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골을 열어 칩을 심고 전선을 연결하던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Computer Interface, BCI) 기술이 주사 한 대와 외부 자기장을 이용한 무선 제어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뇌파의 전기 신호를 읽어내는 데 머물렀던 뇌과학의 한계를 넘어, 나노 입자를 통해 특정 뇌세포에 직접 명령을 내리는 구조적 변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2026년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자로 융합과학 분야를 개척한 천진우 연세대학교 언더우드 특훈교수를 선정했다고 지난 6일 밝혔다. 천진우 교수는 나노과학과 생명공학을 결합해 질병 진단과 세포 치료, 뇌 회로 교정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가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안전기반팀장(영상 캡처)
“연구자가 명예와 자긍심 갖도록 돕는 상” 이가영 팀장, 취지와 심사 과정 설명
이가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안전기반팀장은 브리핑에서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연구성과를 이룬 과학기술인을 발굴해 국민에게 널리 알리고, 연구자가 연구에 전념하면서 명예와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과학기술 분야 최고 권위의 상”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올해 수상자는 지난해 12월 후보자 추천 공고 이후 약 6개월간의 추천과 엄격한 심사 절차를 거쳐 선정됐다”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앞으로도 우수 과학자를 지속적으로 발굴·포상해 기초연구 생태계 조성과 과학기술 인재 강국 실현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이번 수상자는 과학기술 관련 기관·단체에서 추천된 19명과 발굴위원회에서 발굴한 1명 등 총 20명 가운데, 전공자 심사–분야별 심사–통합심사 및 공개 검증을 거쳐 최종 결정됐다. 연구개발 업적뿐 아니라 경제발전 기여도와 국민 생활 향상에 미친 영향 등도 종합 평가 요소로 반영됐다.
나노의학 개척, ‘무선·표적’ 뇌 회로 제어 기술로 패러다임 전환
정진호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우수과학자 포상 통합심사위원장)은 “2026년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자는 나노의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천진우 연세대 언더우드 특훈교수”라고 발표했다. 그는 “천 교수는 나노과학과 생명공학을 융합해 질병 진단, 세포 치료, 뇌 회로 교정 등 기존 의학 분야의 한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융합과학을 개척했다”며 “지능형 DNA 나노로봇과 나노-자기유전학(Magnetogenetics) 기술을 확립해 자기장으로 뇌 신경을 무선 제어하는 등 뇌 의학의 게임체인저로서 파괴적 혁신을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나노의학은 질병 진단과 약물 전달 방식에 혁신을 가져온 분야로, 향후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와 뇌과학 난제 해결에도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천 교수의 나노-자기유전학 연구는 2021년 ‘네이처 머티리얼스(Nature Materials)’와 2024년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Nature Nanotechnology)’에 연이어 게재되며, 글로벌 학계에서 그 영향력을 인정받았다.
전기 BCI 넘어 ‘주사형 무선 제어’…천진우 “reading보다 writing에 강점”
천 교수는 브리핑에서 나노-자기유전학을 “자기장을 이용해 세포를 조절하는 기술로, 철새·연어 등 자연계에서 자기장을 이용해 이동하는 현상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구 자기장이 생체에 영향을 주고 특히 뇌의 작동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나노 기술로 검증하고자 했다”며 “2021년에는 자기유전학 방식으로 세포와 쥐 수준에서 뇌세포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2024년에는 서킷(회로) 레벨에서 기전을 밝혀냈다”고 말했다.
현재 BCI 분야에서는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처럼 전기 신호를 읽어 인간의 의도를 해석하는 ‘리딩’ 기술이 먼저 발전했다. 이에 대해 천 교수는 “뉴럴링크 방식은 뇌에 칩과 전선을 심어 뇌파를 읽어내고, AI 알고리즘을 통해 움직임 같은 의도를 해석하는 데 강점을 가진다”면서도 “우리가 개발하는 자기유전학은 특정 뇌세포에 자극을 줘 무엇을 하게 만드는 ‘커맨더’, 즉 writing 측면에 더 강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기 기반·자기장 기반을 포함해 다양한 BCI 기술이 서로 보완적으로 결합될 때, 다음 단계의 뇌-컴퓨터 인터페이스가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기유전학의 장점과 임상 적용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천 교수는 “전기 기반 방식은 디바이스와 전선이 필요한 반면, 자기유전학은 나노 입자를 주사약처럼 몸에 넣고 외부 자기장으로 뇌 신호를 켜고 끄는 방식이라 침습성이 낮고 선이 필요 없다”며 “인체 적용을 위해서는 나노 물질의 독성이 없어야 하고, 쥐에서 성공한 기술이 원숭이 등 영장류에서도 작동하는지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원숭이 모델에서 안전성과 효과를 확인한 뒤 임상시험으로 넘어가는 것이 목표”라며 “뇌 작동 원리를 밝히는 기초연구와 뇌질환 치료에 쓰일 수 있는 응용 연구를 모두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IBS 나노의학연구단·막스플랑크 센터…“나노 스케일로 심부 조직 제어 도전”
천 교수는 2015년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의학연구단 단장으로 연구단 설립을 주도해 국내 나노의학 연구 허브를 구축했다. 2025년에는 독일 막스플랑크협회와 연세대·IBS가 공동으로 ‘막스플랑크-연세 IBS 연구센터’를 출범시키며 국제 협력 기반을 확대했다.

천진우 연세대학교 언더우드 특훈교수(영상 캡처)
그는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자율성과 장기 지원을 중시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기관으로, 한국은 IBS를 통해 이미 유사한 그룹 연구·장기 자율 연구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연세대·IBS가 제안서를 제출하고 막스플랑크협회가 직접 선정해, 일본 리켄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국제 센터가 만들어진 것”이라며 “센터 이름은 ‘Nano Scale Deep Tissue Control’로, 나노 스케일에서 인체 깊숙한 심부 조직·세포를 정밀 제어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현재는 양측 연구진이 워크숍과 원격 회의를 통해 “어떤 문제를 왜 풀어야 하는지, 어떤 개념과 툴이 필요한지”를 논의하는 단계로, 10년 이상 장기 연구를 통해 난제를 해결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천 교수는 “기초과학 연구는 초기에 문제 설정과 개념 설계에 시간이 걸리지만, 방향이 잡히면 이후에는 빠르게 진전될 수 있다”며 “심부 조직 제어 기술이 잘 확립되면 뇌뿐 아니라 다양한 장기·질병군을 이해하고 치료하는 새로운 방식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 학계 리더·후학 양성…“흔들리지 않는 과학 위한 관계 설정 중요”
천 교수는 연세대 화학과에서 학·석사를 마친 뒤 미국 일리노이대 어바나-샴페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2년 연세대 화학과 교수로 부임해 현재 언더우드 특훈교수로 재직 중이며, 미국화학회와 영국왕립화학회 석학회원, 세계적 화학 학술지 ‘저널 오브 더 아메리칸 케미컬 소사이어티(JACS)’ 부편집장으로 활동하며 국제 학계에서 한국 과학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자신과 과학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지 묻는 질문에 대해 그는 “IMF 직후 카이스트에서 교수직을 시작할 당시 연구비가 부족해도 앞으로 중요해질 것으로 보이던 나노화학을 선택했다”며 “나노 물질 합성은 당시 장비 의존도가 낮고, 잘 알려지지 않은 영역이라 ‘플라스크에 넣고 끓이는’ 수준으로 시작해도 새로운 연구를 개척할 여지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과학자는 주변 펀딩·유행에만 맞추기보다, 본인이 풀고자 하는 문제와 연구 주제와의 관계를 강하게 설정해 흔들리지 않는 과학을 해야 한다”며 “10년, 20년, 30년을 버텨 난제를 풀었을 때 의미 있는 과학을 했다는 보상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젊은 과학자·창업·정년…“딥테크 창업·석학 정년 완화로 brain drain 줄여야”
한국에서 젊은 인재가 의대로 쏠리는 현상과 과학자의 처우에 대해 천 교수는 “의대 교수들은 새벽 출근, 긴 회진, 수술, 응급 상황 등 훨씬 힘들고 책임이 큰 일을 하지만, 직업적 보상과 안정성이 크기 때문에 젊은 세대가 의대를 선호하는 구조”라고 진단했다. 반면 “과학·공학은 현대 문명을 만든 핵심이지만, 과학자·기술자에 대한 사회적 보상은 충분하지 않다”며 “딥테크를 기반으로 한 창업과 기업가 정신을 통해 젊은 과학자가 발명을 통해 부자가 되고 미래 산업의 주역이 되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년·brain drain 문제와 관련해 그는 “대학 정년은 65세지만 IBS 단장직은 70세까지 이어갈 수 있어, 연세대·IBS에서 석학제도 등을 통해 일부 연장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라며 “사학법 등 제도 때문에 정년 연장에 법적 제약이 있지만, 과학기술에 기여할 수 있는 석학들이 계속 연구 설비와 인력을 갖고 활동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과학기술 분야에서 brain drain을 줄이려면, 시작 단계뿐 아니라 경력 후반에도 석학들이 과학·기술을 통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포지션을 유지하게 하는 제도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Human Intelligence 이해가 궁극 목표…AI와 공존할 과학 준비해야”
뇌 회로가 더 많이 밝혀졌을 때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천 교수는 “우울증, 치매, 파킨슨병 등 뇌에서 비롯되는 많은 질환은 뇌 네트워크와 서킷을 잘 이해할수록 보다 정확한 치료 방법이 나올 수 있다”며 “우리가 개발하는 자기유전학과 나노 스케일 제어 기술은 뇌과학자들이 사람의 생각·기억·감정이 무엇인지, 뇌 회로가 질병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하는 데 필요한 새로운 툴과 개념을 제공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AI는 인간 지능을 모방한 것이고, 앞으로 인간 지능과 인공지능이 공존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Human Intelligence를 더 잘 이해하는 것이 AI 시대에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결정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천 교수는 수상 소감에서 “지난 30여 년간 연세대·카이스트·IBS 동료들과 함께한 연구 성과가 이번 수상의 기반이 됐다”며 “국가와 여러 기관의 지속적인 지원 덕분에 가능했던 만큼, 기초과학과 나노의학 연구를 통해 앞으로도 사회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