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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은행이 공유한 건 ‘신뢰’가 아니라 ‘담합’

리스크 회피 명분 뒤에 숨은 ‘담합’… 피해는 기업·소상공인 몫

[데스크칼럼] 은행이 공유한 건 ‘신뢰’가 아니라 ‘담합’ - 산업종합저널 FA
담합의 본질은 가격 결정에만 있지 않다. 경쟁자의 생각을 미리 읽고, 그에 맞춰 내 행동을 결정하는 순간 시장의 역동성은 사라진다. ‘정보 공유’가 곧 경쟁의 실종을 의미하는 이유다.

공정거래위원회가 4대 시중은행에 대해 2,700억 원대 과징금 부과를 결정했다. 도마 위에 오른 것은 부동산 담보대출 담보인정비율(LTV) 정보다. 은행들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약 2년간 메신저와 엑셀 파일을 오가며 은밀하게 서로의 기준을 엿봤다. 나 홀로 위험을 감수하지 않겠다는, 소위 ‘리스크 관리’를 위해서였다. 시장 전체를 투명한 유리방처럼 만들어 서로를 훤히 들여다보며 리스크를 피하려 한 셈이다.

‘안전한 선택’이 만든 ‘대안의 실종’
그러나 은행의 안전이 소비자의 안녕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LTV는 은행 입장에서는 리스크 관리 지표지만, 돈이 급한 기업과 개인에게는 생존을 좌우하는 문턱이다. 부동산 담보대출 시장의 60%를 점유한 4대 은행이 약속이나 한 듯 이 문턱을 비슷한 높이로 맞춰버리면, 담보 여력이 부족한 차주들은 갈 곳을 잃는다. ‘조건의 평준화’는 곧 ‘대안의 실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같은 조건은 결국 힘없는 이들에게 ‘같은 좌절’이 될 뿐이다.

공정위가 해당 사건을 정보 교환 담합에 대한 첫 제재 사례로 남긴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은행들은 이를 리스크 관리를 위한 관행이라 항변했지만, 조사에서 위법성 인지 및 증거 파기 정확이 확이됐다. 정보 교류였다면 굳이 엑셀 파일을 지우고, 후임자에게 비밀스럽게 인수인계할 이유가 없다.

다르게 판단할 기회를 스스로 차단했다
경쟁은 서로 다른 정보를 가지고,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릴 때 발생한다. 누군가는 공격적으로 대출을 늘리고, 누군가는 보수적으로 조일 때 시장에 틈새가 생기고 소비자는 선택권을 갖는다. 하지만 은행들은 다르게 판단할 기회를 스스로 차단했다. LTV를 같이 올렸느냐 내렸느냐는 부차적인 문제다. 서로 모르고 뛰어야 할 경주에서 손을 잡고 뛰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다.

더 뼈아픈 대목은 이 담합이 공장이나 상가, 토지 등 기업형 부동산 대출에 집중됐다는 점이다. 이는 생산과 고용의 현장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혔다는 뜻이다. 은행들이 정보를 교환하며 손쉽게 리스크를 회피하는 동안, 그 비용은 고스란히 영세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전가됐다.

데이터가 곧 권력이 되는 시대다. 공동의 위험 관리를 빙자한 정보 공유가 시장을 어떻게 왜곡하는지 이 사건은 똑똑히 보여줬다. 은행이 끝까지 공유하고 지켰어야 할 것은 경쟁사의 엑셀 파일이 아니라, 금융 소비자를 향한 신뢰와 책임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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