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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노동은 끝나지 않았다, 구조가 끝냈을 뿐이다

60세 이후의 삶, '추방'이 아닌 '역할'을 설계해야

[데스크칼럼] 노동은 끝나지 않았다, 구조가 끝냈을 뿐이다 - 산업종합저널 동향
김수찬 씨(62세·경기도 거주)는 매일 아침 6시에 기상한다. 셔츠를 다리고 구두를 닦는다. 나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 가족 모두가 알지만, 그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이 무너질 것 같다고 했다. 퇴직 후, 그는 자신이 투명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길을 건너도 차가 멈추지 않았고, 은행 창구에선 똑같은 설명을 두 번 들어야 했다. 그제야 알았다. 일을 그만둔 게 아니라, 세상이 자신을 그만둔 것이었음을.

노동이 멈춘다는 건 수입만 끊기는 게 아니다. 그 사람의 호명, 역할, 리듬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나 쉽게, 한 사람의 노동을 '60'이라는 숫자로 잘라버린다. 능력도, 의지도, 열정도 고려되지 않는다. 이력서 끝에 찍힌 출생년도만이 탈락 사유가 된다.

최근 열린 중장년 일자리 박람회에서 만난 구직자들은 물었다. "일할 수 있는데, 왜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느냐"고. 그들의 눈빛은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함이었지만, 고용주들은 '조금이라도 젊은 사람'을 찾는다는 말을 공공연히 했다. '일하고 싶다'는 마음보다 '몇 살이냐'는 숫자가 앞섰다.

일할 사람은 있는데, 일할 구조가 없는 사회
이제 묻는다. 우리는 정말 고령화 사회를 준비하고 있는가. 인구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나라에서, 계속 일하고 싶은 중장년이 설 자리가 없다면, 그 사회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계속 일할 수 있는 구조 없이, 계속 늙어가는 인구만 있다면 그건 사회가 아니다.

[데스크칼럼] 노동은 끝나지 않았다, 구조가 끝냈을 뿐이다 - 산업종합저널 동향

해결책은 멀리 있지 않다. 일본처럼 정년을 유지하되 고용을 연장하는 '계속고용제도'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정년퇴직 후에도 기존 업무를 변형하거나 경력을 전환해 일할 수 있는 체계가 없다면, 60세 이후의 삶은 '추방'에 가깝다. 정부가 이제야 '60세 이상 고용 의무화' 논의를 꺼냈지만, 재정 지원과 기업 인센티브가 따르지 않으면 선언은 공허하다.

일각에서는 젊은 세대의 일자리를 위협할까 불안해한다. 하지만 이는 왜곡이다. 지금 중장년이 원하는 건 '자리 뺏기'가 아니라 '다른 역할'이다. 현장 코치, 후배 멘토, 전환형 직무 등 수많은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기업이 그것을 설계할 생각이 없다는 점이다. 청년에게도, 노년에게도 일을 허락하지 않는 구조. 지금의 노동 시장은 그 중간을 완전히 놓치고 있다.

일은 존재다, 구조를 바꿔야 사회가 산다
일은 소득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이에게는 그것이 자존이고, 존재다. 은퇴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걸어 나오는' 삶. 그걸 허락하지 않는 사회는 결국 누구에게도 안전하지 않다. 지금의 노동은 60세에 끝나지 않는다. 끝난 건 단지 낡은 구조일 뿐이다.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무너지는 건 개인이 아니라 이 사회 전체다.

"이 나이에 다시 일하고 싶다"는 말이 부끄럽게 들리는 나라. 하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양복을 입고 오늘도 이력서를 쓴다. 그 손끝이 떨릴수록, 우리가 고쳐야 할 시스템은 분명해진다.

'일하고 싶다'는 사람에게 사회가 할 일은, 문을 여는 것이다. 이유를 묻는 것이 아니라, 길을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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