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감찬 산업통상부 무역투자실장(e브리핑 영상 캡처 이미지)
강감찬 산업통상부 무역투자실장은 1일 세종 정부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5월 수출이 월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고 무역수지도 역대 연간 최대 흑자를 이미 넘어섰다”고 밝혔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대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단가 급등이 수출 지표 전반을 끌어올렸다는 설명이다. 다만 그는 “가격에 의존한 구조와 일부 주력 산업의 부진은 계속 지켜봐야 할 부분”이라고도 말했다.
5개월 만에 무역수지 1,000억 달러 돌파
강 실장이 발표한 ‘2026년 5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53.2% 증가한 877.5억 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3월·4월에 이어 세 달 연속 800억 달러를 넘기며, 월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새로 썼다. 같은 기간 수입은 20.8% 늘어난 608.0억 달러였고, 무역수지는 269.5억 달러 흑자를 나타냈다.
올해 1~5월 누적 무역수지는 1,019.1억 달러로, 2017년 기록한 연간 최대 흑자 952.0억 달러를 다섯 달 만에 뛰어넘었다. 강 실장은 “수출 흐름이 지금과 비슷한 속도로 이어진다면 상반기 안에 누적 수출 4,000억 달러 근접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량보다 가격이 끌어올린 반도체 호황
이번 수출 신기록을 만든 중심 축은 반도체다. 5월 반도체 수출액은 371.6억 달러로 전년 같은 달보다 169.4% 급증했다. 이 가운데 메모리 반도체 수출은 321억 달러로 255% 늘었고, 시스템 반도체는 45억 달러로 6% 증가했다.
강 실장은 “현재 수출 호조는 반도체 물량이 폭발적으로 늘어서라기보다 가격이 크게 오른 영향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D램(DDR5 16Gb) 고정가격은 1년 전 4.80달러에서 지난달 37.5달러까지 올라 약 7배 뛰었고, 낸드플래시(128Gb)는 같은 기간 2.92달러에서 26.5달러로 8배 이상 올랐다. 그는 “반도체 가격이 수출을 견인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단가가 조정되면 전체 수출 실적도 그만큼 출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AI 서버용 스토리지 수요가 늘면서 컴퓨터 수출도 41.8억 달러로 290.7% 증가했다. 디스플레이(14.7억 달러, +9.4%), 무선통신기기(14.6억 달러, +12.6%)도 신제품 효과 등에 힘입어 플러스 흐름을 보이며 IT 주요 품목이 일제히 증가세를 기록했다.
자동차 부진·석유제품 물량 감소… 가격 착시 경계
반도체가 화려한 숫자를 만들고 있는 사이, 일부 전통 주력 산업에서는 경고음도 감지된다. 지난달 자동차 수출은 58.3억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5.9% 줄었다. 강 실장은 “조업일수 감소뿐 아니라 협력사 화재로 인한 부품 공급 차질, 중동 전쟁에 따른 물류 애로, 미국의 관세 조치에 대응한 현지 생산 확대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일반기계 수출도 38.2억 달러로 6.3% 감소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석유제품의 경우 금액과 물량 흐름이 엇갈렸다. 수출액은 국제유가 상승과 단가 효과로 52.5억 달러(46.6% 증가)를 기록했지만, 수출 물량은 23.8% 감소했다. 수출 통제 조치가 적용 중인 휘발유와 경유 물량은 각각 31.1%, 24.3% 줄었다. 강 실장은 “단가가 크게 오르면서 통계상으론 수출이 호조처럼 보이지만, 실제 물량 기준으로는 위축된 품목들이 있다”며 “가격에 따른 착시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조 달러 완전히 비현실적이진 않다”… 변수는 반도체·유가·관세
브리핑 현장에선 연간 수출 1조 달러 달성 가능성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강 실장은 “1~5월 흐름만 보면 산업연구원과 한국은행이 제시한 연간 전망치(9,200억~9,500억 달러)를 넘어서는 결과도 기대할 수 있다”며 “일부에서 거론하는 1조 달러도 전혀 불가능한 숫자라고만 볼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하반기 수출을 둘러싼 불확실성도 짚었다. “반도체 단가는 과거와 비교해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 향후 더 오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조정이 시작되면 수출액이 빠르게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동 전쟁에 따른 유가 흐름,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관세·철강 규제 등 보호무역 조치가 얼마나 강화될지도 주요 변수”라고 덧붙였다.
강 실장은 “반도체만 놓고 보면 ‘슈퍼 사이클’에 가까운 흐름이지만, 그 빛에 가려 다른 품목의 성과가 잘 보이지 않는 측면도 있다”며 “반도체 외 품목도 두 자릿수에 가까운 증가율을 보이는 등 전체적으로 수출 여건이 나쁜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특정 품목의 가격 사이클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도록, 자동차·기계·철강 같은 전통 제조업과 소비재·신산업 수출을 함께 키우는 구조적 다변화를 계속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5월 수출은 숫자만 보면 역대급 호황이지만, 가격에 떠받쳐진 반도체와 물량이 줄어든 석유제품, 부진이 이어지는 자동차·기계 사이의 간극은 과제로 남았다. 강 실장이 “지금의 여유가 수출 구조를 손볼 수 있는 시간”이라고 표현한 배경에는, 반도체 호황이 만든 ‘골든타임’을 놓치면 외부 환경 변화가 곧바로 한국 경제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경계심이 깔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