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빌리러 주차장까지 걸어갈 필요가 없는 도시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앱으로 차량을 예약하면 빈 차가 약속한 장소까지 오고, 이용자가 운전을 마친 뒤 반납을 누르면 차량은 다시 차고지로 돌아간다. 운전석에는 사람이 없지만, 별도 관제 공간의 원격운전자가 차량을 움직인다.
![[산업+Culture] 차가 스스로 ‘마중’ 나오는 도시…판교 원격운전 실증이 열어볼 일상 - 산업종합저널 FA](http://pimg3.daara.co.kr/kidd/photo/2026/08/26/thumbs/thumb_520390_1787703194_60.jpeg)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가상 이미지입니다.
경기도가 9월 말부터 판교 제1·2테크노밸리와 판교역 일대에서 시작하는 ‘도심지 공유차량 배송·회수형 원격운전 서비스’ 실증은 이런 장면을 실제 도로 위에서 시험하는 사업이다. 이용자는 차량을 직접 운전하지만, 차량을 보내고 회수하는 구간은 원격운전으로 처리한다. 완전자율주행차가 모든 도로 상황을 스스로 판단하는 시대에 앞서, 사람이 원격으로 차량을 이동시키는 방식이 도시 이동의 빈틈을 메울 수 있는지 확인하는 단계다.
경기도는 12월 말까지 3개월 동안 실제 도심 환경에서 기술 안전성과 서비스 가능성을 검증한다. 9월 말부터 10월까지는 안전운전자가 탑승한 베타서비스를 운영하고, 11월부터 12월까지는 안전운전자 미탑승을 목표로 시범서비스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이용 대상은 판교테크노밸리 입주기업 임직원이다.
주차장에서 사라지는 ‘차 찾기’
현재의 차량 공유 서비스는 이용자가 차량이 있는 장소까지 이동해야 한다. 대여와 반납이 가능한 구역을 확인하고, 주차된 차량을 찾아가고, 이용 뒤에는 정해진 장소에 다시 세워둬야 한다. 차량을 공유해도 이용자의 이동 동선은 완전히 줄어들지 않는다.
원격 배송·회수 서비스는 이 순서를 바꾼다. 이용자가 전용 앱에서 예약·결제를 하면 원격운전자가 차량을 지정 장소까지 이동시킨다. 이용자는 차를 인수한 뒤 직접 운전하고, 목적지에서 반납을 신청한다. 이후 차량은 원격운전으로 차고지나 다음 이용자의 위치로 이동한다.
공유차량은 ‘정해진 주차장에 있는 차’를 빌리는 서비스에서 ‘필요한 시간에 이용자 곁으로 오는 차’로 바뀔 수 있다. 도심 안에서 차를 찾고 반납하는 데 쓰던 시간이 줄어들면, 공유차 이용은 대중교통과 개인 차량 사이의 선택지로 한층 가까워질 수 있다.
판교에서의 실증은 차량 2대와 원격운전 스테이션 2대를 활용해 평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운영된다. 서비스 지역은 판교테크노밸리 내부이며, 초기에는 경기기업성장센터 입주기업 임직원을 대상으로 운영한 뒤 제2판교테크노밸리 전체 입주기업 임직원으로 넓히는 방식이다.
자율주행의 빈틈 메우는 원격운전
원격운전은 완전자율주행과 닮아 보이지만 기술의 출발점은 다르다. 완전자율주행차는 차량이 카메라·레이더·라이다 등 센서 정보와 인공지능을 활용해 도로 상황을 판단하고 스스로 주행하는 것을 지향한다. 원격운전은 차량 밖에 있는 운전자가 주행영상을 보며 조향·가속·제동을 제어하는 방식이다.
경기도는 기존 4G·5G 통신망과 양산 차량을 활용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완전자율주행에 필요한 모든 인프라와 차량 기술을 한꺼번에 갖추기보다, 통신과 원격 제어를 연결해 제한된 구역과 특정 목적에서 서비스를 먼저 시험하는 접근이다.
이 방식은 자율주행의 대체재라기보다 보완 기술에 가깝다. 완전자율주행차가 돌발 상황을 만났을 때 원격 지원을 받거나, 사람이 탑승하지 않은 차량이 제한구역 안에서 이동해야 할 때 활용할 수 있다. 자율주행이 도로 위의 판단을 자동화하는 기술이라면, 원격운전은 차량을 움직이는 운영의 일부를 떨어져서 관리하는 기술이다.
‘운전’에서 ‘차량 운영’으로
원격운전이 확산하면 자동차 산업의 관심도 차량 판매에서 차량 운영으로 옮겨갈 수 있다. 자동차를 소유한 개인이 운전하고 주차하는 구조에서, 차량을 누가 언제 어디로 보내고 충전하고 정비하며 다음 이용자에게 연결할지를 관리하는 산업이 커질 수 있다.
공유차량 배송·회수는 그 출발점이다. 차량의 빈 시간과 빈 이동을 줄이려면 예약 수요에 맞춰 차량을 배치해야 한다. 원격운전 스테이션, 차량 관제, 통신 품질 관리, 예약·결제 플랫폼, 보험, 정비와 충전 운영이 하나의 서비스망으로 연결돼야 한다.
차량을 원격으로 움직이는 기술이 실제 서비스로 자리 잡으면 ‘주차’의 의미도 달라질 수 있다. 이용자 목적지 주변에 장시간 차량을 세워두는 대신, 차량이 다음 수요가 있는 곳이나 관리 거점으로 이동하는 방식이 가능해진다. 주차장과 도로 공간, 충전 거점의 운영 방식도 차량의 실시간 이동과 예약 수요에 맞춰 다시 설계될 수 있다.
물류와 돌봄의 가능성
경기도는 원격운전이 공유차량 배송·회수뿐 아니라 물류와 교통약자 이동지원 등에도 활용될 수 있는지 살펴볼 계획이다. 아직은 제한된 지역과 이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실증이지만, 차량을 사람이 직접 탑승하지 않은 상태로 이동시키는 기술은 여러 서비스의 운영 방식을 바꿀 수 있다.
물류에서는 화물차나 배송차량이 물건을 싣기 전후의 이동, 물류 거점 안팎의 반복 주행, 제한된 구역의 배차에 원격운전이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실제 화물 운송으로 확대하려면 차량 크기와 운행 구역, 통신 안정성, 원격운전자 업무 기준, 안전 책임과 보험 문제를 별도로 검증해야 한다.
교통약자 이동지원에서는 차량 호출 뒤 탑승 위치까지 차량을 보내는 과정이 핵심이 될 수 있다. 이용자가 차량을 찾아 이동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차량이 접근 가능한 지점까지 먼저 이동하는 서비스는 이동의 시작점을 바꿀 수 있다. 다만 승객을 태운 상태에서의 원격운전 적용 여부와 안전 기준은 이번 공유차량 실증과 구분해 판단해야 한다.
![[산업+Culture] 차가 스스로 ‘마중’ 나오는 도시…판교 원격운전 실증이 열어볼 일상 - 산업종합저널 FA](http://pimg3.daara.co.kr/kidd/photo/2026/08/26/thumbs/thumb_520390_1787703199_19.jpg)
원격운전 스테이션(上)과 원격운전 기반 차량공유 서비스 실증 용역 착수보고회 현장설명 모습(下)
일자리가 사라지는 대신 바뀌는 자리
원격운전은 ‘운전자를 없애는 기술’로만 보기 어렵다. 차량 안의 운전자가 원격 스테이션의 운전자로 이동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여러 차량을 한 사람이 동시에 제어할 수 있는지, 장시간 원격 주행에서 피로와 주의력은 어떻게 관리할지, 사고 발생 때 운전자·운영사·차량 제조사·플랫폼의 책임은 어디까지인지가 새 과제가 된다.
원격운전이 늘어나면 원격운전자 외에도 관제 운영자, 통신 품질 관리 인력, 차량 상태를 점검하는 정비 인력, 현장 대응 인력, 서비스 설계자 등 새로운 역할이 필요해질 수 있다. 기술이 차량 내부의 운전석을 비워도, 도시 전체의 이동을 관리하는 사람과 시스템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원격운전은 통신이 끊기거나 지연될 경우 즉시 안전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통신 장애 상황에서 차량이 어떻게 감속·정지할지, 원격운전자가 돌발 상황을 어떤 화면과 정보로 판단할지, 사고가 나면 누가 어떤 책임을 지는지는 서비스 확대 전 반드시 확인해야 할 항목이다.
판교가 시험하는 도시의 문법
판교는 정보기술 기업과 연구기관, 통신 인프라, 출퇴근 수요가 모인 곳이다. 차량 호출과 공유, 원격 제어가 실제 생활 동선에서 작동하는지 검증하기에 적합한 환경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경기도가 그동안 판교 일대에서 자율주행과 미래모빌리티 관련 실증을 이어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기술 실증이 곧바로 상용화를 뜻하지는 않는다. 이번 사업은 국토교통부 모빌리티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를 통해 추진되며, 실증 기간도 9월 말부터 12월 말까지다. 운행 지역과 이용자, 차량 대수 역시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이 실증이 던지는 질문은 작지 않다. 자율주행의 미래는 운전자가 완전히 사라지는 한 장면으로만 오지 않을 수 있다. 먼저 도착하는 것은 사람이 타기 전후의 차량 이동을 자동화하거나 원격화하는 서비스일 가능성이 있다.
AI가 도로를 읽고 차가 스스로 판단하는 시대는 아직 여러 기술·제도·안전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반면 예약한 차가 이용자에게 오고, 반납한 차가 사람 없이 돌아가는 장면은 이미 판교의 제한된 도로에서 시험대에 오른다. 미래 모빌리티는 거대한 기술의 완성 선언보다, ‘차를 찾으러 가는 일’이 사라지는 작은 변화에서 먼저 생활 속으로 들어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