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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 한국 제조업이 직면한 새로운 생존 법칙

기술·안보·환경이 얽힌 다층 경쟁 속 전략적 전환이 시급하다

세계 공급망의 지도가 다시 그려지고 있다. 과거 ‘저비용·고효율’ 중심의 글로벌 분업 체계는 팬데믹, 미·중 무역 갈등, 지정학적 충돌을 거치며 균열이 깊어졌다. 원자재 확보, 기술 안보, 환경 규제가 동시에 작용하면서, 산업 경쟁력의 기준은 가격이 아니라 안정적 공급망 유지 능력으로 옮겨가고 있다.

우선, 기술 패권 경쟁이다. 미국은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 기술을 전략 자산으로 분류하고, ‘반도체 지원법(CHIPS Act)’,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을 통해 동맹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쌍순환’ 전략을 표방하며 내수와 기술 자립을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다음으로는 자원 민족주의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2020년부터 니켈 광석 수출을 전면 금지하고, 국내 제련·가공 산업 육성에 나섰다. 칠레 정부는 2023년 ‘국가 리튬 전략’을 발표해 리튬 산업에서 국영기업 참여 확대 방침을 밝혔다. 멕시코 역시 2022년 광업법 개정으로 리튬 채굴권을 국가가 보유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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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환경·규제 요인이다. 유럽연합(EU)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2023년 10월부터 과도기 절차로 시행했으며, 2026년부터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전력·수소 등 고탄소 품목에 대해 본격 부과할 예정이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2024년 1~11월 기준 우리나라 흑연 수입의 97% 이상이 중국산이다. 배터리 전구체, 희토류 등도 절반 이상을 특정국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지정학적 충격이 생산 차질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적 위험을 내포한다. 또한, 핵심 부품·소재의 국내 공급망 자립도가 낮아, 일부 산업은 기술 상용화 속도와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도 취약성을 안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산업공급망 3050 전략’은 공급망 안정품목의 특정국 의존도를 2022년 평균 70%에서 2030년까지 50% 이하로 낮추는 목표를 담고 있다. 이를 위해 대체 수입처 발굴과 기술 개발 지원, 현장 실사와 성능평가 등 전 주기 지원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기술 자립화를 위해서는 민관 공동 R&D와 국산화율 제고가 병행돼야 하며, 상용화 속도를 높이는 제도적 지원도 필요하다.

아울러 원자재 가격·재고·운송 경로를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공급망 위험 관리 체계와, 희토류·리튬 등 대체가 어려운 품목에 대한 국가 전략 비축 제도가 강화돼야 한다.

공급망 재편은 불확실성을 높이지만, 안정성과 기술력을 확보한 국가에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한국 제조업이 다음 10년을 준비하려면 가격 경쟁력뿐 아니라 안정적 공급망 구축에 정책·산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기고=정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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