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와 대용량 에너지 저장장치(ESS)가 고에너지·고출력 방향으로 진화하면서 배터리 열관리 기술은 전체 시스템 설계의 핵심 축으로 떠올랐다. 특히 급속 충·방전 환경에서 리튬이온 배터리 셀 온도를 정밀하게 제어하면서도 냉각장치의 무게와 비용을 억제하는 문제는 열폭주 안전성과 차량·설비 효율을 동시에 좌우하는 기술 과제다. 한국기계연구원(기계연)이 제시한 ‘분사형 액침냉각’은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한 새로운 직접 냉각 메커니즘이다.

김진섭 책임연구원 연구팀이 분사형 액침냉각 챔버를 작동하고 있다.
직접 냉각으로 넘어가는 배터리 열관리
현재 상용 전기차에서 널리 쓰이는 공랭식·수냉식은 배터리팩 외부에 히트싱크(방열판)나 콜드플레이트를 두고 공기·냉각수를 흘려보내는 간접 냉각 방식이다. 구조가 단순하고 검증된 장점이 있지만, 열원인 셀과 냉각 매개체 사이에 고체·패널을 끼고 있어 열저항이 크고, 여름철 고온·급속 충전처럼 열부하가 급격히 증가하는 상황에서는 셀 온도 상승을 억제하는 데 한계가 드러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배터리 전체를 비전도성 액체에 담그는 ‘완전 액침냉각’이 주목받았으나, 냉각액을 대량으로 채워야 해 시스템 중량과 비용 부담이 커지는 구조적 문제가 뒤따랐다.
분사형 액침냉각의 구조와 메커니즘
분사형 액침냉각의 기본 구조는 상부 분사와 하부 부분 액침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형태다. 배터리팩 상부에는 전기가 통하지 않는 비전도성 냉각액을 직접 분사해 셀 표면과 액체가 바로 접촉하도록 설계한다. 이때 분사된 액체는 중력과 패널 형상에 따라 아래로 흘러내리며 셀 표면 전체를 씻어 내리듯 통과하고, 분사 유동으로 온도·속도 경계층을 깨뜨려 표면에 머무는 고온층을 줄인다. 배터리팩 하부는 전체가 아니라 일부만 액체에 잠기도록 설계해, 하단부를 중심으로 10~15% 정도만 비전도성 액체에 잠기게 하고 펌프로 순환시킨 액체를 상부에서 다시 분사하면서 분사 냉각과 액침·대류 냉각이 하나의 회로로 결합되도록 했다.
냉각 성능과 액체 절감, 수치로 본 효과
분사형 액침냉각의 성능은 실제 리튬이온 배터리팩을 대상으로 한 급속 충·방전 시험으로 검증됐다. 연구팀은 배터리 용량의 4배 전류로 충·방전을 수행하는 4C-rate 조건을 적용해 약 15분 내 충전과 방전을 완료하는 급속 환경을 구현하고, 이 상황에서 셀 최고 온도를 35℃ 이하로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완전 액침냉각과 비교해 비전도성 액체 사용량을 약 85% 줄였고, 기존 액침 시스템 대비 냉각액을 10~20% 수준만 사용하면서도 동등 이상 냉각 성능을 구현했다는 설명이다. 냉각 성능을 유지하거나 개선하면서 냉각액의 질량과 부피를 크게 줄였다는 점에서, 중량과 공간이 민감한 전기차·ESS에 의미 있는 개선으로 평가된다.
비전도성·불연성 냉각액이 더하는 안전성
이 기술에서 사용하는 냉각액은 전기가 통하지 않는 비전도성 액체로, 셀과 냉각액 사이에서 전류가 흐르지 않아 셀 간 단락이나 누설전류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 동시에 이 액체는 불연성 특성을 지녀, 배터리 내부에서 단락 등으로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냉각과 함께 소화 역할을 일부 수행할 수 있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냉각액 자체가 연소를 돕지 않고 열을 흡수하는 매체로 작동하기 때문에, 열폭주가 인접 셀로 연쇄적으로 번지는 전이 과정을 억제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전기차·ESS·데이터센터로 확장되는 응용
냉각액 사용량을 크게 줄이고 직접 냉각을 구현한 만큼, 분사형 액침냉각은 전기차 배터리팩뿐 아니라 ESS와 데이터센터 전력 시스템으로의 확장성이 크다. 대용량 ESS는 설치 공간과 하중 제약이 명확하고, 데이터센터용 ESS는 랙·모듈 단위로 열관리와 안전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소량의 냉각액을 회로 내에서 분사·부분 액침하는 구조는 구조 설계 자유도와 설치 제약을 완화할 수 있는 옵션이 된다. 연구팀은 다양한 비전도성 액체를 대상으로 열전도도·비열·점도 등 열물성 데이터를 축적해 냉각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조합을 찾았으며, 향후 인공지능(AI) 기반 모델을 활용해 냉각 성능·안전성·비용을 동시에 최적화하는 냉각액 후보를 탐색하는 연구로 확대할 계획이다.
상용화 향한 다음 과제
김진섭 책임연구원은 “분사형 액침냉각 기술은 적은 양의 비전도성 액체만으로도 리튬이온 배터리팩을 직접 냉각해 열폭주와 화재 발생 위험을 낮출 수 있는 구조”라며 “액체 사용량을 최소화해 무게와 비용 부담을 줄인 만큼 전기차와 ESS 등 다양한 분야로 적용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실험실 환경에서 검증된 냉각 성능을 바탕으로, 실제 운행·운영 환경에서의 진동·기울기·열부하 변동 조건을 고려한 후속 검증을 병행하며 산업 현장 적용을 위한 기술 신뢰성을 단계적으로 높여나간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