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업무 시간을 단축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지고 있다. 오히려 AI가 쏟아내는 불완전한 결과물을 수습하느라 업무량이 늘어나는 이른바 '워크슬롭(Workslop)' 현상이 직장인들의 새로운 스트레스 요인으로 부상했다.
자동화의 편리함 대신 '검수의 지옥'에 빠진 노동 현장의 실태를 분석했다.
'워크슬롭', 그럴듯한 쓰레기의 습격
워크슬롭은 MIT 미디어랩과 스탠퍼드 소셜미디어랩이 고안한 용어로, '지저분한 잔재(Slop)'와 '일(Work)'의 합성어다. AI가 맥락 없이 생성한 회의 요약, 통계 오류가 섞인 보고서, 작동하지 않는 코드 등이 이에 해당한다.
문제는 결과물이 겉보기엔 그럴듯해 보인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직장인들은 AI가 1초 만에 뱉어낸 초안을 검증하고 수정하는 데 몇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일의 총량은 줄지 않고, '창작'에서 '오류 수정'으로 노동의 성격만 바뀐 셈이다.
"일 줄인다더니"... 생산성 하락·번아웃 호소
실제 지표들도 'AI의 역설'을 증명한다.
매체 'AI 매터스'가 MIT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 분석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AI를 도입한 직장인의 77 %가 "오히려 생산성이 줄었다"고 응답했다. 시간을 아낄 것이란 기대와 달리, 산출물의 오류를 바로잡는 시간이 절약된 시간을 상쇄했기 때문이다. 기업의 95 %가 AI 투자 대비 측정 가능한 수익을 얻지 못했다는 포춘(Fortune)의 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국내 상황도 다르지 않다. ZDNet Korea가 직장인 6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 AI 도입 후 기술적 압박감(테크노스트레스)으로 인한 소진율은 33 %, 일과 가정의 갈등은 18 %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직장인 3분의 1은 과중한 업무로 인해 "6개월 내 퇴사를 고려한다"고 답할 정도다.
'보이지 않는 노동'에 집중력 소진
전문가들은 이를 '숨겨진 노동(Hidden Workload)'의 폭증으로 정의한다. 프롬프트를 입력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팩트를 체크하고, 문장을 다듬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노동자의 집중력과 판단력이 지속적으로 소모된다는 것이다.
단순한 시간 낭비를 넘어, "이 결과물이 진짜 맞는가"를 끊임없이 의심해야 하는 심리적 피로도가 핵심이다. 개발자와 지식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동료가 생성한 AI 코드나 문서를 검토하는 것이 처음부터 직접 작성하는 것보다 더 큰 리소스를 요구한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반복 작업만 AI에... 책임 구조 명확해야"
전문가들은 AI 도입 전략의 전면 수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무조건적인 도입보다는 ▲반복 작업(AI)과 판단 영역(인간)의 명확한 역할 구분 ▲산출물에 대한 품질 가이드라인 수립 ▲직원 대상 프롬프트 전략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술 업계 관계자는 "AI는 만능 해결사가 아닌 초안 작성 도구로 봐야 한다"며 "자동화의 효율은 검수 책임이 인간에게 과도하게 전가되지 않을 때 비로소 작동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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