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만에는 반도체와 선박을 실은 컨테이너가 쉴 새 없이 쌓이지만, 도심 상권의 소비와 공장 설비투자는 좀처럼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 경제가 수출 호조와 내수·고용 둔화가 공존하는 구조에 놓였다는 진단이 나온다.
수출 독주 속 소비·투자 동반 감소
재정경제부(Ministry of Finance and Economy)가 12일 발표한 ‘2026년 6월 최근경제동향’에 따르면 5월 수출은 반도체·컴퓨터·선박 수요 확대에 힘입어 전년 동월 대비 53.2% 급증했다. 일평균 수출액도 42.8억달러로 60.7% 늘며 견조한 흐름을 보였다.
반면 내수 관련 지표는 부진했다. 4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전산업생산이 광공업·서비스업·건설업에서 모두 줄어 전월 대비 0.6% 감소했다. 소매판매는 내구재·비내구재 판매가 함께 줄며 3.6% 감소했고, 설비투자지수도 기계는 늘었지만 운송장비가 줄면서 전월 대비 3.6% 감소했다.
조성중 재정경제부 경제분석과장은 “최근 우리 경제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호조와 소비·기업심리 개선 등 회복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며 “다만 4월 생산·투자·소매판매 지표가 일제히 감소하는 등 실물 지표 간 온도차도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물가·고환율 부담 속 17개월 만의 고용 감소
중동전쟁 장기화로 인한 고유가와 환율 상승은 민생과 실물 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5월 소비자물가는 석유류 가격 상승 영향으로 전년 동월 대비 3.1% 올랐다. 근원물가지수(식료품·에너지 제외)와 농산물·석유류 제외 지수도 각각 2.5% 상승했고, 생활물가지수는 3.3% 올랐다.
고용 지표도 꺾였다. 5월 취업자 수는 2,916만 명으로 전년 동월보다 4만 명 줄었다. 취업자 수가 감소한 것은 2024년 12월 이후 17개월 만이다. 같은 기간 고용률은 63.3%로 0.5%포인트 하락했고, 실업자는 87만8,000명으로 2만5,000명 늘면서 실업률은 2.9%로 0.1%포인트 상승했다.
조 과장은 “2024년 12월 이후 처음으로 취업자 수가 다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며 “중동전쟁 영향이 시차를 두고 고용에도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향후 전개에 따라 고용 회복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환율 효과보다 반도체 수요… “수입물가 경로 주시”
원·달러 환율 급등도 양면성을 가진 변수다. 5월 국내 금융시장에서 주가와 국고채 금리, 환율은 모두 상승했다. 환율 1,500원 선 돌파는 수출 기업에는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우호적이지만, 수입 물가 상승을 통해 물가·내수에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조 과장은 “이론적으로 환율 상승은 수출에는 긍정적, 수입 물가와 내수에는 부정적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면서도 “최근 수출 호조는 환율 효과보다는 반도체를 비롯해 이차전지, 바이오헬스, 선박 등에서 글로벌 수요가 크게 늘고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뒷받침된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반면 환율 상승과 고유가가 맞물려 수입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는 만큼, 물가와 민생 부담을 줄이기 위한 대응에 힘을 쏟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방 위험’ 대신 ‘불확실성’… 수출→내수 전이 여부 관건
재정경제부는 이번 ‘최근경제동향’ 종합 평가에서 그동안 사용하던 ‘경기 하방 위험’이라는 표현을 ‘불확실성’으로 바꿨다.
조 과장은 “중동전쟁 장기화 가능성이 여전히 우리 경제의 하방 요인으로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최근 OECD 등 주요 기관이 반도체 호조를 반영해 우리 성장률 전망을 상향 조정하는 등 상방 요인도 함께 존재한다”며 “하방 위험만을 강조하기보다는 상·하방 요인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불확실성’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수출 호조와 소비·기업심리 개선을 근거로 경기 회복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물가 상승과 고용 둔화가 민생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고 있다. 중동전쟁을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가 지속되는 가운데, 무역수지·경상수지 흑자 확대와 수출 개선이 내수 회복과 일자리 창출로 얼마나 연결될 수 있을지가 향후 경제정책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표상으로는 수출·지수 개선 등 상방 신호와 물가·고용 부담 같은 하방 요인이 교차하는 양상이다. 정부는 비상경제 대응체계를 유지하면서 고유가 피해지원금 등 추가경정예산의 신속 집행, 주요 품목 수급 관리, 물가 안정 대책을 병행해 중동전쟁발 충격을 완화한다는 방침이다. 수출에서 시작된 회복 흐름이 얼어붙은 소비와 투자를 살리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불확실성’ 속에서 정책의 실효성이 시험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