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는 수출기업에 바이어를 만나고 시장을 넓히는 대표적인 무대지만, 부스비와 장치비, 인력비까지 감안하면 적지 않은 부담이다. 일부 지자체가 참가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예산이 한정돼 있어 필요한 기업 모두가 혜택을 보긴 어렵다. 이런 공백을 메우기 위해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벤처기업부가 추진하는 수출바우처 사업은 중소·중견기업이 정부가 지급한 바우처로 전시, 물류, 인증, 마케팅 등 다양한 수출 지원 서비스를 선택해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전시 중심”에서 “물류·인증 우선”으로
수출바우처는 도입 초기에는 해외 전시회 참가, 바이어 발굴, 디자인·홍보 콘텐츠 개발 등 이른바 ‘판로 개척’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미국발 관세 이슈와 중동 전쟁, 각국의 비관세 장벽 강화가 겹치면서, 기업들이 바우처를 활용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2025년 기준 산업부 수출바우처를 이용한 3,100여 개사의 사용 내역을 분석한 결과, 이용 건수 기준으로는 국제운송(수출 물류)이 33.4%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해외 전시회·행사·해외영업 지원은 17.6%, 해외규격인증 취득은 12.6%였다. 이용 금액 기준으로는 전시회·행사·해외영업 지원이 32.2%로 가장 크고, 국제운송 23.4%, 홍보·광고 9.4%, 해외규격인증 7.8% 순으로 나타났다.
코트라는 “과거에는 전시회와 디자인 개발에 대한 수요가 상대적으로 컸으나, 최근에는 국제운송과 해외인증 관련 이용이 증가하는 추세”라며 “미국 관세 정책 변화와 중동 전쟁에 따른 물류비 부담 확대, 해외인증 요구 확산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메타·구글·아마존 등 글로벌 플랫폼을 활용한 온라인 수출이 보편화되면서, 브랜드 인지도 제고와 온라인 마케팅 콘텐츠 제작을 위한 홍보·광고 서비스 이용도 꾸준히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동 전쟁 대응 ‘긴급 바우처’… 소비재 기업 중심 지원
중동 전쟁은 이러한 흐름을 더 분명하게 만들었다. 정부는 중동 지역 수출 및 수출계약을 보유한 중소·중견기업의 애로를 완화하기 위해 별도의 긴급지원바우처를 편성해 추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코트라는 4월 7일 1차로 155개사를 선정한 데 이어, 5월 6일에는 534개사를 추가 선정해 지원에 나섰다.
이번 추가 선정에는 중동 수출·계약 기업 지원을 위해 편성된 추경 예산 255억 원이 투입된다. 534개사를 업종별로 보면 화장품·뷰티용품 기업이 25.6%로 가장 많고, 생활·유아용품, 식품, 패션·의류 등 소비재 기업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이들 기업의 2025년 중동 수출액은 평균 107만 달러 수준으로, 중동 시장 비중이 높은 기업을 중심으로 바우처 수요가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긴급지원바우처는 기본 구조는 기존 바우처와 동일하지만, 중동 전쟁으로 인한 선적 지연, 운임 부담, 거래선 관리 등에 활용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정부는 중동 피해기업을 대상으로 정책자금, 지사화 사업, 대체시장 개척 등과 연계해 지원 효과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현장 설명회로 활용도 높이지만… “절차는 여전히 부담”
코트라는 기업들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찾아가는 수출바우처 설명회’를 전국 순회 방식으로 운영 중이다. 올해는 지난 12일 경기 고양을 시작으로 인천, 대전, 광주, 대구, 부산 등 6개 지역에서 설명회를 열고 있다. 프로그램에는 바우처 활용 성공사례 공유, 전시·물류·해외인증·홍보·광고 등 항목별 활용 전략 안내, 정산 절차 설명, 1:1 컨설팅 등이 포함된다.

지난 5월 12일 진행한 고양시 설명회 현장의 모습
최근 고양·인천 설명회에는 250여 개사가 참석해 물류비 절감과 해외규격인증 취득, 온라인 홍보 방안 등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현장에서 한 중소기업 대표는 “당초 국제운송비에만 바우처를 사용할 계획이었으나, 설명회를 통해 일부를 해외인증과 온라인 홍보에 배분하는 방안을 검토하게 됐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제도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신청 공고를 파악하고, 평가·협약·정산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절차와 서류가 적지 않아 인력이 부족한 소규모 기업일수록 부담을 느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예산이 한정된 상황에서 수출 실적과 역량이 검증된 기업에 지원이 집중되고, 이제 막 수출을 시작하는 초기 기업은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 역시 개선 과제로 꼽힌다.
“민간이 채우기 어려운 위험 분담 기능”
그럼에도 수출바우처가 갖는 긍정적인 역할은 분명하다. 민간 금융이나 상업적 서비스 시장이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 즉 수익성은 불확실하지만 국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필요한 시장과 품목에 대해 공공 부문이 일정 부분 위험을 분담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중동처럼 지정학적 리스크가 크고 물류·결제 여건이 불안정한 지역이나, 인증과 규제가 까다로운 고위험 시장 진출은 개별 중소기업이 단독으로 감수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또한 바우처 방식은 정부가 세부 지원 항목을 일방적으로 정하는 대신, 기업이 전시, 물류, 인증, 마케팅 등 여러 서비스 가운데 자사 상황에 맞는 조합을 선택하게 함으로써 자율성을 부여한다는 장점이 있다. 최근 물류·인증, 온라인 홍보 등에서 수요가 늘고 있다는 사실은, 정책 설계자가 향후 어떤 영역에 집중해야 할지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데이터이기도 하다.
결국 수출바우처는 단순한 전시회 참가 지원을 넘어, 불확실한 통상환경 속에서 중소·중견기업이 물류·인증·마케팅을 함께 관리하는 ‘위험 대응 도구’로 기능 범위를 넓혀 가는 모습이다. 남은 과제는 지원 규모뿐만 아니라 절차의 단순화와 신속성을 높여, 특히 인력과 경험이 부족한 초기 수출기업도 부담 없이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다듬는 일이다. 수출바우처가 얼마나 적시에, 활용하기 쉽게, 실제 애로 요인을 정확히 겨냥해 집행되느냐가 제도의 효과를 좌우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