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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선의 외국인 근로자④]“이게 괴롭힘 맞나요?”…‘나부터 의심하는’ 외국인

‘이주민센터 친구’ 이예지 상근 변호사 인터뷰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 근로자가 문화와 인종에서 차별을 느끼고 있다는 인식은 이미 전부터 한국 사회에 만연한 사회 문제다.

지난해 통계청 ‘이민자 체류 실태 및 고용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체류 외국인들이 한국 생활에서 겪는 어려운 사항(복수응답)들 가운데 ‘생활방식, 음식 문화차이’(27.8%), ‘외국인에 대한 오해 또는 무시’(16.1%)한다고 답했다.

지난 1년간 차별 대우를 받은 경험이 있는 외국인은 19.7%, 귀화허가자는 20.5%로 나타났다. 차별 받은 주된 이유는 ‘출신국가’(58.0%)가 가장 많았다. 10명 가운데 두 명이 외국인이란 이유로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최전선의 외국인 근로자④]“이게 괴롭힘 맞나요?”…‘나부터 의심하는’ 외국인 - 산업종합저널 동향
(자료=통계청, 2022년 이민자체류실태및고용조사)


본지는 지난 18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소재 ‘이주민센터 친구’에 방문해 문화적 차이로 외국인 근로자가 겪었던 피해 사례를 들어봤다.

‘이주민센터 친구’는 평화·인권·공존을 철학으로 한국 사회에 이주한 외국인들의 인권·법률상담, 문화교류 프로그램 등을 지난 2011년부터 이어오고 있는 비영리단체다.

이곳에서 만난 이예지 상근 변호사는 이주민과의 공존을 위해 “한국 사회 또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주민센터 친구의 상근 변호사 이예지 변호사로부터 들었던 피해 사례를 재구성했다.

한 한국 회사의 해외마케팅부서에 취업한 알제리 출신 여성 A씨.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아랍어를 비롯해 영어, 불어, 한국어도 중급 수준까지 구사할 수 있는 인재다.

그런 그에게 한국의 회식 문화는 힘든 일이었다. 이슬람을 믿는 미혼 여성 A에게 돼지고기는 물론, 남초 회사에서의 한국 술자리 문화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자리였다.

A는 이런 어려움을 직장 상사에게 말했지만, ‘한국에 왔으면 한국 문화를 받아들여야 하고, 회사에 왔으면 회사 문화에 적응해야 한다. 내가 어떻게 널 가르치고, 믿고 일할 수 있겠냐’며 도리어 핀잔만 받았다.

이때부터 였을까. 직장 상사는 A에게 남들에게 시키지 않는 일뿐만 아니라, 명함에도 A의 이름만 넣고, 번호나 이메일은 자신의 정보가 적힌 명함을 사용토록 하는 등 부당한 괴롭힘을 이어왔다. 퇴근 직전 업무를 주는 바람에 제때 퇴근도 못하는 일도 반복됐다.

한 번은 문화적 차이로 인한 오해도 있었다. 상사 앞에서 팔짱을 낀 것이 빌미였는데, 한국 사회에선 예의가 없어 보이는 행동이지만, A의 나라에선 윗사람에 존경을 표하는 자세였던 것이다. 그는 해명했으나, 상사는 전혀 헤아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A는 말이 안 통하고, 문제가 많고, 대드는 사람이 됐다.

참다 못한 A는 인사팀에 말했다. 그러나 “커피 한 잔 사주면서 좋게좋게 얘기해봐라, 네가 부하니까 공손하게 얘기를 해라”라는 식의, A에겐 납득할 수 없는 답변만 돌아왔다. 회사의 조치를 기다렸으나, 오히려 직장 상사와의 관계만 더 악화됐다.

결국, 회사는 A에게 사직서를 내밀었다. 사실상 내 쫓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A가 거절하자, 다음날 회사는 해고예고 통보서를 건넸다. 통보서에는 ‘한국어 미숙으로 인한 의사소통 어려움’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지금 이게 직장 내 괴롭힘이 맞나요”
지난 18일 본지와 인터뷰한 ‘이주민센터 친구’의 이예지 상근 변호사는 상대적으로 정보력이 부족한 외국인의 경우, 직장 내 괴롭힘의 문제의식 형성부터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실 A가 어려워했던 것 중에 하나는, 과연 자신이 겪은 일들이 직장 내 괴롭힘이 맞는 지 안 맞는 지 스스로 계속 의심했다는 점이다”라며, ‘이게 한국 문화다’라는 가해자들의 말들이 한국 문화에 생소한 당사자들을 더 헷갈리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들이 사람을 소극적이게 만들고, 문제가 수면에 드러나지 않게 가로막고 있다”(이예지 변호사)

신고 절차 등에 관한 정보 부족도 당사자들을 더 움츠러들게 만든다. 이예지 변호사는 “콜센터에 전화를 해도 대게 1차적인 답변만 얻을 수 있고, 구체적인 것은 변호사나 노무사 등 전문가를 찾아야 하는데, 이게 쉽지가 않기에 섣불리 대응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A의 경우 자기 진술서를 비롯해 문제 행동이라 여겨질 만한 일들을 기록하고, 녹취하는 등 괴롭힘을 증명할 만한 근거를 잘 기록해둬서 회사와 합의할 수 있었던 다행인 사례였지만, 이 변호사는“사실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고, 외부로 드러나지 않지만, 근로기준법에 위반될 소지가 있는 행위들이 외국인이라서 더 많이 발생한다는 생각도 든다”라고 그동안의 경험을 전했다.

[최전선의 외국인 근로자④]“이게 괴롭힘 맞나요?”…‘나부터 의심하는’ 외국인 - 산업종합저널 동향
지난 1월 18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소재 '이주민센터 친구'에서 이예지 상근변호사가 본지와 인터뷰 중이다. (사진=최준 기자)


“그들의 삶을 존중해줘야 한다”
이예지 변호사는 한국 사회가 이주민 근로자들을 함께 사는 ‘이웃’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선, 한국인 또한 다문화에 관한 인식 교육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그들을 단순히 외국 인력으로만 볼 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서, 그들의 삶을 존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외국인 인력을 한 번 썼다가 내버리는 ‘산업 용병’으로만 볼 게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서 그들의 존재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한국은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인력을 송출했던 국가였다가, 현재는 인력을 수입하는 나라가 됐다. 우리 또한 이렇게 성장했고, 그런 과정에서 다른 나라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 우리는 이를 인식하면서 공존하는 미래를 그려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주민 근로자가 한국의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부분과 앞으로도 외국인 인력을 확대하자는 게 정부와 산업계 바람이라면,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에 빌붙으려 하냐는, 즉 이주민들을 나보다 낮은 존재로 인식하거나 2등 시민으로 취급하면 안 된다”라며 “이게 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안타까운 점”이라고 했다.

정부 정책이 답답한 측면도 있지만, 진짜 문제는 이웃들의 차별적 시선이다”(이예지 변호사)

다문화에 관한 우리나라의 문화적 인식은 실제 현장에서도 목도할 수 있었다. 그는 “실제로 다문화 관련 교육을 위해 학교에 방문하면, 교사들로부터 ‘학생 자신이 다문화 가정인 것을 숨기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라며 “이는 이주민에 관한 한국 사회의 암묵적 분위기를 대변한다”라고 지적했다.

외국인이 한국 사회에 보다 잘 적응하기 위한 사전적 교육도 필요하지만, “정작 이런 교육들은 한국 사람들에게도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공동취재 강현민·최준 기자>
강현민 기자
khm546@industry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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