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범죄 피해 영상물을 지워달라며 구글에 제출한 피해자와 지원기관의 정보가 외부 사이트에 공개되는 2차 피해가 발생했다. 정부는 관련 정보를 차단하고 삭제 지원을 재개하는 한편, 구글의 위법 여부와 법적 책임에 대한 검토를 이어가기로 했다.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은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지난 8월 25일 디지털 성범죄 피해 영상물 삭제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와 지원기관이 구글에 제출한 정보 일부가 외부 사이트에 무단으로 공개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브리핑에는 이경숙 성평등가족부 성평등정책실장과 신영규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방송통신이용자정책국장, 최은희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 디지털성범죄심의국장 등이 참석했다. 정부는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해당 사이트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다.
피해자와 지원기관이 구글에 제출한 삭제 요청에는 피해 영상물의 인터넷주소(URL)와 요청 내용 등이 포함됐다. 외부로 공유되지 않아야 할 자료 일부가 구글을 거쳐 해당 사이트에 노출됐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원 장관은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 영상물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기를 바라는 절박한 마음으로 삭제를 요청한다”며 “그 과정에서 제출한 민감한 정보와 삭제 요청이 또 다른 공간에 공개됐다면 피해자에게 또 한 번의 피해를 가하는 심각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신고 게시물 15건 우선 차단
성평등가족부는 유출 사실을 확인한 다음 날인 8월 26일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에 긴급심의를 요청했다. 방미심위에 접수된 게시물 단위 신고는 18건으로, 중복 2건과 실제 유통되지 않은 1건을 제외한 15건이 8월 28일 긴급 차단됐다.
정부는 피해자 식별 가능성이 높은 게시물을 먼저 차단한 뒤 지원기관 명칭으로 검색되는 결과와 한국에서 제출된 삭제 요청 내역으로 범위를 넓혔다.
9월 1일까지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등 피해자 지원기관의 명칭으로 검색되는 200여 건을 차단했다. 이어 9월 7일 새벽 1시께 한국의 개인과 지원기관 등이 구글에 제출한 삭제 요청 내역 전체가 해당 사이트에서 차단된 사실을 확인했다.
정부 관계자는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가 담긴 내역은 20여 건으로 파악되지만, 인터넷주소가 중복돼 있어 이를 피해자 수로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정확한 피해 규모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전체 차단까지 약 2주가 걸린 데 대해서는 식별 가능성이 높은 게시물을 먼저 처리하고, 이후 관련 검색 결과와 한국발 요청 내역 전체를 단계적으로 확인·차단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성평등가족부는 피해 사실을 당사자들에게 알리고 2차 피해 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다. 추가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가 나오면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통해 법률·상담·심리 지원에 나선다.
구글 “기술적·인적 오류”…유출 경위는 조사 중
구글은 정부에 이번 사태가 기술적·인적 오류로 발생했다고 답변했다. 다만 삭제 요청 정보가 어떤 과정을 거쳐 외부 사이트로 전달됐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경위와 피해 범위는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성평등가족부는 지난 5일 긴급회의를 열고 구글에 정보 유출 경위와 조치 지연에 대한 유감을 표명했다. 피해 규모와 정보 전달 과정, 재발 방지 방안도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정부는 2018년 이후 처리된 삭제 요청 가운데 유사한 유출 사례가 더 있는지도 확인해 달라고 구글에 요청했다.
구글은 지난 9일 앞으로 한국에서 접수되는 삭제 요청 관련 정보를 해당 사이트와 공유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정부에 보냈다. 성평등가족부는 이를 토대로 중단했던 구글 대상 피해 영상물 삭제 지원을 재개했다.
다만 공문에는 유출 원인이나 구글의 법적 책임, 구체적인 재발 방지 대책까지 담기지는 않았다. 정부는 구글이 제출할 후속 대책을 검토한 뒤 시스템 개선 여부를 점검하는 방안도 관계부처와 협의할 계획이다.
다른 플랫폼이 해당 사이트에 삭제 요청 정보를 제공했는지도 조사하고 있다. 구글은 정부에 문제의 사이트 외에는 관련 정보를 보낸 곳이 없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성폭력처벌법 등 위반 여부 검토
성평등가족부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등은 성폭력처벌법과 전기통신사업법, 정보통신망법 등 관련 법률 위반 여부를 살펴보고 있다. 일부 조항의 해외 사업자에 대한 역외 적용 가능성도 검토 중이다.
현재는 법률 검토 단계로 고발 여부가 결정되지는 않았다. 정부는 고발을 포함해 피해자 보호와 재발 방지를 위한 여러 조치를 함께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원 장관은 “확약과 무관하게 구글의 법적 책임은 성립될 수 있다고 본다”며 “이런 확약에도 불구하고 같은 사태가 다시 발생한다면 더욱 무거운 책임이 부과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개인정보보호법 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별도 입장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정부는 설명했다. 구체적인 위법 여부는 유출 경위와 정보 처리 과정에 대한 조사 등을 거쳐 판단될 전망이다.
원 장관은 “이번 일은 단순한 시스템상의 오류나 실수로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며 “구글의 재발 방지 대책이 실효성 있게 마련되고 실제로 이행됐는지 끝까지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불법 촬영물 등을 소지하거나 시청하는 행위도 성폭력처벌법상 처벌 대상에 해당한다며, 피해 정보와 관련 사이트의 명칭 등을 재유포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