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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기술은 뛰는데 기준은 기어간다”… 콘텐츠 업계 덮친 ‘회색지대’의 딜레마

기업 20%가 AI 도입했지만… ‘기본법’만 있고 ‘디테일’ 없는 입법 공백 여전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해일이 콘텐츠 산업을 덮쳤다. 제작 공정은 획기적으로 단축됐고, 비용 효율성은 극대화됐다. 하지만 정작 현장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다. 기술이 열어젖힌 ‘기회의 문’ 앞에 ‘규제의 불확실성’이라는 짙은 안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23일 국회에서 열린 ‘AI 기반 콘텐츠 진흥을 위한 법적 개선과제 토론회’는 이 모순적인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자리였다. 이날 토론의 핵심은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룰(Rule)이 없어서 못 한다”는 현장의 호소였다.

[이슈]“기술은 뛰는데 기준은 기어간다”… 콘텐츠 업계 덮친 ‘회색지대’의 딜레마 - 산업종합저널 동향
진종오 의원

진종오 의원(국민의힘)이 던진 화두는 문제의 본질을 관통했다. 진 의원은 “AI는 이미 우리 일상과 산업 현장 곳곳에서 깊게 자리를 잡았으며, 특히 콘텐츠 산업에서는 창작·제작·유통의 방식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고 전제했다.

그가 지목한 가장 큰 걸림돌은 ‘불확실성’이다. 진 의원은 “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기술의 한계가 아니라 ‘기준의 불명확성’”이라며 “허용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면 누구도 과감한 투자와 창작에 나서기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의 말처럼 현재 콘텐츠 업계는 가속 페달을 밟고 싶어도, 언제 어디서 과속 단속 카메라가 나올지 몰라 브레이크를 밟고 있는 형국이다.

‘기본법’은 있지만 ‘교통신호’가 없다
실제로 산업의 속도는 법의 속도를 한참 앞질렀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콘텐츠 기업 5곳 중 1곳은 이미 생성형 AI를 실무에 도입했다. 초기에는 단순 보조 도구에 불과했으나, 이제는 기획과 사업 설계 등 ‘두뇌’ 영역까지 AI가 파고들었다.

반면 제도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다. 지난 1월 22일 시행된 ‘인공지능 기본법’은 국가 차원의 거시적 진흥과 고위험군 관리에 초점을 맞춘 ‘선언적 규정’에 가깝다. 콘텐츠 산업 특유의 복잡다단한 저작권 문제, 2차적 저작물에 대한 권리 관계, AI 학습 데이터에 대한 보상 체계 등 ‘디테일’은 여전히 공백 상태다.

[이슈]“기술은 뛰는데 기준은 기어간다”… 콘텐츠 업계 덮친 ‘회색지대’의 딜레마 - 산업종합저널 동향

업계 관계자들은 “고속도로(기본법)는 뚫렸는데, 신호등과 차선(세부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황”이라고 비유한다. AI로 만든 캐릭터가 표절 시비에 휘말릴 경우 책임 소재는 누구에게 있는지, AI가 학습한 원작자에게 수익을 어떻게 배분할지 등 구체적인 매뉴얼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골든타임’ 확보 위한 입법 속도전 필요
이러한 ‘회색지대(Gray Zone)’가 길어질수록 손해를 보는 건 결국 국내 산업 생태계다. 글로벌 빅테크들은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선점 효과’를 누리고 있는 반면, 국내 기업들은 법적 리스크를 계산하느라 투자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토론회에서는 데이터 출처의 투명성 확보와 합리적인 보상 체계 마련이 시급한 과제로 제시됐다. 창작자가 자신의 저작물이 AI 학습에 쓰였는지를 확인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야만 ‘기술과 창작의 공존’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결국 공은 다시 입법부와 행정부로 넘어갔다. 진 의원이 “오늘 토론회가 안심하고 도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출발점”이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규제를 위한 규제가 아니라, 불확실성을 걷어내는 ‘예측 가능한 가이드라인’이 절실한 시점이다. 기준이 명확해질 때, 비로소 AI는 콘텐츠 산업의 위협이 아닌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김보영 기자
cchby@industry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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