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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톺아보기] “새벽을 들어 올리는 사람”

아무도 보지 않는 노동자, 오전 4시, 도시가 깨어나기 전의 삶

[산업톺아보기] “새벽을 들어 올리는 사람” - 산업종합저널 동향

오전 4시. 거리는 아직 잠들어 있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 수거차 한 대가 조용히 멈췄다. 그 뒤편에 한 남자가 섰다. 반사조끼를 입고, 장갑을 낀 손으로 쓰레기 봉투를 들었다.

그의 하루는 어둠에서 시작됐다. 누구도 보지 않는 시간,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장면. 쓰레기는 쌓이고, 그는 그것을 치운다. 하나하나, 조용히, 빠르게. 비닐봉지 너머로 느껴지는 내용물의 무게까지 그는 안다. 어디가 터질지, 어디가 위험한지. 손끝으로 읽어낸다.

이 일이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엔 잠이 가장 힘들었다. 몸이 아니라 시간에 익숙해지는 데 오래 걸렸다. 새벽에 나가고, 아침에 돌아와 자는 삶. 세상과 시간표가 달랐다. 그러다 보니 점점 말수가 줄었다. 대신 몸이 익었다.

누군가는 묻는다.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그럴 때면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이 일은 설명해서 이해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고, 그는 할 수 있어서 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몇 해가 흘렀다.

사람들은 쓰레기를 버리면서도, 누가 그것을 치우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매일, 그 흔적을 만진다. 식은 국물, 찢어진 종이, 무거운 페트병. 그 속엔 어제의 삶이 들어 있고, 오늘의 피로가 묻어난다.

차가 다시 움직인다. 다음 골목으로, 또 그 다음 거리로. 그와 함께 일하는 동료는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았다. 노랫말은 잘 들리지 않지만, 그 소리가 새벽의 숨결처럼 느껴졌다. 사람 없는 거리, 멀어지는 수거차. 그 속에서 그는 묵묵히 일하고 있었다.

햇살이 비치기 시작할 때쯤, 일이 끝난다. 차고지에 돌아오면, 그는 옷을 벗고 손을 씻는다. 냄새는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 그래도 익숙하다. 이 냄새가 있어야 잠이 잘 온다고 그는 말했다. 그 말은 농담 같았고, 조금은 진심 같았다.

그는 내일도 같은 시간, 같은 길을 돌 것이다. 누군가는 자고 있고, 누군가는 하루를 준비할 때. 그가 다녀간 자리엔 다시 깨끗한 거리가 남는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그는 생각한다.
박재영 기자 기자 프로필
박재영 기자
brian@industry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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