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이 김용진 센터장, 오른쪽이 김영기 선임연구원
영하 253도의 액체수소를 담은 저장탱크 주위로 긴장감이 감돈다. 금속이 유리처럼 부서지는 수소취화(Hydrogen Embrittlement) 현상을 통제하지 못하면 친환경 선박도 잠재적 위험물로 변할 수 있다. 탈탄소 해운 시대를 앞두고 국내 연구진이 수소선박의 설계부터 운용까지 관통하는 안전 기준의 이정표를 제시했다.
한국기계연구원(KIMM) 가상공학플랫폼연구본부 신뢰성연구센터는 한국선급(KR)과 협업해 수소연료 추진선박의 주요 위험요소와 안전 저감 방안을 집대성한 '수소연료 추진선박의 안전성 검토' 연구보고서를 공동 발간했다. 수소연료 추진선박의 안전 고려사항과 국제 규정, 위험 저감 방안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종합 기술문서다.
사고 66%가 화재·폭발…데이터로 증명한 안전 기준의 무게
수소는 연소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하지 않아 해운 분야 탈탄소화를 위한 유망 연료로 꼽힌다. 하지만 누출 시 점화 가능 범위가 넓고 최소 점화에너지가 낮아 기존 액화천연가스(LNG)와는 차원이 다른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유럽연합(EU) 공동연구센터의 수소 사고 데이터베이스(HIAD 2.1)에 등록된 954건의 사고를 분석한 결과, 전체의 66% 이상이 화재나 폭발로 이어졌다. 김용진 기계연 신뢰성연구센터장과 박준성 한국선급 파트장 연구팀은 이 데이터를 토대로 누출·확산, 폭연·폭굉 전이, 제트 화재, 극저온 위험, 수소취화와 같은 핵심 위험요소를 다층적으로 분석했다.

-253℃ 극저온 피로시험기와 액화수소 연료 시스템 개략도
연구팀은 기존 LNG연료 추진선박 국제규정(IGF Code)과 수소의 특성을 비교 분석해 수소선박에 특화된 고유 안전 고려사항을 도출했다. 보고서는 누출 최소화 설계, 환기·불활성화·진공 시스템, 재료 선정 및 호환성, 가스·화재 탐지 및 진압 시스템 등 실제 산업 현장에서 적용 가능한 구체적 방안을 담았다. 수소연료전지 및 수소 내연기관 추진선박의 개발 동향과 수소 저장·공급·연료소모 시스템 구성 등 해상 수소시스템 전반도 함께 정리했다.
2026년 IMO 임시 안전지침 승인 조준…글로벌 표준 선점
국제해사기구(IMO) 화물·컨테이너 운송 전문위원회(CCC)는 수소연료 추진선박 임시 안전지침을 개발해 왔으며, 해당 지침은 2026년 5월 개최 예정인 해사안전위원회(MSC) 제111차 회의에서 최종 승인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 간 수소 운송과 거래가 확대되면서 수소운송선과 수소연료 추진선박 수요는 앞으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계연과 한국선급이 발간한 이번 보고서는 국제 안전지침 승인 시점에 맞춰 산업계의 기술 이해도를 높이고, 선박 설계와 인허가 과정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가이드라인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용진 기계연 신뢰성연구센터장은 “이번 보고서는 수소연료 추진선박의 위험요소와 안전 저감 방안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기술문서로, 산·학·연 협력을 통해 마련된 의미 있는 성과”라며 “기계연이 축적한 초저온 및 수소취화 시험평가 노하우와 액체수소 저장용 소재 적합성 평가 경험이 보고서의 신뢰성과 실효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친환경 선박용 소재 적합성 평가와 안전기준 정립을 통해 국내 조선·해운 산업이 글로벌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도록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기계연 신뢰성연구센터는 해양수산부의 '선박용 수소 저장용기 및 연료공급시스템 안전기준 개발 사업'을 통해 초저온(-253℃) 수소취화 시험평가 및 분석 인프라를 구축했다. 선박용 액체수소 저장용 소재 선정 가이드를 국내 최초로 제시하며, 친환경 선박 상용화를 가속하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