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이 원활하지 않은 환경에서도 주변 상황을 스스로 인지해 움직이는 자율주행차, 클라우드와 분리된 상태에서도 사람의 행동과 표정을 이해하며 상호작용하는 로봇. 기기 자체에서 연산과 판단을 처리하는 ‘온디바이스 인공지능(AI)’이 산업 현장의 새로운 전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서버에 집중됐던 AI 연산이 각종 기기와 설비로 내려오면서, 개별 제품에 최적화된 맞춤형 AI 반도체 확보가 제조업 경쟁력의 핵심 조건으로 떠올랐다.
제조업 기반 앞세운 ‘K-온디바이스 AI’
산업통상자원부는 ‘K-온디바이스 AI 반도체 기술개발 사업’을 총사업비 8,002억 원 규모로 확정하고 본격 추진한다고 2일 밝혔다. 2026년부터 2030년까지 5년 동안 국비 5,111억 원을 투입하는 대형 국책 연구개발(R&D) 사업으로, 반도체 설계뿐 아니라 탑재 모듈과 구동 소프트웨어까지 아우르는 ‘풀스택(Full Stack)’ 개발을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현재 서버용 AI 반도체 시장은 글로벌 빅테크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반면, 기기 내에서 저전력으로 동작하는 온디바이스 AI 반도체 분야에는 아직 뚜렷한 선도 기업이 없다. 시장조사업체 마켓어스(Market.us)는 관련 시장이 2024년 173억 달러에서 2030년 1,033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정부는 제조업 강국이라는 산업 구조가 온디바이스 AI 경쟁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분야 반도체는 범용 칩과 달리 탑재될 완제품과의 호환성과 최적화가 중요하다. 자동차, 가전, 기계·로봇, 방산 등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수요기업과 국내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가 초기 단계부터 함께 설계에 참여하면, 특정 해외 칩에 일방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선택지를 마련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자동차·IoT·로봇·방산 4대 업종 맞춤형 칩 개발
이번 사업은 자동차, 사물인터넷(IoT)·가전, 기계·로봇, 방산 등 4대 주력 업종별 온디바이스 AI 반도체 풀스택 개발을 목표로 한다. 자동차 분야에서는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와 자율주행차 제어 시스템용 AI 칩을 개발해, 통신 환경이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차량이 주변 정보를 스스로 처리하고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기계·로봇 분야에서는 작업 환경 변화를 실시간으로 반영하며 동작을 조정하는 산업용 로봇과 사람과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하는 서비스·휴머노이드 로봇 등에 들어갈 칩 개발이 추진된다. IoT·가전 분야는 가정 내 다양한 센서를 통해 수집한 데이터를 기기 자체에서 분석해 에너지 효율과 생활 편의를 높이는 스마트홈 제품을, 방산 분야는 전장 환경에서 통신 제약이 있는 상황에서도 임무를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무인 체계용 AI 반도체를 염두에 두고 있다.
산업부는 6월 중 사업을 공고하고 7월 중 과제 착수에 들어가 온디바이스 AI 시장 선점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온디바이스 AI 반도체는 AI 시대의 주도권을 좌우할 핵심 전략 자산”이라며 “개발된 칩이 자동차 등 주력 업종의 완제품에 실제 탑재될 수 있도록 연구개발(R&D)을 넘어 실증, 양산, 금융 지원, 제도 개선까지 전방위 지원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투자는 서버용 AI 칩에 편중된 글로벌 구도를 일부 분산시키는 동시에, 국내 팹리스와 주력 제조업 간 연계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드웨어 중심 제조업에 AI를 내재화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설계 역량까지 키우려는 시도가 실제 생태계 강화로 이어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