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산업의 전력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는 가운데, 전력망 확충과 계통 보안, 공급망 안정 등을 국가안보 차원에서 다루기 위한 입법 지원 방안을 논의하는 세미나가 19일 국회에서 열렸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과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실은 이날 오전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전력산업 발전을 통한 전력안보 강화 세미나’를 공동 개최했다. 행사는 ‘전력안보와 산업 발전을 위한 입법 지원 방안 모색’을 주제로 열렸으며, 국회와 정부, 전력 공기업, 산업계, 학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세미나에서는 AI 데이터센터, 반도체 클러스터, 제조업의 AI 전환, 산업·수송·건물 부문의 전기화가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대규모 전력 공급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 공통적으로 제기됐다. 전력 문제를 단순한 에너지 정책이 아니라 산업 경쟁력과 경제안보, 국민 생활을 지탱하는 핵심 기반으로 봐야 한다는 인식이다.
박종배 대한전기학회 회장은 장길수 부회장이 대독한 축사에서 “전력은 단순한 산업 기반을 넘어 국가안보와 경제안보, 국민의 일상을 지키는 핵심 전략자산이 됐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발전설비와 전력망 확충이 사회적 갈등 및 제도적 제약으로 지연되고, 전기요금 체계의 왜곡도 지속되고 있다며 “반도체 산업과 AI 데이터센터가 요구하는 대규모·고품질 전력을 적기에 공급하지 못하면 AI 강국 실현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력안보를 발전설비 증설에 한정하지 말고, 국가 전력망과 에너지 고속도로의 적기 구축, 전력망 고도화, 에너지저장장치(ESS)와 분산에너지 활용, 계통 사이버보안, 재난·비상상황 복구 체계 등을 포괄하는 범정부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배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은 개회사에서 전력안보가 전력망 운영뿐 아니라 공급망 보안, 사이버안보, 산업정책, 외교·안보가 맞물린 복합 과제라고 진단했다. 그는 “AI와 데이터센터, 반도체로 대표되는 현대 사회에서 전력이 끊기면 교통·통신·금융은 물론 국방과 외교·안보까지 마비될 수 있다”며 “필요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지 못하면 기술 경쟁과 국가 경쟁력에서도 뒤처질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이재명 정부가 반도체와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한 국가 전략을 제시한 만큼, 이를 뒷받침할 전력 공급망과 송배전 네트워크를 갖추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력 수급 안정과 계통 효율화, 전력 인프라의 물리적·사이버 위협 대응, 국민의 기본적 전력 접근권 보장이 전력안보 논의의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조정식 국회의장은 환영사에서 전 세계적으로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 확대에 따라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며 안정적인 전력 공급망을 국가 핵심 안보 인프라로 규정했다. 그는 국회가 지난해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을 제정해 전력망 확충 기반을 마련했다고 언급했다.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은 안정적 전력 공급과 국가 주요 산업 경쟁력 강화, 재생에너지 확대에 필요한 전력망 설비를 조기에 확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345킬로볼트 이상 주요 송전·변전설비의 신속한 구축을 위해 국가 차원의 기본계획과 입지·보상 특례 등을 규정한 법으로, 2025년 9월 26일부터 시행됐다.
조 의장은 다만 전력망 확충만으로 전력안보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수도권에 집중된 전력 수요와 계통 포화, 송전망 건설 지연에 대응하는 동시에 대규모 투자와 안정적 공급을 뒷받침할 전력산업 구조를 점검하고, 스마트그리드와 차세대 전력기술을 수출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우기 한국전력공사 기획부사장은 전력망이 전력안보의 핵심 요소라고 강조했다. 그는 “충분한 전력을 생산하더라도 필요한 곳까지 제때 전달하지 못하면 재생에너지 확대와 첨단산업 성장 모두를 뒷받침하기 어렵다”며 전력망의 적기 확충 필요성을 밝혔다.
백 부사장은 호남권 반도체 산업에서 6.3기가와트, 전국 AI 데이터센터에서 18.4기가와트 규모의 전력 수요 증가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또 2031년까지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를 구축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며 정부·국회·한전·지방자치단체·산업계·학계·국민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세미나의 핵심은 전력 수요 증가에 맞춘 발전원 확보뿐 아니라, 생산된 전력을 수요처까지 안정적으로 보내기 위한 송전·배전망 확충과 제도 정비에 있다. 송전선로와 변전소의 입지 선정, 인허가, 주민 수용성, 보상 체계, 계통 보안은 전력망 건설의 속도를 좌우하는 과제로 꼽힌다.
이어 열린 라운드테이블에서는 장길수 고려대 교수가 좌장을 맡고, 오일석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신안보연구실장, 김태근 한국전력공사 정책조정실장, 서장철 LS ELECTRIC 상무, 이정호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 한근희 코어시큐리티 부사장 등이 전력안보와 산업 발전을 위한 입법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관계자들이 행사를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세미나는 전력망을 둘러싼 과제를 단지 전력산업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AI·반도체·제조업 경쟁력과 국가안보의 공통 기반으로 규정했다. 앞으로 입법 논의에서는 전력망 구축 절차의 합리화와 주민 수용성 확보, 계통 운영의 디지털 전환, 사이버보안 강화, 분산에너지·ESS 활용, 전력요금과 투자 재원 체계 등 다양한 과제를 어떻게 균형 있게 설계할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