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산을 한국산으로 둔갑시키는 과정에서 수입가격 저가신고나 자유무역협정(FTA) 특혜관세 부당 적용까지 얽힌 불공정무역을 관세청이 한꺼번에 추적한다. 전국 세관을 동원해 수입부터 국내 유통, 수출까지 점검하고 지역 제조기업의 피해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관세청은 지난 28일 정부대전청사에서 ‘K-제조업 보호를 위한 전방위 대책’을 발표했다. 특별단속은 11월부터 2027년 1월까지 3개월간 진행한다. 중소 제조기업에 대한 FTA 활용과 해외 통관 지원도 병행한다.
하유정 관세청 심사국장은 브리핑에서 기존 원산지표시 단속이 소비자의 알권리와 구매선택권 보호에 무게를 뒀다면, 이번 대책은 국산 둔갑으로 피해를 입는 국내 제조업과 지역 일자리 보호까지 목적으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원산지 허위표시·탈세·위조상품 연계 조사
관세청은 원산지표시 단속과 관세조사, FTA 원산지검증, 위조상품 단속, 범칙수사를 연계한다. 하나의 품목이나 업체에서 여러 위반 혐의가 발견되면 관련 부서가 위험 요소와 조사 방법을 함께 검토하는 방식이다.
수입 완제품을 한국산으로 거짓 표시하거나 외국산 원재료·반제품을 국내에서 단순 조립·가공한 뒤 국산 원산지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한국산으로 유통하는 행위가 대상이다. 수입가격을 낮게 신고해 세금을 탈루하거나 안전·품질 관련 수입요건을 회피하는지도 살핀다.
원산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물품에 FTA 특혜관세를 부당하게 적용하는 행위, 국내 브랜드 위조상품의 반입·유통, 외국산을 한국산으로 가장해 수출하는 행위도 점검한다. 수입 단계의 통관검사와 국내 유통 단계의 원산지표시 단속, 수출 단계의 우회수출 수사를 연결할 계획이다.
지난 6월 관세청이 중소 제조기업 50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72.8%가 제조업 기반 유지를 위해 원산지표시 단속 강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기업들은 원산지 둔갑에 따른 수익성 악화와 브랜드 이미지 하락 등을 호소했다.
플랜지 57억원·태양광 부품 47억원 적발 사례
관세청은 올해 적발한 철강제 플랜지와 태양광 부품 사건을 복합 위반 사례로 제시했다.
플랜지 사건에서는 외국산 반제품을 수입해 국내에서 가공했지만 한국산 원산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물품을 국산으로 거짓 표시한 혐의가 적발됐다. 수입자는 가공업자로부터 물품을 다시 넘겨받아 국내 거래처에 한국산으로 납품한 혐의를 받는다. 관련 물품은 57억원 상당이다.
태양광 부품 사건은 외국산 부품 140만 세트를 한국산으로 거짓 표시하고 무역서류 등을 조작해 FTA 특혜관세를 부당하게 적용받은 뒤 해외로 수출한 혐의다. 관련 물품은 47억원 상당이며, 관세청은 대외무역법·관세법·FTA관세법 위반 혐의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지역 제조품목 중심 단속…6개 세관 협약 추진
관세청은 지역별 제조업 현황과 기업 설문조사, 지방정부 의견, 기존 적발 내역 등을 토대로 특화 제조품목을 선정했다. 브리핑에서는 의류·섬유, 철강·조선 기자재, 석유화학 제품 등이 대표 분야로 언급됐다. 구체적인 지역별 품목과 대상 업체는 공개하지 않았다.
11월에는 본부세관 5곳과 직할세관 1곳 등 6개 세관이 관할 지방정부·생산자단체와 업무협약을 순차적으로 체결할 예정이다. 세관은 단속을 맡고 지방정부는 지역 산업 현황을, 생산자단체는 업계 정보와 기업 애로사항을 공유한다.
중소 제조기업에는 세관 수출입기업지원센터 등을 통해 일대일 FTA 활용 컨설팅과 상대국 원산지검증 대응, 해외 통관애로 해소를 지원한다. 관세청은 협약기관과 지역 기업에 필요한 지원사업도 발굴·연계할 계획이다.
위반 업체에는 혐의에 따라 과징금 부과와 형사처벌, 탈루세액 추징 등의 조치를 한다. 관세청은 원산지표시 위반에 대한 대외무역법상 과징금 상한이 최대 3억원으로 고정돼 있어 제재 실효성에 우려가 제기된다고 밝혔다. 제재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도 관계부처와 협의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