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이 1년 전보다 68.7% 뛰었지만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수출과 투자가 경기 회복을 이끄는 사이 소비와 제조·건설업 고용은 뒤처지면서 회복의 체감 격차도 벌어지고 있다.
재정경제부는 11일 발표한 ‘2026년 9월 최근 경제동향’에서 수출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소비 등 내수가 개선되면서 견조한 회복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중동전쟁에 따른 불확실성과 고유가로 인한 물가 상승 압력, 취약계층과 취약부문의 어려운 고용 여건은 민생 부담 요인으로 꼽았다. 미국의 관세 조치를 둘러싼 불확실성도 세계 경제의 위험 요인으로 제시했다.
정부가 경기 진단을 지난달의 ‘회복세 강화’에서 ‘견조한 회복 흐름’으로 바꾼 것도 눈에 띈다.
임홍기 재정경제부 경제분석과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2024년 2분기부터 2025년 1분기까지 사실상 정체됐던 경제가 지난해 2분기 이후 빠르게 회복해 국내총생산(GDP)과 주요 지표가 한 단계 올라섰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높아진 경제 수준에 안착하는 과정이며 큰 대외 충격이 없다면 성장 흐름이 내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수출 982억6,000만 달러…9월 초 증가율 82.6%
8월 수출은 982억6,0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68.7% 증가했다. 조업일수를 고려한 일평균 수출도 72.5% 늘었다.
반도체와 컴퓨터, 화장품, 이차전지 등이 증가세를 이끌었다. 자동차와 선박은 감소했다. 지역별로는 중국과 미국, 아세안으로의 수출이 늘었고 중동과 독립국가연합(CIS)은 줄었다. 20대 주요 품목 가운데 14개 품목이 증가했다.
9월 들어 증가 폭은 더 커졌다. 관세청 잠정 집계에 따르면 이달 1~10일 수출과 일평균 수출은 모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2.6% 증가했다.
다만 정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68.7%에 이르는 수출 증가율을 물량과 가격, 기저효과로 나눈 세부 분석은 제시하지 않았다. 품목별로는 반도체·컴퓨터·화장품·이차전지의 증가를 주요 배경으로 설명했다. 이에 따라 수출 급증이 물량 확대에 따른 구조적 개선인지, 가격과 기저효과의 영향이 큰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8월 수입은 투자와 내수 개선 등의 영향으로 22.5% 늘었다. 무역수지는 347억5,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7월 경상수지는 420억8,000만 달러 흑자를 냈다. 상품수지 흑자가 이어졌고 배당소득 증가로 본원소득수지 흑자 폭도 확대됐다. 서비스수지는 여행수지가 소폭 적자로 돌아서며 적자 규모가 커졌다.
유가 3대 유종 100달러 돌파…물가 전망 시험대
국제유가는 미국과 이란의 협상 악화에 따른 호르무즈 해협 통항 불안,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 등 지정학적 위험으로 상승했다.
임 과장은 브리핑 당시 국제유가 3대 유종이 모두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중동 정세가 글로벌 물가와 금융시장 변동성을 키울 수 있어 대외 여건을 더 경계해야 한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8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3.1% 상승했다. 식료품·에너지 제외 지수는 3.4%, 농산물·석유류 제외 지수는 3.1%, 생활물가지수는 3.2% 올랐다.
정부는 지난해 8월 시행된 통신사의 휴대전화 요금 반값 할인에 따른 기저효과가 물가상승률을 끌어올렸다고 설명했다. 이 요인을 제외하면 소비자물가와 식료품·에너지 제외 지수 상승률은 2% 중반, 생활물가는 2% 초반으로 추정했다.
농축수산물 가격은 농산물 생산 증가와 할인 지원 등의 영향으로 2.6% 하락했다. 석유류는 14.2% 올랐지만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상승세가 둔화됐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국제유가 상승에도 연간 소비자물가상승률 전망치인 2.7%를 유지했다. 석유류 최고가격제가 직접적인 충격을 제한할 수 있어 큰 이변이 없다면 전망 달성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국제유가가 어느 수준에서 얼마나 지속될 경우 연간 전망이 달라지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민감도 분석은 공개하지 않았다. 최고가격제 운용에 따른 재정 및 관련 업계의 부담도 이날 브리핑에서는 다뤄지지 않았다.
설비투자 늘고 소매판매 감소…엇갈린 내수
7월 전산업생산은 전월과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광공업생산과 공공행정은 증가했지만 서비스업과 건설업은 감소했다.
광공업생산은 전월보다 0.2% 증가했다. 제조업 가동률도 소폭 올랐지만 재고가 함께 늘었다. 서비스업생산은 전월 대비 1.3% 감소했으나 지난해 같은 달보다는 3.5% 증가했다.
소비 지표는 약했다. 7월 소매판매는 내구재와 준내구재, 비내구재 판매가 모두 줄면서 전월보다 2.4% 감소했다.
8월 국산 승용차 내수판매량도 지난해 같은 달보다 28.3% 줄었다. 정부는 7~8월 현대자동차 파업으로 월 생산량이 3만~4만 대 감소하면서 출하가 지연된 영향을 주요 원인으로 봤다. 파업이 끝난 만큼 9월부터 생산과 판매가 회복될 것으로 예상했다.
설비투자는 수출과 함께 성장세를 뒷받침했다. 7월 설비투자지수는 기계류와 운송장비 투자가 모두 늘며 전월 대비 7.5%, 전년 동월 대비 24.9% 상승했다.
건설 부문은 부진이 이어졌다. 올해 2분기 건설투자는 전 분기보다 0.1%,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 감소했다. 7월 건설기성도 토목공사 증가에도 건축공사가 줄면서 전월 대비 1.1% 감소했다.
정부는 소매판매뿐 아니라 서비스 소비와 투자, 국민계정상 성장기여도 등을 종합하면 내수가 지난해 1분기를 저점으로 완만하게 회복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수출과 설비투자에 비해 속도가 느리고 부문별 격차도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수출과 투자 증가가 소비로 곧바로 이어지지 않는 데 대해서는 파급 시차를 들었다. 임 과장은 수출·투자 호조가 소득과 자산소득에 반영되면 소비 여건도 나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수출기업과 투자 부문에서 시작된 회복이 가계와 내수 업종으로 확산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취업자 18만4,000명 증가…제조·건설업 감소 지속
8월 취업자는 2,915만1,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8만4,000명 증가했다. 증가 폭은 7월보다 확대됐고 고용률은 63.3%로 전년 동월과 같았다.
서비스업의 취업자 증가세는 이어졌지만 제조업과 건설업은 감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두 업종 모두 감소 폭은 축소됐다. 종사상 지위별로는 상용직 증가 폭이 커졌다.
실업자는 58만8,000명으로 4,000명 감소했다. 실업률은 2.0%로 전년 동월과 같았다. 비경제활동인구는 7만7,000명 늘었고 경제활동참가율은 64.6%를 유지했다.
수출 68.7% 증가와 소매판매 2.4% 감소가 같은 달의 경기 흐름에 함께 찍혔다. 회복의 숫자는 선명해졌지만 그 온기가 모든 산업과 가계에 고르게 번진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