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정부 예산안의 키워드는 단연 ‘AI’다.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AI 시대를 여는 첫 번째 예산"이라 명명하며, 총 10조 원 이상의 관련 투자를 약속했다. 고성능 GPU 확보, AI 인재 1만 1천 명 양성, 산업·공공 전방위 AI 도입까지, AI 시대의 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는 담대한 포부다.
비전은 분명하지만, 방향은 속도만큼이나 중요하다. 지금 AI라는 거대한 흐름이 향하는 곳은 '기술'인가, '사람'인가.
AI 전환의 불가피성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 빠른 전환이 모든 국민에게 기회가 될지는 미지수다. 대통령 역시 “한 세대가 뒤처질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정작 뒤처지는 이들에 대한 안전망은 구체성이 부족하다. 당장 50·60대 중장년 구직자는 “AI가 나를 고용해 주겠느냐”고 묻고 있다.
노동시장의 불균형은 이미 시작됐다. 산업은 디지털을 요구하지만, 사람은 아직 아날로그에 머물러 있다. 2026년 예산안은 AI R&D와 산업 고도화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면서도, 중장년 재교육·전직, 고령 친화 일자리, 세대 간 노동 조화에 대한 투자는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다. ‘산업은 준비됐는데, 사람은 준비되지 않았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예산안은 과감하고 매력적인 미래를 그렸지만, 그것이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성과 어떻게 만날지는 의문이다. 노년 인구가 절반을 향해 가는 사회에서 '생산 가능 인구'의 정의부터 바꾸지 않는 한, AI 예산은 성장의 사다리가 아닌 불안의 심화로 작용할 수 있다.
예산이 진정한 '미래 투자'가 되려면, 기술과 사람 사이의 격차를 메우는 데 먼저 쓰여야 한다. AI 고속도로 위에 설 수 있는 국민이 누구인지, 그 길에서 밀려난 사람은 어떻게 다시 끌어올릴 것인지에 대한 정치적 상상력이 절실하다.
'AI 강국'이라는 기치 아래 경제, 국방, 콘텐츠, 바이오까지 거대한 청사진이 제시됐다. 하지만 진정한 국력은 국민이 따라갈 수 있는 변화에서 나온다. 산업의 속도를 앞세우기 전에, 그 속도를 감당할 사회인지 되돌아볼 때다. AI 시대는 기술이 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여는 시대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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