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가상자산 소득과세를 2029년으로 2년 더 유예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국내외 거래의 과세 형평성을 높이고 관련 제도를 정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다. 투자 손실을 이후 3년간 발생하는 이익에서 차감하는 손실 이월공제 도입도 국회와 협의하기로 했다.

이형일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e브리핑 영상)
이형일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가상자산 과세 시행 시기를 2029년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국회와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가상자산 과세는 2020년 법적 근거가 마련된 뒤 시행 시기가 세 차례 연기됐다. 정부 방침대로 법이 개정되면 네 번째 유예가 된다.
이 부총리는 “그간 과세 시행이 세 차례 미뤄진 데 이어 한 번 더 과세 유예를 말씀드리게 된 점을 무겁게 생각한다”며 “과세 시행 시기를 조정하더라도 ‘소득 있는 곳에 과세’라는 조세의 기본원칙은 견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유예기간을 활용해 해외 거래정보 수집과 과세기준 정비에 나서 2029년 시행을 준비한다는 입장이다.
가상자산 손실, 이후 3년간 이익에서 공제 추진
과세제도 개편의 핵심은 손실 이월공제다. 가격 변동성이 큰 가상자산의 특성을 고려해 특정 연도에 발생한 손실을 이후 3년간의 과세 대상 이익에서 차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시행 예정인 가상자산 소득과세는 해당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손실 이월공제를 인정하지 않는다. 정부는 이러한 제한을 완화하는 법 개정을 과세 유예 조치와 함께 올해 정기국회에서 처리하도록 추진할 계획이다.
조만희 재정경제부 세제실장은 ‘3년’이 제도의 운영 기한이 아니라 손실을 이월해 공제받을 수 있는 기간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조 실장은 “이 손실 이월공제를 3년간만 운영하는 것처럼 오해하셔서 여러 번 전화가 왔다”며 “이월하는 기간을 3년간 하겠다, 이런 뜻으로 해석해 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제시한 방식에 따르면 2029년에 발생한 투자 손실은 2030년부터 2032년까지의 과세 대상 이익에서 공제할 수 있다. 연간 기본공제 250만원을 먼저 적용하고 남은 이익에서 이월손실을 차감한다. 투자자가 공제 시점을 임의로 선택해 뒤로 미루는 방식은 아니다.
과세 전 확정손실은 제외…기존 보유자산은 취득가액 선택
손실을 확정한 시점에 따라 공제 여부도 달라진다. 정부가 제시한 방안에서는 과세 시행 전에 가상자산을 매도해 확정한 손실을 이월공제 대상에 포함하지 않는다.
반면 시행 전에 매수한 가상자산을 계속 보유하다가 2029년 이후 매도하는 경우에는 인정되는 취득가액을 기준으로 손익을 계산한다.
조 실장은 2029년 과세 시행을 전제로 2028년 12월 31일 시가를 취득가액으로 인정하는 의제취득가액 제도를 설명했다. 실제 매수가격이 해당 시가보다 높다면 실제 취득가액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외 거래정보 확보…신종 거래 과세기준도 정비
정부가 유예를 추진하는 배경에는 해외 거래에 대한 과세자료 확보 문제도 있다. 국내 거래소와 달리 해외 플랫폼에서 발생한 소득을 파악하기 어려우면 납세자 간 과세 형평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이다.
정부는 미국과의 가상자산 과세정보 교환이 2029년부터 시행되는 점을 고려해 해외 거래자료를 국내 과세자료와 연계·분석하는 기반을 확충할 계획이다. 납세자가 거래 유형에 따라 소득을 신고할 수 있도록 관련 기준도 정비한다.
전문가와 업계,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디지털자산 과세 민관합동 워킹그룹’도 구성한다. 스테이블코인과 해외 거래소의 무기한 선물, 가상자산 대여 등 새로운 거래 유형의 과세기준을 검토할 예정이다.
무기한 선물의 과세 여부는 금융위원회의 해당 상품에 대한 판단을 토대로 협의할 방침이다.
과세 유예와 손실 이월공제는 올해 정기국회에서 함께 처리하도록 추진하고, 워킹그룹 논의를 거쳐 마련할 추가 제도 개선 사항은 2027년 상반기까지 방안을 마련해 입법이 필요한 경우 같은 해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세부 과세기준은 2028년 상반기에 발표한다.
다만 가상자산 과세 유예와 손실 이월공제 모두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다. 정부가 제시한 2029년 시행 일정과 공제 방식은 향후 국회 논의를 거쳐 확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