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주정 유통,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회계감사, 환경표지 인증 등 시장 진입과 사업 활동을 제약해 온 경쟁제한 규제를 손질한다. 주류 제조사와 주정 제조사 간 직거래 허용 물량은 2027년부터 현행의 5배 수준으로 늘리고, 생활폐기물 수집·운반업체의 관외 영업 진입도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한다.

김동연 공정위 시장구조개선정책과장(e브리핑 영상 캡처)
공정위는 25일 ‘2026년 상반기 경쟁제한적 규제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시장분석과 사업자단체·전문가 의견수렴,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6개 개선과제에 합의했다. 김동연 공정위 시장구조개선정책과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오랜 기간 구조적으로 경쟁이 제한돼 온 주정 유통과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분야를 중심으로 관계부처와 협의해 개선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주정 직거래, 2%에서 10%로
핵심은 주정 유통 구조다. 주정은 녹말이나 당분이 포함된 재료를 발효·증류해 만든 85도 이상의 고순도 알코올로, 희석식 소주의 주원료로 쓰인다.
현재 주류 제조사와 주정 제조사 간 직거래는 전체 주정 판매량의 약 2%, 연간 3만 드럼 수준에서만 허용된다. 대부분의 물량은 주정 도매업자가 주정 제조사로부터 구매한 뒤 주류 제조사에 공급하는 방식으로 유통된다.
공정위는 국세청 등 관계부처와 협의해 2027년부터 직거래 허용 물량을 전체 주정 판매량의 10%로 확대하기로 했다. 지난해 12월 발표했던 현행 대비 약 2배 확대 방안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으로, 현행 2%와 비교하면 5배 수준이다.
김 과장은 “주류 제조사는 주정 제조사로부터 직접 구매하지 못하고 원칙적으로 도매업자를 통해 구매하며, 가격도 단일한 구조”라며 “이런 구조에서는 주정 제조사 간 품질이나 가격 경쟁이 충분히 이뤄지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담합과 같은 구체적 사례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애초 시장 구조 자체가 경쟁을 극히 제한하는 형태였다”며 “직거래가 허용되면 주정 제조사가 주류 제조사에 판매하는 과정에서 품질과 가격 경쟁이 활성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직거래 허용 비중이 커지면 도매업자를 거치는 물량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다만 공정위는 도매업자의 물량 집중 자체보다 단일 가격과 배분 구조 아래에서 제조사 간 경쟁이 제한되는 문제에 정책 초점을 맞췄다.
김 과장은 “도매업자는 물량을 받아 주류 제조사에 배분하는 역할을 한다”며 “물량이 과다해 발생하는 문제라기보다, 단일 가격으로 배정되고 제조사 간 차별이 없는 구조에서 경쟁이 제한되는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제도 시행 뒤 시장 경쟁 상황과 양곡 수급 관리 등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해 직거래 허용 범위를 단계적으로 더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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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폐기물, 관외업체 진입 촉진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시장에서는 지역 안에 사업장을 둔 기존 업체 중심으로 굳어진 구조를 완화한다. 현재 생활폐기물 수집·운반업을 하려면 해당 시·군·구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지방자치단체는 허가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경쟁입찰을 통해 대행업체를 선정한다.
하지만 일부 지자체가 입찰 권역 수에 맞춰 허가업체 수를 제한하거나, 관할구역 밖에 있는 업체에 영업허가를 내주지 않는 사례가 있어 신규·관외 업체의 진입이 쉽지 않았다. 이 같은 구조가 장기간 유지되면서 입찰 경쟁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고, 서울 마포구에서는 2023년, 경기 고양시에서는 2026년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대행용역 입찰담합이 적발되기도 했다.
앞으로 다른 시·군·구에서 영업허가를 받은 업체가 법정 요건을 갖춰 영업지역 확대 또는 변경을 신청하면, 다른 법령에 저촉되는 등의 사유가 없는 한 원칙적으로 허가하도록 제도화한다.
공정위는 관외업체 진입과 업체 간 경쟁을 활성화해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대행업체 선정 입찰에 더 많은 업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서비스 품질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회계감사 문턱 낮춘다
기업 회계감사 시장에서는 감사품질이 우수한 중견·중소 회계법인의 기회를 넓힌다. 금융당국은 상장회사 등의 감사인을 지정할 때 회계법인을 인력 규모 등에 따라 4개 군으로 나누고, 군별로 감사할 수 있는 회사 규모를 차등화하고 있다.
외부감사 의무가 있는 상장회사 등은 6년간 감사인을 자유롭게 선임할 수 있고, 이후 3년간은 금융당국이 지정한 감사인으로부터 감사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2022년 9월부터 대형 회계법인인 가군만 감사할 수 있는 회사 기준이 자산총액 5조원 이상에서 2조원 이상으로 낮아지면서, 하위군에 속한 중견·중소 회계법인의 지정 기회가 줄고 대형 회계법인 쏠림이 심화됐다는 것이 공정위 판단이다.
금융당국은 감사품질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나·다군 회계법인에 한 단계 상위군이 맡을 수 있는 대규모 회사 감사 자격을 주는 ‘군 상향 특례’를 도입할 예정이다. 예컨대 품질이 우수한 나군 회계법인은 특례 가군으로 지정돼 자산 2조원 이상 5조원 미만 회사 감사를 맡을 수 있다.
지방 회계감사 서비스 경쟁을 위한 제도개선도 추진한다. 회계법인 분사무소의 상근 공인회계사 요건을 기존 3인 이상에서 1인 이상으로 낮춰, 인력 확보가 어려운 지방에서도 분사무소 설치를 늘릴 수 있도록 한다.
환경표지 기준도 손질
대변기 환경표지 인증 기준도 바뀐다. 현재는 위생도기 본체와 모든 부속품을 하나의 포장 단위로 공급해야 인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 유통되는 대변기용 위생도기의 대다수가 해외에서 생산되는 상황에서, 국내 부속품을 결합하려면 부속품을 해외로 보내 함께 포장하거나 위생도기를 들여온 뒤 다시 포장해야 한다. 물류와 재포장 비용이 발생하면서 국내 부속품 제조사가 경쟁에서 불리해지는 문제가 있었다.
관계부처는 이에 따라 ‘하나의 포장 단위’ 요건을 삭제하기로 했다. 다만 위생도기와 물 사용량 결정에 관련된 부속품은 유통 과정에서 추가·제거·변경되지 않은 한 세트로 공급돼야 한다.
공정위는 해당 조치가 국내 부속품 제조사가 경쟁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하고, 관련 사업자 간 경쟁 기반을 넓히는 효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거래 경로와 진입 문턱 손질
개선안의 공통점은 가격이나 영업방식을 직접 통제하기보다 시장에 들어올 수 있는 사업자와 거래 경로를 넓혀 경쟁을 유도한다는 데 있다. 주정 시장에서는 제조사와 주류 제조사 간 직거래 범위를 넓히고,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시장에서는 지역 경계를 넘어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연다.
공정위는 하반기에도 추가 개선 과제를 관계부처와 협의하고, 개선에 합의한 과제를 연말에 추가 발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