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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14조원 산업예산, AI보다 먼저 봐야 할 것은 전력망과 현장이다

제조AI·반도체 투자 확대의 성패는 GPU가 아니라 데이터·전력·용수·실증 기반에 달렸다

14조원이 넘는 산업예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숫자는 128.5%다. 제조AI 전환과 메가프로젝트 지원 예산의 증가율이다. 산업통상부는 2027년 본예산을 13조2573억원으로 편성했고, 미래대응기금에 담긴 산업부 소관 사업 9118억원까지 합치면 실질 규모는 14조1691억원이다.
[데스크칼럼] 14조원 산업예산, AI보다 먼저 봐야 할 것은 전력망과 현장이다 - 산업종합저널 전자
일러스트 = 산업종합저널 (AI 활용)

하지만 숫자만 보면 이번 예산의 핵심을 놓친다. AI를 공장에 심는다고 GPU와 고성능 모델만 들여놓으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숙련자의 작업 경험을 데이터로 남겨야 하고, 로봇과 설비가 움직일 전력이 있어야 하며, 반도체 공장이 들어설 곳에는 용수와 변전소가 먼저 갖춰져야 한다.

이번 예산안의 승부처는 첨단기술 자체보다 그 기술을 실제 산업으로 옮기는 보이지 않는 기반에 있다. 정부가 AI·반도체·로봇을 앞세웠지만, 예산의 진짜 변화는 연구개발실 밖으로 재정의 무게중심을 넓히려 한다는 데 있다.

비R&D 97% 급증…현장으로 넓어진 재정
산업부 예산의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수치는 비R&D 예산이다. 2026년 4조2187억원이던 비R&D 예산은 2027년 8조3133억원으로 97.1% 늘었다. 연구개발뿐 아니라 인프라, 실증, 투자지원, 공급망 대응에 쓰이는 재정이 큰 폭으로 확대된 셈이다.

기술개발 중심의 지원에서 인프라·실증·투자지원까지 재정의 범위를 더 넓히려는 흐름이 선명하다. AI 기술 하나를 개발했다고 제조업이 자동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공장에는 기존 설비가 있고, 숙련 인력의 경험과 부품 공급망, 안전 기준, 데이터 보안, 투자 여력이 서로 얽혀 있다.

제조AI와 메가프로젝트 예산을 1조6309억원에서 3조7261억원으로 128.5% 늘린 배경도 여기에 있다. 제조 데이터 라이브러리, 제조 암묵지 활용 AI 솔루션, 풀스택 AI 팩토리, 자율제조 생태계 구축은 AI 모델 개발보다 생산공정 적용에 무게를 둔 사업들이다.

그러나 이 사업들이 데이터 수집이나 장비 보급 숫자로 평가돼서는 안 된다. 중소·중견 제조기업의 불량률과 가동률, 에너지 사용량, 납기 같은 지표를 얼마나 개선했는지가 성과 기준이 돼야 한다. 제조AI는 보고서 속 기술이 아니라 생산라인의 생산성과 경쟁력으로 증명돼야 한다.

R&D가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이유
예산 구조에는 또 하나의 역설이 있다. 산업부 본예산만 보면 R&D는 2026년 5조2155억원에서 2027년 4조9440억원으로 5.2% 줄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첨단산업 투자 확대 기조와 맞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미래대응기금과 기후기금 등 타부처 기금에 편성된 산업부 소관 사업까지 포함하면 R&D 규모는 5조9155억원으로 늘어난다. 제조AI와 전략기술 사업 일부가 별도 기금에 담기면서 부처 본예산만으로는 산업 R&D의 방향과 규모를 온전히 읽기 어려워진 구조다.

문제는 돈이 어느 회계에 담겼느냐보다 이를 한눈에 추적하고 평가할 수 있느냐다. 국회 심사에서는 본예산 증감률만 볼 것이 아니라 기금까지 합친 실질 투자 규모, 기존 사업과의 중복 여부, 사업별 성과지표를 함께 따져야 한다.

반도체의 병목은 전력과 물
정부는 K-반도체 전략에 3조4000억원을 편성하고, 반도체산업 경쟁력강화 특별회계와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통합 재정지원 1조5000억원을 내놨다. 용인·평택 생산기지와 서남권 클러스터를 뒷받침하고, 국산 NPU·화합물반도체·설계 인력까지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반도체 정책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공장 유치 발표나 지원액만이 아니다. 반도체 공장은 막대한 전력과 공업용수를 필요로 하고, AI 데이터센터 역시 전력망과 냉각 인프라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 첨단산업 유치 경쟁에서 공장 부지만큼 전력·용수·계통 접속을 얼마나 제때 확보하느냐가 중요해졌다.

[데스크칼럼] 14조원 산업예산, AI보다 먼저 봐야 할 것은 전력망과 현장이다 - 산업종합저널 전자
그래픽=산업종합저널(생성형 AI 활용), 자료=산업통상부

정부가 전력·용수·산업단지 인프라에 2조1000억원을 배정하고, 이 가운데 전력 분야에 1조5000억원을 편성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송전망과 변전소, 계통 안정화용 ESS, 한국전력 출자, 서남권·충청권 산업단지 용수 공급은 화려하지 않지만 산업예산의 가장 현실적인 기반이다.

예산이 편성됐다고 송전망과 변전소가 곧바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전력 인프라와 계통 접속, 용수 공급이 산업단지와 기업의 투자 일정에 맞춰 진행돼야 한다. AI와 반도체를 성장동력으로 내세운 정부라면, GPU 확보 경쟁만큼 전력망 구축의 일정과 성과도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

피지컬AI는 실증 다음이 중요하다
정부는 제조·스마트팩토리·건설·농업·국방·돌봄·물류·항만 등 8대 분야 피지컬AI 실증에 2027년 5000억원을 투자하고, 공공 선도수요를 통해 국산 AI 로봇 2000여대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피지컬AI에 공공이 초기 수요를 만들어주는 접근 자체는 필요하다. AI가 화면 속 답변을 넘어 공장과 물류센터, 농장과 돌봄시설에서 작동하려면 기술의 안전성과 경제성, 운용 적합성을 검증할 실증 무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실증 자체가 시장은 아니다. 공공기관이 로봇을 한 번 구매하는 것으로 사업이 끝나면 산업 생태계는 커지지 않는다. 실증을 통해 어떤 데이터가 축적됐는지, 안전성과 경제성이 검증됐는지, 사업장의 재구매와 민간 도입으로 이어졌는지를 봐야 한다. 피지컬AI의 성과는 보급 대수가 아니라 실제 사용 시간, 생산성 개선, 유지보수 비용, 민간 확산으로 평가돼야 한다.

예산표 밖에서 성패가 갈린다
지역주도 성장 예산은 2조731억원, 산업·자원안보 강화 예산은 3조6825억원으로 확대됐다. 정부는 권역형 연구개발과 지방투자 지원, 자원안보기금 신설, 핵심광물 비축·재자원화, 수출바우처와 무역보험 확대를 추진한다.

그러나 이 항목들도 같은 질문으로 돌아온다. 재정이 기업 투자와 지역 일자리, 공급망 안정, 제조업 생산성으로 이어지느냐다. 지원금을 집행했다는 사실만으로 산업정책의 성공을 말할 수는 없다.

이번 예산안은 기술개발과 생산기반, 공공 실증, 지역 투자, 공급망 안보를 하나의 산업 경쟁력 문제로 묶었다. 다만 정책의 성패는 예산 편성표가 아니라 데이터의 품질, 전력망 구축, 기업의 재투자, 사업장 적용 성과에서 판가름 난다.

AI가 제조업의 속도를 높일 수는 있다. 그러나 산업을 바꾸는 것은 ‘AI’라는 이름표가 아니다. 현장에서 쓸 수 있는 데이터, 끊기지 않는 전력, 제때 공급되는 용수, 실증 뒤에도 이어지는 민간 투자다. 14조원 산업예산의 성패도 결국 이 조건들이 계획표가 아니라 생산라인에서 실제로 작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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