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주목받는 핵융합의 상용화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는 새로운 물리 원리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규명됐다. 고에너지 입자가 플라즈마 내부 난류를 억제함으로써 초고온 핵융합 조건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실험 및 시뮬레이션 기반 분석이 세계 최초로 제시된 것이다.
서울대학교 나용수·함택수 교수 연구팀은 다양한 토카막 장치에서 수집된 실험 데이터를 바탕으로, 고에너지 입자가 기존의 예측과 달리 핵융합 반응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핵융합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음을 밝혀냈다고 한국연구재단이 밝혔다. 이 성과는 세계적 권위의 학술지 '네이처 리뷰스 피직스(Nature Reviews Physics)' 2025년 4월호에 실렸다.

고에너지 입자의 존재 유무에 따른 난류 및 에너지 손실 비교(제공=서울대학교 나용수 교수)
고에너지 입자, 난류 억제의 핵심 요소로 작용
핵융합은 태양 내부와 같은 초고온 환경에서 두 개의 가벼운 원자핵이 결합해 에너지를 방출하는 반응이다. 이때 플라즈마 내부에서 발생하는 난류는 핵융합 반응을 방해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해 왔다. 난류는 에너지 손실을 유발하고, 초고온 플라즈마의 안정적 유지에 걸림돌이 되어왔다.
연구팀은 미국 DIII-D, 독일 ASDEX 업그레이드, 유럽 JET, 중국 EAST 및 HL-2A, 그리고 한국의 KSTAR 등 세계 주요 핵융합 실험 장치에서 고에너지 입자의 동작과 플라즈마 난류 사이의 상호작용을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고에너지 입자가 난류를 억제하는 네 가지 물리 기작이 체계적으로 도출되었으며, 이 가운데 '전단유동(zonal flow)'의 강화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자기장부터 공명까지…네 가지 억제 경로 확인
고에너지 입자가 난류를 약화시키는 경로는 네 가지로 분류됐다. 첫 번째는 고에너지 입자가 플라즈마 내부 자기장 구조에 변화를 일으켜 난류 형성을 저지하는 방식이다. 두 번째로는, 입자의 유입으로 인해 플라즈마 내 이온 밀도가 희석되면서 밀도 분포 자체가 변하고, 이로 인해 난류 발생이 억제되는 현상이 관찰됐다.
세 번째 경로는 고에너지 입자가 특정 주파수에서 난류 파동과 공명해 그 세기를 약화시키는 메커니즘이다. 마지막으로는 고에너지 입자가 별도의 불안정성을 유발하고, 이 불안정성이 기존 난류와 상호작용하면서 전체 난류의 활동을 상쇄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이들 기작의 공통된 기반에는 '전단유동'이라는 대칭적 흐름이 존재한다. 이는 플라즈마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생성되는 띠 모양의 흐름으로, 난류를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구는 이 전단유동이 고에너지 입자에 의해 어떻게 강화되는지를 실험과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초로 규명했다.
KSTAR 실증 기반 마련…핵융합 상용화에 한 발짝 더
성과를 토대로 KSTAR를 포함한 여러 핵융합 실험 장치에서 고에너지 입자 분포를 최적화하는 후속 연구가 활발히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확인된 물리 원리는 핵융합 실증로와 소형 발전기 설계에 직접 반영될 수 있어 핵융합의 상용화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높일 수 있을 전망이다.
나용수 교수는 “기존에는 고에너지 입자가 시스템의 불안정성을 초래할 것으로만 여겨졌지만, 이 연구는 오히려 그 반대의 가능성을 열었다”며 “향후 실증로 설계에 이를 반영하면 핵융합 발전 기술의 전환점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추진하는 '핵융합선도기술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전력 수요의 급증과 탄소중립 전환이 동시에 요구되는 글로벌 에너지 전환 국면에서, 이번 성과는 미래 에너지 시스템의 핵심 기술로서 핵융합의 현실화를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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