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설비의 국내 제조기반을 회복하려면 국산 부품 사용을 직접 의무화하기보다 생산지원과 초기시장 조성, 실증·인증, 수출을 잇는 산업정책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국회에서 나왔다.
중국발 공급과잉과 저가 공세에 대응하는 전략도 태양광 셀·모듈 보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전력전자, 에너지관리시스템(EMS), 가상발전소(VPP)를 결합한 전력시스템 산업으로 경쟁 영역을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정·안호영·김주영·박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 접경지역내일포럼은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간담회의실에서 ‘K-GX 시대 에너지 산업 국가전략’ 연속토론회 3차 행사를 개최했다.
‘재생에너지 설비 국가경쟁력 강화 전략’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는 국내 제조생태계 회복을 위한 통상·산업·지역 정책의 연계 방안이 논의됐다.
이준서 한국법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요국의 재생에너지 설비 지원 정책’을, 이종민 한전기술지주 대표이사는 ‘에너지 지산지소와 혁신기술 사업화를 통한 대한민국 신재생에너지 경쟁력 강화’를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토론에는 임동수 한국플랜트서비스 상무, 한신혜 한화큐셀 파트장, 이정선 파주시 신재생에너지팀장, 김성훈 한국에너지공단 태양광기획처장이 참여했다.
국산품 의무화는 통상 위험…인센티브형 대안
이준서 선임연구위원은 재생에너지 설비 국산화 정책을 구매의무형과 정부주도형, 인센티브형, 결합형으로 나눠 분석했다. 국산품 사용을 보조금이나 인허가의 필수 조건으로 정하는 방식은 통상분쟁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고 진단했다.
특정 비율 이상의 국산 부품·설비 사용을 정책 혜택의 요건으로 삼는 국산화 요건(LCR·Local Content Requirement)은 세계무역기구(WTO) 규범과 충돌할 수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발전차액지원제도(FIT)와 국내산 재생에너지 설비·부품 사용 요건을 연계했다가 일본과 유럽연합(EU)의 제소를 받았다. WTO는 2013년 해당 요건이 상품의 원산지를 기준으로 차별을 금지한 내국민대우 원칙과 무역관련투자조치협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인도도 태양광 사업 지원과 정부조달 참여에 자국산 셀·모듈 사용 조건을 적용했다가 미국의 제소를 받았다. WTO는 2016년 국내산 사용 요건이 내국민대우 원칙 등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이 연구위원은 국내 적용 대안으로 인센티브형 지원을 제시했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미국산 철강·철과 일정 비율 이상의 현지 제조품 요건을 충족한 청정에너지 사업에 추가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한다.
이 연구위원은 정부조달과 경쟁입찰, 부지 제공 등을 활용해 국내 생산을 유도하는 정부주도형·결합형 방식도 검토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국산품 구매 의무를 민간시장 전반에 적용하면 통상 위험이 커질 수 있어 지원 방식과 적용 범위를 세밀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품 보호 넘어 전력시스템 수출로
임동수 한국플랜트서비스 상무는 재생에너지 산업정책의 질문을 ‘무엇을 얼마나 국산화할 것인가’에서 ‘어떤 산업으로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것인가’로 넓혀야 한다고 제안했다.
태양광 셀·모듈을 비롯한 전략적 제조기반과 차세대 기술은 유지하되, 배터리와 전력전자·전력기기·정보통신기술을 결합한 시스템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분야로는 계통형성(Grid-forming) 전력변환장치(PCS)와 ESS, EMS·VPP, 인공지능(AI) 기반 발전량 예측·제어 기술을 제시했다.

박정·안호영·김주영·박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 접경지역내일포럼이 16일 국회의원회관 제1간담회의실에서 ‘K-GX 시대 에너지 산업 국가전략’ 연속토론회 3차 행사인 ‘재생에너지 설비 국가경쟁력 강화 전략’ 토론회를 열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지면 발전설비를 설치하는 것만으로 전력계통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어렵다. 생산한 전력을 저장·변환하고 계통에 연계하는 기술, 발전량과 수요·가격을 예측해 운전 시점을 조절하는 역량이 함께 요구된다.
임 상무는 국내 재생에너지 사업과 산업단지를 신기술의 실증시장으로 활용하고, 여기서 확보한 운전 실적을 표준·인증·수출금융과 연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태양광이나 풍력 설비를 단품으로 수출하는 데서 나아가 ‘재생에너지+ESS+전력전자+운영시스템’을 묶은 패키지 수출 기반을 만들자는 제안이다.
재생에너지 출력의 단주기 변동과 일중 전력 이동은 ESS·PCS로 대응하고, 장기간 발생하는 전력 부족에는 중앙계통의 조정가능 전원과 수요반응, 송배전망을 함께 활용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내수용 국산 셀 생산 사실상 0”
한신혜 한화큐셀 파트장은 발표자료를 통해 2024∼2025년 국내 내수용 태양광 셀 생산 실적이 사실상 0에 그쳤다고 밝혔다.
중국발 공급과잉과 저가 경쟁이 이어지면서 국내 폴리실리콘과 잉곳·웨이퍼 등 후방산업이 위축됐고, 셀·모듈 제조도 생산 축소 압력을 받고 있다는 진단이다.
한 파트장은 국내 제조기반을 유지하려면 설비투자 단계의 일회성 지원을 넘어 전력비와 원재료비, 인건비 등 실제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부담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2026년 세제개편안에는 태양광·풍력 등 6개 분야를 대상으로 한 국내생산세액공제 도입 방안이 담겼다. 다만 초기 적자 상태인 기업은 납부할 세금이 적어 세액공제를 즉시 활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 파트장은 총 공제한도 조정과 생산실적 연계형 현금성 지원, 관련 예산의 선반영, 개산급 지급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생산량에 연동한 지원을 통해 국내 생산을 유지할 유인을 높이자는 취지다.
영농형 태양광을 국산 설비 초기시장으로
이정선 파주시 신재생에너지팀장은 영농형 태양광을 국내 재생에너지 설비의 새로운 수요처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농업을 유지하면서 전력을 생산하는 영농형 태양광을 확대하려면 우량농지가 집중된 농업진흥지역에서도 영농 지속을 전제로 설치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한국전력과 한국농어촌공사가 개발 중인 장경간형 영농형 태양광 프레임도 규격과 표준도면, 설계·시공 기준으로 구체화해 지방정부에 제공할 것을 제안했다.
재생에너지 장기입찰제도에는 국산 모듈과 주요 기자재를 사용한 사업에 구매가격 차등 등 경제적 유인을 제공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국산품 사용을 일률적으로 강제하기보다 국내 제품을 선택할 때 발생하는 투자비 차이를 보완하자는 구상이다.
한전을 신기술의 ‘첫 구매자’로
이종민 한전기술지주 대표이사는 에너지 지산지소를 지역에서 생산한 전력을 해당 지역에서 소비하는 원칙에만 한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재생에너지와 ESS를 기반으로 대규모 전력수요 기업을 유치하고 산업과 기업, 일자리가 함께 지역에 자리 잡는 ‘지산지소 2.0’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에너지 신기술이 연구개발 이후 실증과 투자 부족으로 사업화에 실패하는 ‘죽음의 계곡’을 넘기 위해서는 한국전력의 전력망과 시험센터 등 기반시설을 혁신기업의 테스트베드로 개방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공부문이 신기술의 ‘첫 구매자(First Buyer)’ 역할을 맡는 방안도 제시했다. 한전이 단순한 전력 공급자나 지원기관에 머물지 않고 초기 고객과 실증 파트너, 투자 연계 주체로 참여해야 혁신기업이 운전 이력과 인증, 초기 매출을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날 발표와 토론에서는 재생에너지 설비 경쟁력을 국내산 사용 비율만으로 평가하기보다 제조기반 유지와 통상규범 준수, 실증·초기시장 조성, 수출 연계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제언이 이어졌다. 국내 기업이 생산과 실증을 거쳐 초기 판매 실적을 확보하고, 이를 인증과 금융, 해외 수주로 연결할 수 있는 산업생태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