윙배너

[기자수첩] "팹리스와 파운드리, 고립을 끝낼 때다"

단절 고리 끊고 산업 생태계 다시 묶어야 반도체 경쟁력 미래 열린다

[기자수첩] "팹리스와 파운드리, 고립을 끝낼 때다" - 산업종합저널 전자
한국 시스템반도체 산업이 다시 한 번 전환점을 맞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대학교 반도체공동연구소에서 열린 ‘팹리스-파운드리 상생협의회’는 단순한 업계 간 만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글로벌 기술 경쟁이 격화되고 공급망 불확실성이 높아진 지금, 이 자리는 국내 반도체 생태계가 구조적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전략 구상이 논의된 현장이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 분야에서는 세계 정상에 올라 있지만,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는 여전히 존재감을 확보하지 못한 채 뒤처져 있다. 이는 단순히 기업 개별의 역량 부족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팹리스와 파운드리의 단절, 스타트업과 대기업 간 협력의 부재, 장기적 관점의 정책 부재가 누적된 결과다. 그런 의미에서 ‘상생’이라는 단어가 다시 등장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말만의 상생이 아닌 실질적 실행이 뒤따를 수 있을지에 대한 경계심도 필요하다.

현재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는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Nvidia는 AI 칩 시장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으며, TSMC는 첨단 파운드리 공정에서 독점에 가까운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의존도가 높고, 시스템반도체는 여전히 수출 비중이 낮다. 특히 미국의 관세 정책은 단순한 통상 이슈를 넘어, 반도체 산업 전체의 공급망을 뒤흔들고 있다. 한국이 이 안에서 경쟁력을 잃지 않으려면 ‘연결’과 ‘연대’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기자수첩] "팹리스와 파운드리, 고립을 끝낼 때다" - 산업종합저널 전자

중소벤처기업부가 2022년부터 운영 중인 ‘팹리스 챌린지’는 그런 점에서 중요한 실험이다. 단순한 지원금을 넘어, 시제품 제작과 공정 실증을 통해 기술 가능성을 검증하고, 시장 진입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구조다. 올해부터는 삼성전자뿐 아니라 DB하이텍, SK키파운드리까지 참여하며, 다양한 공정에 대한 접근성도 크게 넓어졌다. 이처럼 파운드리 전반을 아우르는 협력 구조는 과거에 없던 시도이며, 생태계 단위의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협력 프로그램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스타트업이 진정한 기술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로 이어지기 위해선, 정책적 일관성과 장기적 투자, 그리고 민간의 자율적 참여가 모두 필요하다. 단기적 성공 사례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 약점을 개선하는 흐름이 만들어져야 한다.

조경원 창업정책관은 협의회 자리에서 “반도체는 단순한 경제 자산이 아니라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전략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지금의 지원 사업이 단기 성과만을 겨냥한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산업의 기반 자체를 새롭게 짜겠다는 의지가 깔린 발언이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는 결국 연결과 협업에 달려 있다. 개별 기술이나 인재만으로는 글로벌 격변을 돌파할 수 없다. 팹리스와 파운드리, 민간과 정부, 기술과 정책이 하나의 생태계로 묶일 때, 비로소 한국 반도체는 지금보다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그 연결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때다.
박재영 기자 기자 프로필
박재영 기자
brian@industryjournal.co.kr

0 / 1000


많이 본 뉴스

[기자수첩] 확장과 현실 사이 "킨텍스가 잃어가는 것들…"

국내 최대 전시 인프라인 킨텍스(KINTEX)가 제3전시장 건립이라는 대형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그러나 외연 확장의 이면에 드러나는 운영 현실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선 신뢰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미래를 위한 투자와 현재의 기본 요건 사이에서, 킨텍스는 지금 균형점을 다시 찾아야 할 시점

[기자수첩] "팹리스와 파운드리, 고립을 끝낼 때다"

한국 시스템반도체 산업이 다시 한 번 전환점을 맞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대학교 반도체공동연구소에서 열린 ‘팹리스-파운드리 상생협의회’는 단순한 업계 간 만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글로벌 기술 경쟁이 격화되고 공급망 불확실성이 높아진 지금, 이 자리는 국내 반도체 생태계가 구조적 한

[데스크칼럼] 전시장의 진홍빛 그림자, 환대와 경계의 미묘한 균형

어느덧 전시장 일각에서 중국어의 울림은 이채롭지 않게 됐다. 익숙해졌다기보다는, 더 이상 기이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화려한 의장으로 치장된 부스, 현란한 LED 조명으로 장식된 제품들이 전시장의 핵심 영역을 점유하고 있다. 한국의 전시산업이 과연 자국 산업의 진흥 플랫

[기자수첩] “보조금? 그런 거 없어요”… 중국 기업들 '한국은 여전히 유효'

전시장에서 만난 중국 기업 대표는 내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보조금? 그런 거 없어요. 다 우리 돈이에요.” 말끝은 짧았지만 표정엔 짧지 않은 사연이 묻어 있었다. ICPI WEEK 행사장에서 만난 중국 기업 대부분은 정부 지원 없이 참가했다고 답했다. 팬데믹 이후 사실상 지역정부의 보조금이

[기자수첩] 스마트 제조 혁신, 여전히 진행 중인 디지털 전환의 여정

중소벤처기업부와 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이 발표한 제1차 스마트제조혁신 실태조사 결과는 중소기업들의 디지털 혁신 여정을 생생히 보여준다. 16만 3천여 개 공장 보유 중소·중견기업 중 스마트공장 도입률은 19.5%에 그쳤다. 이 수치는 여전히 낮지만, 주목할 점은 이미 도입한 기업들이 거두고






산업전시회 일정


미리가보는 전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