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사망 등 중대재해를 줄이기 위해 사업주 책임을 강화하는 취지로 만든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의 당초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시행 이후에도 사망자 수는 변화가 없었고, 중대산업재해로 수사 대상에 오른 211건 가운데 11건만 현재 기소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19일 발표한 ‘2022년 산업재해 현황 부가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초부터 현재까지 파악된 중대재해는 총 611건으로 집계됐다. 사망자는 총 644명이었다.
직전년도 중대재해 665건, 사망자 683명과 견주면 각각 54건(8.1%), 39명(5.7%) 감소에 그쳤다. 게다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인 50인 이상 사업장의 사망자는 256명으로 오히려 8명(3.2%) 늘었다.
오늘(27일) 중처법 시행 1년을 맞았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생기고 있다. 법안 논의부터 제기돼 왔던 조항의 ‘애매모호’함에 관한 논란도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방지법?
이런 가운데 27일 오전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는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양향자(무소속) 의원 주최로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공청회’가 열렸다.
“궁극적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방지법’으로 용어 변경도 고민해야한다”(양향자 의원).
행사를 주최한 양 의원은 중처법이 사후 처벌보다는 사고 예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하며 법 개정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노·사·정 관계자들은 중처법이 처벌보다는 예방 쪽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점에 중지를 모았으나, 경영책임자 정의나 인과관계 증명 등 세부 쟁점에서는 견해가 갈렸다.
도마 위 오른 책임 주체의 ‘모호함’
발제자로 나온 법무법인 태평양의 김상민 변호사는 법 개정 방향에 관해 “법의 예측 가능성과 명확성, 실행 가능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중처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의 중첩성, 형사책임 주체의 모호성 등 기존부터 경영계에서 꾸준히 재기돼 왔던 이야기다.
중대재해처벌법 제2조 제9호에 따르면, 의무이행 및 형사책임 주체를 ‘경영책임자 등’으로 상정하고 있고, ‘경영책임자 등’에 관해선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정의돼 있다.
김 변호사는 책임 주체의 모호성에 관해 “회사에서 실질적 책임 권한은 원래 대표이사가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는 문제와 대표이사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실질적이고 최종적 권한’을 가질 수 있는 것이냐에 따른 지적이 있다”라며 “지킬 수 없는 것을 법이 정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비판했다.
이어서 “기업 규모가 크면 한 명의 대표이사가 중대재해처벌법상 모든 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라며 “기업의 개별 사정을 고려해 경영책임자도 사정에 따라 자율성을 부여하는 게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 외에도 ‘경영책임자’와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 둘 중에 한 명을 명확히 지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런 의견에 대해 김광일 한국노총 산업안전본부장은 “경영책임자 정의 등에 관한 논쟁은 소모적인 논쟁”이라며 “수사나 판례가 나오다보면 자연적으로 해결된다고 본다”고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김 변호사는 인과관계에 관한 문제도 도마에 올렸다. 그는 “예를 들어 다음날 하는 업무, 작업자가 오늘 미리 해놓으려다 사고가 나는 경우, 대응절차가 미비했다는 이유로 대표이사는 중처법 위반을 하게 된다. 그런데 대표 이사가 무얼 잘못했는지 인과관계가 불명확하지 않냐”라고 되물었다.
경영책임자가 중처법상 의무를 이행했음에도 예측하기 힘든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고, 근로자 과실로 인한 사고에도 인과관계가 인정 된다는 것이 납득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인과관계가 인정하기 어려운 경우엔 법 적용이 제외되도록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다만, 패널로 참석한 남덕현 고용노동부 중대감독 사무관은 “산업안전 대원칙은 위험을 생산하는 주체가 누구든지 간에 위험 생산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게 대원칙”이라며 김 변호사의 주장에 제동을 걸었다. 앞선 사례에서 근로자가 ‘왜 내일 할일을 오늘 하게 됐는지’를 따져보는 것도 인과성 입증에 포함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남 사무관은 원-하청간 책임 의무 이행의 문제와 관련해서도 원청도 책임 소재가 있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하청의 중대재해 발생에 원청이 만든 책임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생산 물량을 비롯해 생산 기간, 원청 내 사업장이 있어 실제 원청으로부터 작업 방식을 규율받고 있다면 그런 부분에선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와 관련 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본부장은 “실질적 지배관계가 입증 된다면 원청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맞으나, ‘위험 생산자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명분이나 정당성만 내세우고 있지 실질적 지침이 없고, 모든 위험을 원청이 생산하는 것도 아니다. 정부가 명확히 해석해야 현장 혼란이 없다”라고 맞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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