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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안전운임제 재도입, 그 너머의 숙제”

“노동의 가치와 시장 자율 사이, 한국 사회가 마주한 윤리적 딜레마”

[데스크칼럼] “안전운임제 재도입, 그 너머의 숙제” - 산업종합저널 동향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의 통과와 안전운임제 재도입은 단순한 제도적 변화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 결정은 오늘날 한국 사회가 '노동의 가치'와 '시장 자율' 중 어디에 무게를 두고 있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일종의 리트머스지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애초에 이 제도가 탄생한 문제의식조차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2020년 처음 도입됐던 안전운임제는 일몰제를 조건으로, 말하자면 '시험 삼아' 시행되었던 제도다. 목적은 분명했다. 장시간 운전, 과속, 과적을 반복해야 겨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화물노동자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개선해보자는 것이었다. 단순히 '운임'이라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그 뒤에 있는 피로와 졸음, 사고와 죽음을 막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시범기간이 끝나고 일몰되자마자, 이 제도가 남긴 공백은 바로 확인됐다. 수입 감소, 장시간 노동, 사고 증가. 다시금 익숙한 고통의 풍경들이 돌아왔다. 그래서 안전운임제는 어느 쪽도 손익만 따질 수 없는 문제로, 사실상 '무엇을 사회가 용인할 것인가'에 대한 윤리적 선택에 가까웠다.

그러나 재도입된 이번 법안 역시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다. 일단 적용 품목이 여전히 '컨테이너와 시멘트'에만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에서부터 이 제도의 난맥상이 드러난다. 마치 불이 난 집에서 한 방만 끄고 나머지는 그대로 두겠다는 식이다. 게다가 또다시 '3년 일몰제'로 결정되면서, 노동자들에게는 안정된 조건이 아니라 불안정한 유예기간이 주어졌다. 경제계가 제기한 우려(물류비 증가, 시장 왜곡)는 이전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들의 논리에는 늘 빠져 있는 것이 있다. 지금까지 시장이 방치해 온 비용들, 즉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에 사회가 지불하지 않았던 값이다.
[데스크칼럼] “안전운임제 재도입, 그 너머의 숙제” - 산업종합저널 동향

이번 법안 통과를 두고 경제6단체는 "아쉽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정말 아쉬운 쪽은 누구인가. 사고 현장에서 숨진 동료의 장례식에 매번 참석해야 했던 사람들, '최소한의 운임'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화물연대 파업 당시 '집단 이기주의'라며 비난받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3년짜리 유예는 구원의 숨통이 아니라, 다시 돌아올 절망의 예고편일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오랜 시간 '시장 자율'이라는 이름 아래 무수한 노동의 희생을 감내해왔다. 그러나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 분야—화물, 배달, 건설—에서조차 여전히 '최저선'조차 보장되지 않는 현실은 분명 비정상이다. 그저 비용 계산기만 두드려서는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 바로 사람을, 생명을, 그 노동의 무게를 제대로 대우하는 것이다.

이 제도의 성패는 법 조항이 아니라 사회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달려 있다. 안전운임제가 일몰되지 않고, 상시제화되며, 적용 품목도 확대되는 미래. 그것은 경제논리가 아니라 윤리의 영역에서 출발해야 한다. 단지 경제적 '효율성'만으로 잰다면, 다시 되묻게 될 것이다. 그 효율은 누구의 피를 바탕으로 세워진 것이었냐고.
산업종합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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