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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톺아보기] 그는 아직, 일하고 있었다

정년넘었는데 다시 부른 이유, 중소사업장 재고용 현실 속 이름 없는 지속의 기록

[산업 톺아보기] 그는 아직, 일하고 있었다 - 산업종합저널 동향

점심시간이 끝난 공장은 조용했다. 기계 소리도, 사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한 남자가 있었다. 깎아지른 이마에 희끗한 머리카락, 그의 손엔 여전히 스패너가 들려 있었다.

그는 정년을 넘겼다. 그러나 퇴장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물러날 나이라고 말했지만, 그는 남았다. 일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일해야만 해서. 그것은 생계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일터에 남는다는 건, 누군가에게는 '나는 아직 여기에 있다'는 선언이었다.

경기도의 작은 사업체들, 그곳에서 정년은 숫자일 뿐이었다. 5인 이하, 10인 미만. 정년을 묻는 질문에 고개를 젓는 대표들이 많았다. 정년이 없다는 말은, 언제든 떠날 수 있고 언제든 남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남는 사람들은 종종 퇴직자였다. 오래된 손, 익숙한 동작, 이름만 불러도 반응하는 경험들.

그들을 다시 부른 이유는 간단했다. 익숙해서였다. 위험한 공정에서, 한 치 오차 없이 마무리되는 그들의 작업을 대체할 수 있는 이는 드물었다. 새로운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 자리를 맡길 수 있는 믿음이 없어서였다.

그러나 제도는 그들을 뒷받침하지 않았다. 재고용은 제도의 이름을 빌렸지만, 실상은 임시방편에 가까웠다. 매뉴얼도, 기준도 없이, 사람마다, 사업장마다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일하고 있었다. 자신이 쌓은 자리에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천천히 사라지기 위해.

고용의 지속이란 결국 사람의 문제다. 시스템 이전에 신뢰가 있고, 법 이전에 관계가 있다. 이제야 말할 수 있다. 그들의 일은 연장의 논리가 아니라 존중의 태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고령이라는 단어가 생산성의 반의어가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는 너무 늦게 깨닫는다.

떠나지 않고 남은 이들의 이유. 그들은 아직, 필요하다. 다만, 그 사실을 아직 말하지 못했을 뿐이다.
박재영 기자 기자 프로필
박재영 기자
brian@industry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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