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고객상담센터가 AI 도입으로 체질을 바꾸고 있다. Forbes 보도에 따르면(2024년 12월 29일) 다수의 CRM 책임자는 “응답 시간이 짧아지고, 밤·주말 기본 문의를 놓치지 않게 됐다”고 평가했다. 핵심은 인력을 대거 덜어내는 것이 아니라, 반복·표준 문의는 기계가 선흡수하고 판단·책임이 따르는 장면은 사람에게 남기는 분업의 선 긋기다.
이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로이터는(2024년 8월 27일) 유럽 핀테크 클라르나가 대화형 AI로 ‘직원 700명에 해당하는 업무’를 처리해 평균 해결 시간을 11분에서 2분으로 낮췄다고 전했다. 다만 같은 통신사의 후속 보도에선(2025년 9월 10일) 과도한 자동화가 만족도를 흔들 수 있어 복잡·민감 이슈에 사람 중심 지원을 재확대하는 조정을 시작했다고 짚었다. 속도·비용의 이익은 분명하되, 고객 경험의 품질 임계치를 넘는 순간 균형이 깨질 수 있다는 경고다.
전망은 신중한 낙관에 가깝다. CX Today가 인용한 가트너 자료에선(2025년 3월 5일) ‘에이전틱(Agentic) AI’가 2029년까지 표준화된 고객 문제의 80%를 무인으로 처리할 잠재력을 제시했다. 다만 이 수치는 주소 변경, 청구 정정, 해지 요청 등 절차가 명확한 과제에 국한된다는 단서가 붙는다. 반대로 요금 분쟁, 법규 해석, 안전 신고처럼 책임 귀속이 분명한 민원은 사람의 판단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에서, 전면 무인화와는 거리가 있다.
고객의 체감은 더 엄격하다. Five9 조사 내용을 보면(2024년 10월 23일 배포) 문제 상황에서 사람과 직접 연결되길 선호한다는 응답이 우세했다. AI가 먼저 응대하더라도, 초반에 “현재 AI가 응대 중”임을 알리고 한 번의 선택으로 즉시 사람에게 넘어가는 길을 상시 보장해야 신뢰가 형성된다.
국내 공공영역의 사례는 방향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국내 전력 공기업의 발표·보도에선(2021년 10월 6일) 음성인식 안내와 셀프서비스로 요금 조회·납부·이사 정산·고장 접수 등 기본 업무의 접근성을 넓힌 흐름이 확인된다. 이어 대학·통신사와의 공동 발표에선 전력산업 특화 AI 공동개발·실증이 진행 중인 것으로 나온다. 그럼에도 요금 정정·분쟁, 안전, 법규 해석처럼 최종 책임이 뒤따르는 민원은 사람 상담으로 귀속시키는 하이브리드 운영을 고수한다. 기간산업 특성상 자동화와 인간 책임 체계를 나란히 세우는 방식이 현실적이라는 판단이다.
실무의 과제는 어디까지 자동화할지의 경계를 운영에서 분명히 그리는 일이다. 현장에서는 먼저 고객 여정에 분기점을 박는다. 요금 분쟁·보안·법규·안전 같은 민감 키워드가 감지되거나, 같은 질문이 반복되고 본인 확인이 실패하며 대화 감정이 급격히 나빠지는 징후가 보이면 지체 없이 사람 상담으로 전환한다. 이 규칙은 전화·채팅·앱 등 모든 채널에서 동일하게 작동하도록 데이터로 고정한다.
다음은 사람 검수 루프다. 매주 챗봇 대화 중 틀렸거나 불필요하게 거절했거나 고객 불만이 붙은 사례만 추려 재검토한다. 판단 자체가 잘못된 건 모델을 손봐 재학습하고, 내용이 낡았거나 문서와 어긋난 건 상담자료(약관·요금·FAQ)를 최신 기준으로 보정한다. ‘모델 수리’와 ‘문서 수리’를 나눠 처리해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다.
성과 관리는 속도 지표만으로는 부족하다. 평균 처리시간(AHT), 첫 문의 해결률(FCR), 만족도(CSAT)에 더해, 챗봇이 스스로 끝낸 비율, 사람에게 넘긴 비율, 사후 정정 비율, 불만 하강 정도를 같은 화면에서 본다. 자동화의 이익과 품질 임계치 사이 균형이 흔들리면 이 지표들이 가장 먼저 신호를 준다. 절차 자동화가 깊어질수록 고객 동의와 감사 로그를 기본값으로 두고, 요금 분쟁·법규 해석·안전 이슈는 무인 처리 금지 목록으로 관리하는 보수성도 필요하다.
업종별 해법은 다르다. 이커머스·홈쇼핑처럼 반복 문의가 많은 업종은 24시간·저비용의 이점을 크게 살릴 수 있다. 다만 실패했을 때 즉시 연결·콜백 예약·재접속 유도까지 다층 에스컬레이션을 갖춰 이탈을 최소화해야 한다. 전력·금융 등 규제 산업은 접근성은 자동화로 넓히되, 최종 책임이 뒤따르는 민원에서는 사람 중심 처리로 신뢰를 지킨다. 국내 전력 공기업의 운영이 그 방향을 상징한다.
정리하면, AI는 양(量)과 속도, 인간은 질(質)과 책임을 맡는 분업이 표준으로 굳어지고 있다. 당장의 승부는 “얼마나 많이 대체했느냐”가 아니다. 품질 임계치를 넘지 않는 분기선을 조직이 스스로 세우고, 고객이 언제든 사람에게 닿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두는 운영이 성패를 가른다. 해외 핀테크의 재조정과 국내 전력 공기업의 하이브리드는 그 답을 이미 실무에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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