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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고용도 안 되고, 공제도 없다… 공장은 버틴다”

중견기업 세제개편, ‘형평’보다 ‘선제’가 필요하다

[기자수첩] “고용도 안 되고, 공제도 없다… 공장은 버틴다”

[기자수첩] “고용도 안 되고, 공제도 없다… 공장은 버틴다” - 산업종합저널 동향
‘세금’이라는 단어는 대개 불편하게 다가온다. 혜택보다 부담이 먼저 떠오르고, 공제는 고용이나 투자와 같은 공공 목적을 위한 제도임에도 왠지 ‘면세’나 ‘탈세’와 비슷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한국 경제에서 중견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이들에게 주어지는 세제 인센티브는 단순한 지원을 넘어선 생태계 유지 장치에 가깝다. 올해 세제개편안과 함께 논의되고 있는 중견련의 5대 건의안은 바로 그 상식적인 전제에서 출발한다.

특히 ‘임시투자세액공제’는 그 상징적인 제도다. 중소·중견 제조업이 설비 투자로 경기를 방어할 수 있도록 설계된 안전판이지만, 말 그대로 임시라는 한계가 따라붙는다. 제도는 일몰을 앞두고 있지만, 경기 반등의 신호는 아직 멀다. 일시적 혜택이 아니라 구조적인 설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그래서 무겁다. 지금은 공제를 연장할지 말지를 놓고 단순한 손익계산서를 펼칠 때가 아니라, 불확실성 앞에 민간이 움직일 유인을 마련해줘야 할 시기다.

고용세액공제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점진적 공제 방식으로 정책의 효율을 높이고자 하지만, 한 명 두 명 고용조차 버거운 상황에서 ‘최소 고용 증가 인원 5명’이라는 기준은 현실과 괴리가 크다는 주장이 있다. 고용유인은 어느 시점보다도 ‘초기’에 집중돼야 한다는 중견련의 지적은 단지 이해 집단의 요구로만 보기 어렵다. 대출금 상환조차 어려운 적자 기업들에 ‘나중에 혜택 줄 테니 미리 고용하라’는 말은 무책임에 가깝다.
[기자수첩] “고용도 안 되고, 공제도 없다… 공장은 버틴다” - 산업종합저널 동향

지방 인력난 문제는 더욱 절실하다. 수도권 편중은 새삼스러울 것 없는 현상이지만, 중소기업에만 비수도권 채용 공제를 적용하면서 중견기업은 빠뜨렸다는 점은 명백한 설계 미스다. 지역 균형 발전을 말하면서 중견기업을 제외하는 구조가 여전히 유지되는 것은, 정책이 얼마나 현실의 단면을 놓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중견기업은 지방에서 ‘공장 하나로 읍내를 살린다’는 말을 들을 만큼 파급력을 가진 존재다. 이들이 빠진 고용 정책은 시작부터 구멍이 나 있다.

배당정책 변화 역시 마찬가지다. 대주주 비과세 폐지라는 방향은 일견 정당하게 들릴 수 있지만, 투자 비중이 높은 업종이나 고배당 정책을 유지해온 상장 중견기업 입장에서 보면 그동안 쌓아온 시장 신뢰 자체를 흔드는 일이다. 하나의 규제를 도입하면서도 그에 대한 업종별 차등, 기업 규모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당연한 이야기가 아직도 현장에서 외쳐지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기만 하다.

정책은 언제나 형평성과 효율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선별’보다는 ‘선제’가 필요한 때다. 재정 부담을 피하기 위해 조건을 세분화하고 대상을 좁히는 순간, 혜택은 명목만 남고 정책은 힘을 잃는다. 조세 형평이라는 이름으로 투자와 고용을 미루게 만들 바엔, 일정한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만든 흐름이 결국 미래의 세원을 회복시킨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수차례 경험으로 배운 바 있다.

중견기업은 공룡도 아니고, 그렇다고 스타트업의 날렵함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한국 산업에서 이들이 사라진다면 허리는 곧 무너진다. 이번 세제개편안이 그 사실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는 앞으로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렸다. 정책이 현실을 이기긴 어렵지만, 현실을 따라가는 감각마저 없다면 정책은 누구도 움직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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