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신기술을 기업별로 심사하는 현행 방식에서 벗어나 안전설비를 갖춘 ‘실증존’을 먼저 승인하고, 해당 공간에서 기술을 검증하도록 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기업마다 되풀이되는 안전기준 마련과 심사를 줄이기 위해 검토 단위를 기업에서 공간으로 옮기자는 취지다.
2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중소벤처스타트업 혁신성장을 위한 에너지생태계 규제개선 활성화 국회 정책 토론회’에서는 에너지 중소기업의 규제 개선과 신산업 실증 기반 확충, 국내 태양광 인버터 산업 육성 방안이 논의됐다.

강명구 국민의힘 의원이 21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중소벤처스타트업 혁신성장을 위한 에너지생태계 규제개선 활성화 국회 정책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국민의힘 강명구 의원은 기업 현장에서 기술을 개발하고도 이를 검증할 공간이 없어 사업화 시기를 놓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 의원은 “기업들을 만나면 ‘기술은 개발했는데 인정받고 실증할 곳이 없어 골든타임을 놓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며 “국가가 기업이 기술을 시험할 실증 공간을 마련하고 필요한 비용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잡한 인허가 절차도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1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중소벤처스타트업 혁신성장을 위한 에너지생태계 규제개선 활성화 국회 정책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신정훈 의원은 에너지 신기술이 실험과 실증을 거쳐 사업화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신 의원은 “중소기업 규제 개선과 에너지 신산업 실증·테스트베드 활성화, 국내 태양광 인버터 산업 육성은 지방에도 희망을 주는 과제”라며 “호남의 에너지 산업 기반을 활용한 실증과 사업화가 국내 기자재 산업의 성장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토론회에서 제기된 과제가 입법과 제도로 정착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동영 KDI 팀장은 발제를 통해 “안전은 물리적 설비로 관리하고 실증은 네거티브 방식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중소벤처스타트업 혁신성장을 위한 에너지생태계 규제개선 활성화 국회 정책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제를 듣고 있다.
김 팀장은 전력산업 전체를 금지 항목 외에는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체계로 바꾸는 데에는 반대한다고 밝혔다. 에너지 설비 사고는 해당 기업뿐 아니라 전력계통과 이용자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 있어 안전 검증을 생략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신기술마다 안전기준 다시 마련…인허가 장기화
김 팀장이 발제에서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일반 중소기업의 신기술 사업화에는 평균 16개월가량이 걸렸지만 에너지 분야는 33.1개월이 소요됐다. 그는 기술 난도보다 실험실 검증을 마친 장비를 실제 환경에서 실증할 공간과 절차가 부족한 점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대기업은 자체 설비를 구축하거나 해외에서 검증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비용 부담이 크다. 장비를 만든 뒤에도 승인과 검사를 오래 기다리면 투입한 자금이 묶여 사업 지속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규제 샌드박스와 규제자유특구도 화재·폭발·감전·계통 불안정과 관련된 안전심사를 대체하지는 못한다. 새로운 장비에 적용할 기준이 없으면 검사에 앞서 안전요건부터 마련해야 하고, 여러 기관의 절차가 순차적으로 이어지면서 대기기간도 길어진다.
김 팀장은 승인 뒤 사고가 날 경우 담당자가 책임 부담을 느끼는 반면, 승인을 미뤘을 때 생기는 비용은 기업과 사회가 나눠지는 구조도 인허가를 늦추는 요인으로 봤다. 법을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꾸더라도 담당자가 적용할 기준과 면책 조건이 명확하지 않으면 현장에서는 기존의 포지티브 규제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기업들이 요구하는 것은 규제를 없애 달라는 것이 아니라 실증할 장소와 기다리지 않는 절차”라며 인프라 부족과 인허가 지연, 자금난이 서로 연결돼 있다고 설명했다.
안전요건 갖춘 구역 먼저 승인…기관 심사 병렬화
대안으로는 보호설비와 운영조건을 갖춘 실증존이 제시됐다. 구역을 지정할 때 소방·전기안전·계통운영 기관이 위험도별 안전요건을 함께 심사하고, 이후 참여기업은 승인된 조건 안에서 장비의 성능과 적합성을 검증하는 방식이다. 기관별 절차가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현행 구조를 지정 단계에서 병렬화하자는 구상이다.
저위험 기술은 원칙적으로 실증을 허용하고, 중위험 기술에는 보호장치와 운영 제한을 적용하며, 고위험 기술은 외부와 격리된 환경에서 검증하는 방안도 나왔다. 기업이 바뀔 때마다 공통 안전심사를 되풀이하지 않고 위험 수준에 따라 관리 기준을 미리 정하자는 것이다.
김 팀장은 “안전 심사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기업마다 따로 진행하던 심사를 공간 지정 단계에서 함께 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증 결과가 상용화 과정의 인증으로 이어지는 후속 절차도 필요하다고 봤다. 안전설비를 갖춘 공간은 민간이 수익사업으로 운영하기 어려운 만큼 공공이 조성하고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태양광 인버터, 시험·보안·계통 기준 보완 제안
송승호 광운대학교 교수는 태양광 인버터를 실증 기반이 필요한 대표적인 에너지 장비로 제시했다. 인버터는 태양광 모듈에서 생산한 직류 전력을 교류로 바꾸고 전력계통에 연결하는 장치다. 발전효율뿐 아니라 설비 제어와 계통 안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송 교수는 국내 업체들이 기획과 설계, 시뮬레이션 역량을 갖췄지만 제작 이후 시험과 디버깅, 내구성 검증을 수행할 기반이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현장에서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제품은 발전사업자의 선택을 받기 어렵고 장기간 사후관리에도 한계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통신망과 연결되는 인버터의 사이버보안 문제도 제기했다. 원격 제어 과정에서 보안 문제가 발생하면 개별 발전설비를 넘어 전력계통 운영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어 가격과 효율뿐 아니라 보안성과 계통 대응 능력까지 평가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송 교수는 공공 부문의 구매기준과 정보보안 인증, 국내 전력계통을 반영한 기술규격을 마련하는 동시에 시험·평가 시설과 전문인력 양성을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시장 보호만으로는 산업을 유지하기 어려운 만큼 국내 제품의 가격과 성능, 신뢰성을 함께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팀장도 실증존의 구체적인 운영 방식에는 추가적인 제도설계가 필요하다고 전제했다. 제도화 과정에서는 위험등급별 안전요건과 운영 주체, 담당자 면책 범위, 사고 발생 시 책임 구조, 실증 결과의 인증 연계 방식 등을 구체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신정훈·김형동·김주영·정진욱 의원이 공동 주최한 ‘중소벤처스타트업 혁신성장을 위한 에너지생태계 규제개선 활성화 국회 정책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