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전운이 잦아들며 브렌트유가 배럴당 77달러 선으로 주저앉았다. 반면 미국 월스트리트에서는 인공지능(AI)과 반도체를 향한 레버리지 포지션이 역대 최고 수준에 육박하며 새로운 긴장감을 키우고 있다. 국제금융센터(KCIF)가 6월 23일자 해외동향에서 분석한 핵심은 물리적 지정학 리스크가 완화되는 대신 금융시장 과열과 구조적 산업 재편이 새로운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에너지 시장 덮친 중국의 전동화 속도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항 보장과 통신 채널 마련, 레바논 내 충돌방지기구 설치, 60일 내 최종 합의 로드맵 등에 합의하면서 브렌트유는 3.31% 하락한 77.90달러를 기록했다. 단기적인 공급 차질 우려는 상당 부분 덜어냈지만, 원유 수요의 구조적 둔화 가능성이 시장을 압박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중국의 순수 전기차 등록 비중이 3월 38%에서 4월 42%로 급증한 수치는 내연기관차 수요 위축과 전기차 전환 가속을 보여준다. 유가 흐름은 중동 리스크 완화에 더해 이런 산업 전동화가 만들어내는 중장기 수요 둔화 가능성까지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AI 인프라 고평가와 레버리지의 경고
실물 경제의 안도감과 달리 미국 금융시스템은 위험자산과 그림자금융을 중심으로 과열 양상을 띠고 있다는 게 국제금융센터의 진단이다. 나스닥과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에 자금이 몰리며 레버리지 ETF 수요가 늘었고, 증권계좌 마진대출 잔고도 역대 최고 수준에 육박한 것으로 소개됐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4.51%로 6bp(1bp=0.01%포인트) 상승하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0.37% 하락해 고평가 부담과 금리 상승 압력이 맞물린 모습을 보였다. 국제금융센터는 AI 인프라 투자가 축소될 경우 반도체 기업 실적과 성장 기대가 약화되고, 과도한 레버리지가 금융시장 전체의 변동성을 증폭시킬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중 제재전, 방산·로봇 공급망 타격
첨단 산업을 둘러싼 미중 갈등은 직접적인 규제 리스크로 확산되고 있다. 중국은 미국 10개 방산기업을 수출통제 대상에 올리고, 항공우주·드론·로봇·희토류 관련 46개 업체 제품에 대해 정부 조달을 전면 금지했다. 국제금융센터는 이러한 조치를 미국의 중국 기술·방산 기업 제재에 대한 맞대응, 보복 성격으로 해석했다. 첨단소재와 로봇 공급망이 양국의 정치적·안보 전략에 의해 좌우되면서 관련 기업의 불확실성과 규제 리스크는 한층 짙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수출에 기댄 중국, 소비 회복 더딘 유럽
거시 지표는 국가별로 엇갈린 흐름을 보여준다. 중국 인민은행은 1년과 5년 만기 대출우대금리(LPR)를 각각 3.0%, 3.5%로 동결했다. 국제금융센터는 내수 부진에도 수출 호조가 경제를 떠받치고 있어 당국이 당분간 수출 중심의 경기 흐름을 일정 부분 용인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제조업·수출 기업에는 단기적인 안정 요인이지만, 소비재·서비스 산업에는 내수 회복 지연이라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유럽에서는 소비심리가 서서히 개선되는 흐름이 관찰됐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중동 긴장 완화와 에너지 가격 하락이 물가·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주시하겠다는 입장을 보였고, 같은 기간 유로존 6월 소비자신뢰지수는 -17.7로 전월(-19.0)보다 개선됐다. 다만 국제금융센터는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될 경우 가계 소비와 서비스 산업 회복 속도가 늦춰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달러화지수는 100.99로 0.14% 상승했고, 유로화와 엔화는 각각 0.37%, 0.17% 하락했다. 금은 4,190.1달러로 0.83% 오르며, 금리 상승과 정책 불확실성이 안전자산 수요를 일부 지지한 흐름을 보였다.
지정학 뇌관에서 금융·기술 패권으로 이동
국제금융센터는 산업별로 보면 에너지·해운은 중동 리스크 완화로 단기 부담이 줄고, 전기차는 구조적 수요 확대 흐름이 확인된 반면, 반도체·AI·금융시장은 고평가와 레버리지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방산·로봇·항공우주는 미중 제재전에 따른 직접 영향권에 들어섰고, 중국 내수·유럽 소비는 금리·정책 변수에 따라 회복 경로가 달라질 수 있는 국면에 놓여 있다는 분석이다.
전체적으로는 물리적 지정학 리스크 완화가 에너지·물류 부담을 낮춰 단기 호재로 작용했지만, 미국 금리·레버리지 확대와 AI 투자 과열, 미중 기술·방산 패권 경쟁이 금융·기술 영역의 새로운 뇌관으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는 점을 이번 보고서는 강조한다. 물리적 충돌의 공포가 한층 완화된 시장은 이제 데이터와 자본이 만들어내는 구조적 변동성에 대비해야 할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는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