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언어모델(LLM)이 코딩을 대체하는 시대, 인간에게 요구되는 핵심 역량은 ‘디버깅(오류 수정)’과 ‘문제 해결’로 이동했다. 기술 패러다임이 뒤집힌 상황에서 한국 인공지능(AI) 인재 양성 체계가 근본적인 한계에 직면했다는 진단이 나왔다. 국회미래연구원과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한국공학한림원은 2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정책토론회를 열고 국가 차원의 생태계 재편을 촉구했다.
현장에서는 인력의 절대적 규모 부족과 핵심 두뇌의 해외 유출에 대한 위기감이 팽배했다. 김기식 국회미래연구원장은 “미국이 전 세계 최고급 두뇌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중국이 국가적 총력전으로 기술 격차를 좁히는 사이 한국은 심각한 인력 유출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위기를 돌파할 첫 번째 열쇠는 ‘평가 기준의 전환’이다. 임문영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부위원장은 학위나 논문 같은 형식적 지표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했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변수를 통제하고 협업을 통해 실질적인 결과물을 도출하는 실행력 중심으로 정책의 판을 바꿔야 한다는 의미다.

(왼쪽부터) 최재식 KAIST(카이스트) 교수, 여영준 가천대 교수
인재 수요의 질적 변화도 도마 위에 올랐다. 최재식 카이스트(KAIST) 교수는 AI가 코드를 짜는 환경에서 인간의 역할은 시스템의 오류를 잡는 디버깅으로 넘어갔다고 분석했다. 기술 환경 변화에 맞춰 인력을 전문·융합·활용 분야로 세분화해 육성해야 한다는 논리다. 최 교수는 “중국은 초·중학생부터 AI 의무 교육을 도입해 500만 명 규모의 예비 인력을 키워내고 있다”며 파괴적 혁신을 이끄는 인재에게 합당한 사회적 보상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중국의 위협은 단순한 머릿수에서 나오지 않는다. 여영준 가천대 교수는 중국의 개방형 혁신 생태계에 주목했다. 최상위 기술 기업이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를 개방하고, 지방 도시가 특화된 규제 샌드박스를 제공하며 산학연이 거대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개별 대학의 역량에 의존하는 파편화된 구조에 머물러 있다. 여 교수는 권역 연합 기반의 교육 모델을 구축하고, 기업이 주도하는 연구 거점 중심의 연구개발(R&D) 자금 지원 체계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AI 경쟁력은 결국 ‘어떤 생태계에서 인재를 길러내는가’로 귀결된다. 교실 안의 학위 경쟁을 넘어, 산업 현장의 데이터를 만지고 오류를 수정하며 성장하는 실전형 생태계 구축이 시급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