서 30t 가량의 페놀원액이 낙동강으로 유출됐다.
그러나 기업 측은 이 사실을 관계기관에 알리지 않았고, 유출된 페놀은 정수시설로 유입되면서 소독제인 염소와 결합, 극심한 악취를 발생시켰다. 당시 페놀 유출 사건의 원인은 두산전자의 생산라인 중 파이프 이음새가 파열됐기 때문으로 알려졌고,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로 30일 영업정지 처분 중 20일도 채우지 않고 조업 재개가 허용됐다.
그러나 이후 2차 유출이 발생했다. 이후 두산전자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가려졌던 불법적 행태가 들통났다. 두산전자는 1990년 말부터 1일 평균 1.7t의 페놀 폐수를 정화과정 없이 불법 방류해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대구시의 감시가 매우 허술했던 점과, 페놀 오염수치를 조작해 사건을 축소하려는 정황까지 포착됐다. 당시 정부 또한 환경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는 방증이다.
기업들의 안일한 환경의식과 이윤추구에만 급급한 비윤리적인 경영을 두고, 각종 시민단체와 환경보건단체, 소비자단체는 수도료 납부 거부 운동, 두산그룹 박용곤 회장 및 환경처 장관 고발, 두산 그룹 계열의 OB맥주 불매 운동 등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이러한 활동들은 전국적으로 환경에 대한 문제를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다.
영화에서는 페놀 방류 사건을 쉬쉬하며 환경 조사 결과지를 조작하고,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 적은 돈을 주며 무마하려는 기업 측의 배상 아닌 배상이 이뤄진다. 또한, 페놀 방류 사건에 사과하는 척하면서, 폭락한 주가를 바탕으로 헐값에 기업을 일본 회사에 인수합병 시키려는 국제 기업 사냥꾼들의 비열한 면모도 드러난다. 모두 이윤추구를 위해서라면 환경과 그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뒷전이었던, 환경에 무심한 모습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많은 국가에서 이미 벌어진 과거의 과오들을 반추하며,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기준 및 다양한 법적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소비자들이 환경 문제를 인식하는 수준 또한 매우 높아졌다. 이제는 환경을 생각하는, 친환경 기업일수록 브랜드의 가치 제고는 물론 이윤까지 얻는다. 산업이 환경을 조금이라도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sjshin@industry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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