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연구개발(R&D) 부서의 76%가 주52시간제 도입 이후 성과가 감소했다고 응답했다.
연구 과정의 연속성이 단절되면서 신제품 개발과 기존 제품 개선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으며, 인력 부족 문제까지 맞물려 연구개발 경쟁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연구개발 분야만큼은 근로시간을 보다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연구개발 성과 저하…신제품 개발·기존 제품 개선에 영향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기업 부설 연구소 및 연구개발 전담부서를 보유한 500여 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75.8%의 기업 연구부서가 “주52시간제 시행 후 연구개발 성과가 감소했다”고 답했다.
특히 성과 저하가 두드러진 분야로는 ‘신제품 개발’(45.2%)이 가장 많았으며, 이어 ‘기존 제품 개선’(34.6%), ‘연구인력 역량 축적’(28.5%), ‘신공정 기술 개발’(25.3%)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연구개발 소요기간도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 기업의 53.5%가 “연구개발에 걸리는 시간이 증가했다”고 답했으며, 이 중 69.8%는 증가폭이 ‘10% 이상’이라고 밝혔다. 연구개발 업무 특성상 지속적인 실험과 분석이 필요하지만, 근로시간 제한으로 인해 연구 흐름이 끊기면서 효율성이 저하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구 인력 부족과 근로시간 규제 맞물려 기업 부담 가중
연구개발 인력 부족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조사 결과, 응답 기업의 82.2%가 연구개발 인력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주요 원인으로는 ‘기업 규모 및 낮은 인지도’(58.9%), ‘높은 인건비 부담’(58.4%)이 가장 많이 꼽혔다. 이어 ‘지리적 접근성 문제’(31.0%), ‘임금 등 처우 부족’(30.5%), ‘원하는 인재 부족’(25.6%) 등의 문제가 지적됐다.
연구개발 업무는 긴 호흡이 필요한 작업이지만, 근로시간 제한으로 인해 일정에 차질이 생기면서 기업들의 대응이 어려워지고 있다.
식품제조 중소기업 A사는 해외 바이어 요청에 따라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주52시간제로 인해 연구실험이 중간에 끊기면서 집중도가 떨어졌고, 결국 생산 일정에도 차질이 발생했다. 회사 관계자는 “연구 흐름이 지속되지 못해 납품 기한을 맞추기 어려워졌고, 바이어와의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바이오 제약회사 B사는 장기간 관찰이 필요한 물질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일반 연구인력들은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활용하고 있지만, 부족한 근로시간을 보충하기 위해 관리자급 직원들이 초과 근무를 감당하고 있다. 기업 관계자는 “관리자급 인력이 피로 누적으로 인해 휴직이나 퇴사를 고민하는 상황”이라며 “장기적인 연구가 필수적인 제약업 특성상 인력 손실은 기업 운영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연구개발 근로시간, 노사 자율 합의 필요성 대두
기업들은 연구개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가장 적절한 근로시간제로 ‘노사 합의를 통한 자율적 근로시간 관리’(69.4%)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연구개발 업무에 한해 추가 8시간 연장근로 허용’(32.5%), ‘연장근로 관리를 월·분기·반기·년 단위로 합산 관리’(23.4%) 등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반면, 현재 시행 중인 유연근로시간제를 도입한 기업은 37.8%에 불과해 연구개발 현장에서 제도를 충분히 활용하기 어려운 현실도 확인됐다.
김종훈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상임이사는 “기술 혁신이 중요한 시기인 만큼, 연구개발 분야의 근로시간을 보다 유연하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반도체 등 핵심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연구개발 환경 개선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종명 대한상의 산업혁신본부장은 “연구개발 업무는 집중도와 지속성이 핵심인 만큼,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유연한 제도 운영이 필요하다”며 “사회적 약자의 장시간 근로를 방지하려는 주52시간제 도입 취지를 살리면서도 연구개발 환경을 고려한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c)산업종합저널.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