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반도체 전쟁 앞에 선 K-클러스터, 수도권 배제가 답인가 - 산업종합저널 전자](http://pimg3.daara.co.kr/kidd/photo/2026/06/02/thumbs/thumb_520390_1780379204_75.jpg)
경기도청 율곡홀에서 현병천 미래성장산업국장 주재로 도내 시군 실·국장과 차세대융합기술원,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한국나노기술원 등 관계기관이 참석한 가운데 ‘반도체특별법 시행령(안) 수도권 배제 관련 도-시군 긴급 현안회의’를 가졌다.
반도체 산업은 지도 위에 선을 긋는다고 자라지 않는다. 전력과 용수, 인력과 도로, 대학과 연구소, 완성품 기업과 소부장 기업이 한 지점에서 맞물릴 때 비로소 속도가 난다. 한 장의 웨이퍼는 공장 안에서만 태어나지 않는다. 수십 종의 장비와 소재, 설계와 테스트, 숙련된 엔지니어의 손이 그물처럼 이어져야 완성된다. 그래서 반도체 경쟁력은 어느 한 기업의 체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생태계 전체가 얼마나 빠르게 반응하고 함께 움직이느냐의 싸움이다.
경기도가 산업통상부의 반도체특별법 시행령안에 긴장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입법이 추진 중인 시행령안에는 반도체클러스터 지정 요건에 ‘수도권 외 지역’을 명시하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는 이 조항이 그간 정부 스스로 공들여 온 K-반도체 메가클러스터 정책 흐름과 정합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경기도가 추진 중인 메가클러스터는 용인·평택·이천·화성·성남 등 기존 반도체 거점을 축으로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두 앵커기업도 이 위에 서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도 지원의 문턱에서 수도권을 일률적으로 배제하게 되면, 정부가 한 손으로는 집적을 말하면서 다른 손으로는 그 집적을 제도 밖으로 밀어내는 듯한 모순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물론 지역 균형발전은 가볍게 다룰 가치가 아니다. 수도권 집중은 한국 사회가 오래 앓아온 고질이다. 비수도권에 산업 기반을 키우고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일은 국가 전체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된다. 다만 문제는 반도체라는 산업의 냉혹한 물성이다. 반도체는 공장을 아무 데나 세운다고 경쟁력이 생기는 산업이 아니다. 설계 기업이 가까이 있어야 하고, 장비 기업이 즉각 대응해야 하며, 소재와 부품 공급망이 실처럼 촘촘히 붙어 있어야 한다. 세계 주요국은 지금도 공급망 안정과 기술 경쟁력을 앞세워 기존 거점을 중심으로 투자를 집중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 이런 상황에서 국내 행정구역의 논리를 전면에 내세워 핵심 거점을 제도적 지원 대상 밖으로 밀어낼 위험이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현장의 우려는 추상적이지 않다. 오산시는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등 글로벌 장비기업과 연계한 연구단지 조성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성남시는 판교를 거점으로 키워온 팹리스 육성 전략과 수도권 배제 조항 사이의 정책 충돌을 걱정하고 있다. 평택과 화성은 삼성전자를 배후에 둔 소부장 생태계 조성과 특화단지 준비 과정에서 투자 유치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경기 북부와 동부의 사정은 더 복잡하다. 연천과 가평처럼 수십 년간 인구감소와 접경지역 규제를 감내해온 지역이 다시 ‘수도권’이라는 단 하나의 행정 명칭으로 묶여 제도 지원에서 제외된다면, 그것은 균형발전의 취지와도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도권 안에도 과밀 지역과 규제 피해 지역이 공존한다는 현실을 시행령 문구가 지나치게 거칠게 덮어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특별법의 목적은 명확하다.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원의 기준도 행정구역이 아니라 산업적 효과에 맞게 설계되어야 한다. 생태계 시너지를 만들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곳이 수도권이든 비수도권이든 지원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비수도권을 키우는 일과 수도권 기존 거점을 약화시키지 않는 일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두 목표를 정교하게 조율하는 것이지, 한쪽을 지워 다른 쪽을 살리는 것이 아니다.
반도체 패권 경쟁은 느긋한 구호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기업의 투자는 예측 가능성 위에서 결정된다. 정부가 한편에서는 메가클러스터를 외치고 다른 한편에서는 수도권 배제를 중심에 둔 시행령안을 내놓는다면, 현장은 정책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시행령안의 수도권 배제 조항은 입법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 지역 균형이라는 명분이 산업 경쟁력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잠식해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순간 한국에 필요한 것은 선명한 편 가르기가 아니다. 한국 반도체가 가장 빠르게 달릴 수 있는 길을 냉정하고 치밀하게 고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