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반복해 수행하던 줄기세포 배양과 관찰 공정을 로봇과 인공지능(AI)으로 자동화하려는 연구가 구체화되고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에서 활용해온 정밀 이송 기술을 바이오 연구에 접목하고 장비와 소프트웨어, 센싱 데이터를 하나의 체계로 묶는 방식이다. 연구팀은 2028년까지 연구 자동화율 70% 달성을 목표로 공정 표준화와 실증 작업을 추진한다.
가톨릭대학교와 입셀, 로봇앤드디자인, 한국기계연구원, 셀틱스테크놀로지, 중앙대학교 등 6개 산·학·연 기관은 지난 28일 대전 한국기계연구원에서 ‘첨단바이오 범용 자율실험실(SDL·Self-Driving Lab)’ 구축 과제 성과교류회를 열고 1차년도 진행 상황과 자동화 대상 공정을 점검했다.
총 82억 5,000만 원 규모의 이번 과제는 2026년 4월 시작해 2028년 12월까지 진행된다. 연구팀은 ‘K-CELL’ 범용 자율실험실 플랫폼 구축을 목표로 세포 배양 공정 자동화와 장비 연계, 데이터 수집·분석 체계를 함께 개발하고 있다.

입셀 남유준 부사장(왼쪽에서 6번째), 중앙대 양다솜 교수(왼쪽에서 7번째), 가톨릭대학교 주지현교수(왼쪽에서 8번째), 기계연 임현의 단장(왼쪽에서 9번째), 로봇앤디자인 김진오 회장(왼쪽에서 10번째), 셀틱스테크놀로지 김권일 CTO(왼쪽에서 11번째) 셀틱스테크놀로지 백승빈 대표(왼쪽에서 12번째)
회의는 지난 11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주최로 출범한 ‘자율실험실 산·학·연 협의체’ 이후 개별 과제 단위에서 열린 첫 실무 성과교류회다.
임현의 한국기계연구원 단장은 “자율실험실은 결국 실제 연구 현장에서 안정적으로 돌아가는지가 관건”이라며 “기관별 강점이 뚜렷한 만큼 초기부터 자주 만나 접점을 맞춰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기계연구원은 장비와 로보틱스, AI를 연계하는 통합 운용 체계 설계를 맡고 있다.
반도체 정밀 이송 기술, 세포 배양 자동화로
해당 과제에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자동화 장비를 개발해온 로봇앤드디자인이 참여한다. 반도체 제조 현장에서 축적한 정밀 이송·핸들링 기술을 바이오 실험 자동화에 활용하는 방안을 담당한다.
세포 배양은 일정한 주기로 배지를 교체하고 세포 상태를 확인하는 등 반복 작업이 많다. 연구팀은 이 과정 가운데 자동화가 가능한 구간을 선별하고 로봇이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장비와 운영 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김진오 로봇앤드디자인 회장은 “로봇이 쓰일 수 있는 영역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며 “연구 현장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장비를 만드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과제 총괄책임자인 주지현 가톨릭대학교 교수는 특정 연구실의 작업 절차만 자동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연구기관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공통 기준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주 교수는 “특정 실험실에만 통하는 자동화가 아니라 다른 연구기관에서도 그대로 쓸 수 있는 기준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공정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표준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과제를 통해 마련한 기준을 국내 특화 자율실험실 사업들과 공유해 적용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어디부터 자동화할까”…병목도 숫자로 판정
실증 허브를 맡은 입셀은 유도만능줄기세포(iPSC) 배양 프로토콜을 세부 단계로 나눠 기존 장비로 구현할 수 있는 구간과 추가 개발이 필요한 구간을 구분하고 있다.
자동화 대상을 연구자의 경험에만 의존하지 않고 수치로 비교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남유준 입셀 부사장은 자동화 우선순위를 판단하기 위한 ‘병목판정지수(BPI·Bottleneck Priority Index)’ 개념을 소개했다.
작업자의 손이 실제로 투입되는 시간과 중간 개입 횟수, 반복 실험에서 나타나는 편차 등을 수치화해 병목 공정을 비교하는 방식이다. 참석자들은 이 기준을 바탕으로 공정별 담당 기관과 목표 시점 등을 논의했다.
남 부사장은 “‘이 작업이 번거롭다’는 연구자의 경험만으로는 자동화 대상을 정하기 어렵다”며 “사람의 손이 실제로 닿는 시간과 중간 개입 횟수, 반복할 때마다 생기는 편차를 수치로 비교하면 어느 공정이 병목인지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비는 하나의 언어로, 환경정보는 AI 학습데이터로
여러 장비를 한 흐름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소프트웨어도 함께 개발된다. 셀틱스테크놀로지는 실험 설계부터 수행과 분석, 학습까지 이어지는 공통 운영 플랫폼을 맡는다.
장비마다 다른 제어 방식을 공통 구조로 연결해 장비가 추가되거나 교체되더라도 같은 실험 절차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백승빈 셀틱스테크놀로지 대표는 “실험 자동화에서 자주 부딪히는 문제는 장비마다 규격이 달라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장비가 추가되거나 교체돼도 같은 구조로 운영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이번 과제에서 맡은 역할”이라고 말했다.
중앙대학교는 실험실 환경을 비접촉 방식으로 감지하는 센싱 시스템과 AI 분석 모델을 담당한다. 온도 분포와 미세한 조작 차이처럼 기존 실험 과정에서 충분히 기록되지 않았던 정보를 데이터로 남겨 분석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양다솜 중앙대학교 교수는 “같은 프로토콜로 실험해도 결과가 달라지는 이유가 기록되지 않은 환경 변수에 있는 경우가 많다”며 “그동안 흘려보내던 정보를 데이터로 남기면 실패한 실험도 학습 자원이 된다”고 설명했다.
2028년 연구 자동화율 70% 목표
연구팀은 올해 안에 표준 실험모델을 선정하고 사람이 직접 수행한 실험의 기준 데이터를 확보할 계획이다. 이후 자동화 전환 전후의 실험시간과 인력 투입 변화 등을 비교하기 위한 기준으로 활용한다.
2차년도에는 연구 자동화율 50%와 실험 소요시간 50% 단축을 목표로 한다. 사업 마지막 해인 2028년에는 자동화율을 70%까지 높이고 기술이전과 사업화 성과 창출도 추진한다.
참여 기관들은 앞으로 정기적으로 성과교류회를 열어 공정별 진행 상황과 기술 연계 과제를 점검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